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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춘 May 02. 2021

Dear 작가 지망생

<스누피의 글쓰기 완전정복> 몬티슐츠, 바나비 콜라드 엮음, 김연수 옮김

'이동진 독서법'에서였던가?

아무튼 어떤 책에서 '김연수 작가의 작품을 좋아해서 모두 읽는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문득 생각이나 책을 찾아보던 중에 김연수 작가가 번역한 이 책을 보게 되었다.

유명한 작가인데도 그의 소설을 한 권도 읽지 않은 것이 아쉬워 찾아봤는데 번역서가 있어서 흥미로웠고, 그 번역서의 표지가 스누피여서 더 궁금했다. 더구나 스누피와 글쓰기는 무슨 관계인 걸까.


시드니 셀던, 잭 캔필드, 다니엘 스틸 등 세계 유명 작가 32인이 들려주는 실전 글쓰기 노하우


최근 '다니엘 스틸'과 '시드니 셀던'의 원서를 읽으며 영어공부를 하고 있는 탓에 뭔가 인연이 있는 책이 눈앞에 나타났다는 생각이 들어 장바구니에 넣었다.


도착한 책은 가로로 긴 특이한 모양이었다. 책꽂이에 꽂으면 밖으로 삐죽 튀어나와 예쁘지 않고, 세로로 꽂아 놓으면 제목이 보이지 않아 왜 이렇게 만든 거지? 툴툴거렸지만 책을 읽다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네 컷 만화 '피너츠'를 무리 없이 실으려면 이런 모양이어야 했다.


이 책은 스누피가 나오는 만화 '피너츠'의 작가 '찰스 M. 슐츠'의 아들인 '몬티 슐츠'와 미국의 작가 '바나비 콘라드'가 찰스 슐츠의 사후에 저명한 작가들의 경험담을 엮어 만든 책이다.

 

왜 이렇게 유명한 작가들이 이 책에 기고를 한 걸까? 그 자연스러운 연결고리는 '스누피'이다.

스누피는 뾰족한 개집 지붕 위에 타자기를 놓고 그 앞에 앉아 글을 쓰는 작가 지망생이다. 그 많은 에피소드 사이에서 인지하지 못했을 수 있지만 이 책에 나온 스누피 에피소드를 읽어보면 스누피가 얼마나 많은 고뇌 속에서 작품을 써내기 위해 노력했는지, 작가들이 무수히 겪는 좌절이 얼마나 재치 있게 짧은 만화 속에 녹아 있는지 알 수 있다.


이 책에 참여한 많은 작가들은 고군분투하고 있는 스누피를 위로하는 형태로 작가 지망생들에게 조언을 하고 있다. 작가들의 글에는 찰스 슐츠에 대한 언급이 없었지만 아마도 그들은 작고한 찰스 슐츠에 대한 사랑과 과거 작가를 꿈꾸던 그들의 모습을 닮은 스누피에 대한 공감으로 기꺼이 기고에 응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머리말 부분에 찰스 슐츠의 아들 몬티 슐츠가 아버지를 회상하는 글과, 바나드 콘라드가 찰스 슐츠와의 대화와 일화들을 옮겨놓은 글이 있는데 약 30페이지에 달하는 이 글들을 읽으면서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찰스 슐츠라는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다.


만화로, 문구류에 그려진 캐릭터로, 찰리 브라운과 스누피를 수없이 봐왔기 때문에 매일 그들을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만들어주는 찰스 슐츠가 친근하게 느껴져 읽는 내내 미소가 지어졌다.


언젠가 아버지는 나에게 재능이 없는 사람들을 대신해 삶의 슬픔과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게 시인의 재능이고 책임감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7 페이지>


아들 몬티 슐츠가 쓴 머리말에는, 위대한 명성에도 불구하고 따뜻하고 소박했던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자랑스러움이 담뿍 담겨있다. 작가들의 재능은 인간을 사랑할 때 비로소 가치 있게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인간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글로 사람을 다치게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아버지한테는 <피너츠>라는 만화가 있었기에 당신이 좋아한 작가와 예술가들의 말을 인용하거나 은근슬쩍 끼워 넣는 방식으로 자신의 만화와 그들의 작품이 같은 지향점을 갖게 할 수 있었다. <10 페이지>


몬티 슐츠는 아버지 스스로가 '연재만화는 상업적 예술이므로 순수 문학에 못 미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만화 피너츠는 대중문화와 고전 미학 사이에 다리를 놓아 고급 예술을 만화에 끌어들이려는 시도였다'라고도 했다.


전 세계가 사랑하는 만화를 수십 년간 그렸음에도 불구하고 순수 문학에 대한 동경을 멈추지 않았다는 겸손했던 작가는, '피너츠'의 따뜻한 그림들과 즐거운 이야기 속에 사랑하는 예술적 표현을 녹여 넣어 오랜 세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준 독특한 문학의 한 분야를 만들어낸 사람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는 이 만화의 제목이 '찰리 브라운'인 줄 알았고, 내용이 참 심오하고 어려워서 재밌게 읽지는 않았던 것 같다. TV에서 만화로 보여줄 때는 만화라서 재밌게 봤지만 중간중간 '저게 무슨 말이지?'라며 모른 채로 넘어간 부분도 많았는데 이런 깊은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여운 그림체와 센스 있는 대사들을 통해 완벽히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 마저도 이 만화를 사랑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 만화가, 작가가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다.




몬티 슐츠와 공동으로 책을 엮은 작가 바나비 콘라드는 '소개의 말'에서 찰스 슐츠와의 대화와 따듯한 일화들을 소개했다.


나는 친절한 슐츠 씨에게 스스로 실패한 작가나 화가라고 생각하고 있는지부터 물었다.
"아니오, 내가 되고 싶었던 것은 만화가였어요. 그래서 지금은 행복합니다. 만화는 철저한 계산에서 나옵니다. 그러자면 어지간히 똑똑해야 합니다. 진짜 똑똑하면 다른 일을 할 테니까요. 그림도 어지간히 그려야지, 진짜 그림을 잘 그린다면 화가가 되겠죠. 진짜 글을 잘 쓴다면 책을 펴낼 테니까 어지간히 글을 잘 쓸 필요가 있는 거죠. 저는 어지간한 사람이라서 만화가 딱 어울립니다." <27 페이지>


교만하지도 비굴하지도 않으면서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적절히 표현한 이런 세련된 대답이라니.


바나비 콘라드는 찰스 슐츠와 오래 알고 지낸 사이였다. 그가 회상하는 찰스 슐츠와의 대화들과 마지막에 찰스 슐츠의 죽음을 믿고 싶지 않아 농담처럼 담담하게 던진 그의 진심 속에서 그가 얼마나 찰스 슐츠를 사랑했는지 알 수 있었다.




지붕 위에 않아 글을 쓰고 원고를 끝없이 퇴짜 맞는 스누피의 이야기는 감탄과 폭소를 터뜨리게 하고, 그런 스누피에게 해주는 유명한 작가들의 조언은 천금 같다.


대부분 자신들의 무명시절과 글쓰기의 괴로움에 대한 내용이며, 스누피를 응원하는 글이라 무엇인가에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들이다.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가 탈고된 후 100여 개의 출판사에서 출판을 거절당했고, "이렇게 짧은 이야기가 실린 책은 아무도 안 읽습니다."라는 답을 얻었다는 '잭 캔필드'의 이야기 같은 것들 말이다.


특히 가장 첫 번째 작가였던 '다니엘 스틸'의  "새벽 세 시에 찾아오는 영감을 기다리지 마라"라는 제목은, 목차를 보자마자 이 책을 사게 만든 이유 중 하나였다.


성실함의 가치를 이보다 더 세련되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 많은 이야기들을 짧은 시간에 줄줄이 써낸 작가는 타고난 사람이고 쉽게 쓸 것이라 생각했는데 역시 매일 마음을 다잡고 정해진 시간을 써나가는 노력이 있었다고 한다.



큰 기대 없이 호기심에 사본 책이었는데 나온 지 오래된 꽤 유명한 책이었다.

작가들이 정성껏 쓴 짧지만 다정한 글들, 유쾌한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스누피의 에피소드들, 세상을 떠난 찰스 슐츠를 그리워하는 그의 아들과 친구의 머리말 등으로 내용이 꽉 차 있어 한 장 한 장 아끼며 핥듯이 읽었다. 그리고 분명히 이 책을 조금 더 부드럽게 만드는 데에 김연수 작가의 번역 솜씨가 한몫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처음 책을 찾아보았던 목적대로 김연수 작가의 소설을 한편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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