"엄마, 왜? 누군데?"
"어, 이모야. 이모랑 이모부랑 점심 먹으러 가는데 너도 데리고 간다고 해서 엄마가 넌 안 가는 게 좋겠다고 했어. 오늘 이모랑 이모부 결혼기념일이잖아. 다른 때는 괜찮은데 오늘은 이모네 가족이 기념하려고 식사하는 거니까, 거긴 네가 따라가는 게 좋은 건 아닌 거 같아서."
"아, 그래. 근데 맛있겠다."
"흐흐 그래 맛은 있겠지."
동생네와 위아래층에 살아서 조카와 아들은 친남매처럼 가깝다.
결혼기념일이라 주말에 가족끼리 식사를 하러 간다고 했더니 맛있는 것을 먹는 것도 부럽고, 조카와 오래 놀지 못하는 것도 아쉽다고 한 말이 마음에 걸려 우리 아이도 같이 데려가겠다는 동생의 전화였다.
오늘은 데려가지 말라고 하는 전화 통화를 옆에서 듣고 아들이 궁금했나 보다. 아니, 궁금했다기보다는 무슨 얘기를 하는지 다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거겠지.
혹시 따라가지 못하게 했다고 화를 낼까 봐 남편은 긴장하는 눈빛으로 나에게 왜 그걸 말해주냐는 시그널을 보낸다. 나도 얘가 툴툴대는 건 아닌가 조금 불안했지만 솔직하게 설명해 주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그래도 그 정도 분위기 파악은 할 줄 알만한 나이가 되었으니까.
자식이 커가면서 자꾸 솔직해진다.
어렸을 때는 감정이 상할까 봐, 알면 떼를 쓸까 봐 감추던 일들을 세상에 비밀을 말해 주듯 하나씩 솔직하게 알려주기 시작한다.
예를 들면,
"있잖아, 사실은 엄마도 콩밥 싫어해. 근데 몸에 좋기도 하고 골라내면 좀 지저분해 보여서 그냥 먹어버려."
"엄마도 양치질이랑 머리 감는 거 너무너무 귀찮아. 그거 해주는 기계가 나왔으면 좋겠어. 근데 치과 가는 건 더 싫고 머리 안 감으면 냄새도 나고 스타일도 안 나와서 어쩔 수 없이 매일 감는 거야."
"할머니가 욕을 하신다고? 그래, 할머니 원래 욕 잘하셔. 그게, 좀 속이 상해서 그러시는 건데 나쁜 마음으로 그러시는 건 아니니까. 그게 안 좋아 보여? 안 좋아 보이면 안 따라 하면 돼. 욕하는 사람이 다 나쁜 건 아니지. 그래도 그걸 듣는 사람이 기분 나쁠 것 같으면 하면 안 되지. 할머니는 혼자 속이 상해서 그러신 거니까 네가 이해해."
"자동판매기 발로 차는 아저씨 봤다고? 그 사람은 화를 잘 조절 못하는 사람인 거 같다. 너도 화나면 발로 찬다고? 그래, 어렸을 때는 화를 더 조절 못해. 아기는 힘들면 무조건 울고 소리 지르잖아. 자기가 힘든 걸 말로 잘 못하니까 그런 거지. 근데 커가면서 조절하는 걸 배우고 연습하는 거야. 그걸 연습하지 못하고 자라면 어른이 되어서도 화날 때 물건을 던지거나 발로 차거나 다른 사람에게 소리를 지르지. 어렸을 때는 그럴 수 있는데 공부하고 배우는 것처럼 그런 것도 배우면서 좋은 어른이 되는 거야."
선과 악이 극명하게 나뉘는 것은 설명해주기 쉽다.
부모의 취향을 따르기를 바랄 때, 혹은 권하고 싶은 것들을 강요할 때는 솔직해지기 어렵다.
사실은 솔직해지기가 싫다.
그중 가장 어려운 것은 공부에 대한 것.
공부가 싫고, 학교에 가기 싫고, 학원은 더 싫고, 월요일이 너무 싫은 것, 뭐 이런 것들이 사실이라고 인정해주는 것.
아, 한편으로 나에게 솔직하자면 애가 공부 좀 알아서 잘했으면 좋겠다.
아들과 조카는 영어학원을 다니지 않고 내가 주말마다 20분씩 가르쳐 준다.
또, 매일 따라 읽고 외우는 숙제를 내주면 자기들끼리 인증 영상을 찍어 나에게 보내주고 있다.
어느 정도 하다 보니 내가 전문 선생님도 아니고 실력이 늘지도 않는 것이 불안하여 영어학원을 보내야 할 것 같았다.
몇 주 전, 아들과 조카를 앉혀놓고 영어학원에 다니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다. 역시나 싫다고 한다.
하루 24시간이 너무 짧고 특공무술과 미술학원을 다니고 있는데 영어학원까지 다닐 시간은 없다나. 마음 같아서는 특공무술과 미술 중 하나를 끊고라도 영어학원을 보내고 싶은데, 그 두 가지는 그만둘 수 없다고 강경하게 저항한다.
외국인이 운영하는 조금 더 즐겁게 배울 수 있는 영어 학원임을 강조했지만 설득이 되지 않았다.
"그래, 사실 공부가 재밌는 건 아니지. 공부 재밌는 사람은 진짜 드물긴 하지."
갑자기 봇물 터지듯 동조하는 의견을 쏟아낸다.
"이모, 맞아요. 전에 TV를 보는데 무슨 광고를 하는데요. 엄마가 무슨 집안일을 하고 있었어요. 근데 애가 와서 놀아달라고 하는 거예요. 그랬더니 엄마가 가서 TV나 봐. 그랬거든요. 그랬더니 애가 TV를 켜고 공~부를 하는 거예요~. 완전. 참, 나. 저는 무슨 영상 컴퓨터 중독 이런 광고인 줄 알았거든요. 근데 공부 광고인 거예요. 말이 돼요? 무슨 놀라고 하는데 공부를 해~."
"어, 맞어. 그거 완~전 개뻥이야. 애들 공부시킬라고 그러는 건데 말이 안 돼."
둘이서 흥분하는 모습에 헛웃음이 나왔지만 너무 맞는 말이었다.
"맞네, 너희 말이 맞네. 공부가 해야 하니까 하는 거지 노는 것보다 재미있어서 하는 사람이 어딨겠어."
니들 말이 맞다고 하니까 득의양양하다. 결국 새로운 학원을 다니게 하는 것은 실패구나.
"엄마도 사실은 그래. 좋아하는 것만 해주고 싶어. 근데 너희가 좋아한다고 맨날 치킨이랑 피자만 사줄 수는 없잖아. 싫어해도 채소 같은 거 먹여야 되잖아. 공부도 똑같애. 지금은 배워야 될 때니까 하라고 하는 건데, 억지로 시키면 효과가 없지. 그래 일단은, 지금 하는 것처럼 매일 영어 한 페이지 따라 읽고 외우는 거랑 엄마가 영어책 읽어주는 거 그냥 계속 하자."
결국 지금 하는 숙제라도 더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을 받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학교가 너무 가기 싫어. 수학 시간 너무 싫어. 공부 안 해도 다 알고 천재 되는 약 같은 거 나왔으면 좋겠어."
수업이 조금 어려워지는 3학년이 되었을 때 아들이 입에 달고 살던 말이다.
"학교가 얼마나 재밌는 건데, 친구들도 많고, 많이 배우고."
절대로 먹힐 수 없는 말을 하고 있자니 내가 들어도 설득력이 없다.
"그래, 안 배우고 다 알면 얼마나 좋겠어. 공부 안 하고 놀기만 하는데 천재 되는 약 있으면 나도 먹고 싶다. 근데 그게 불가능해. 그런 약이 없어. 그 약 나올 때까지만 학교 다니자."
싫다는 소리가 지겹기도 하고 짜증도 나서 우스개 소리로 한 말인데 의외로 아이가 체념한 듯이 불평을 멈췄던 기억이 난다. 물론 그 후로 지금까지도 월요일마다 '학교 가기 싫어'를 외치고 있긴 하지만...
이제 감추고, 거짓말로 난처한 상황을 모면하는 시기는 지난 것 같다. 내가 열두 살 때를 떠올려 보면 어른들이 하는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어색해서 둘러대는 것인지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아직 미성년자이니 보호할 것은 보호해 주고, 허용할 수 없는 것들은 이유를 말해주고, 세상에는 이해 안 되는 것도 있다고 솔직하게 얘기해 줘야겠다.
하기 싫은 것을 싫다고 할 때는 고개도 끄덕여줘야지.
하기 싫은 걸 싫어 죽겠다고 말하는데 누가 그건 싫은 게 아니라고 한다면 얼마나 화딱지가 나겠는가. 그게 싫어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하고 씁쓸함을 같이 맛보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