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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춘 May 04. 2021

게으른 살림살이와 스타킹 세탁

굿 이나프

나는 아주 편파적으로 살림을 한다.

예를 들면, 집을 꾸미는 것을 좋아하고 인테리어 책은 즐겨보면서 청소를 무지하게 싫어하고 안 한다.

먼지가 굴러다니다가 화합하여 커다란 덩어리를 이루면 그제야 살짝 청소기를 돌린다.

그러면서 감성 화분을 하루 종일 검색한다.


그중에서 신고 난 스타킹을 빠는 일은 세상에서 제일 귀찮은 일 중 하나이다.

물론 게으른 나는 청소와 빨래, 요리 모두를 귀찮아하지만 더러워지지도 않은 스타킹을 매일 손빨래하는 건 못 해먹을 짓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스타킹을 매일 빨지 않고 모아놨다가 특별한 방법으로 빤다.

사실, 어디 내놓긴 부끄럽지만 나는 속으로 이 방법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이건 중학교 때 가정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말씀해 주신 아이디어인데 그때 그 말을 들으며 속으로 '저 선생님, 천재다'라고 생각해서 잊지 않고 있다가 어른이 되어서 실천한 방법이다.


1. 올이 나가서 버리게 된 판탈롱 스타킹을 하나 빨래집게에 집어 옷걸이에 걸어놓는다. 마치 선물이 들어가기를 기다리는 산타 할아버지 양말처럼.

2. 그러고는 신고 나서 빨래할 스타킹 들을 걸어놓은 스타킹에 매일 쑤셔 넣는다. 며칠 모아 놓으면 걸어놓은 스타킹이 '명란젓' 같은 모양이 되는데 그때 입구를 묶어서 통째로 세탁기에 돌린다.

3. 세탁이 끝나고 나면 그대로 빨래집게에 집어서 말린다.

4. 다 마르면 입구의 매듭을 풀고 뒤집어서 안에 들어있는 스타킹들을 서랍 안으로 쏟아 넣는다.

5. 내용물을 모두 뱉어내고 흐물흐물해진 스타킹 껍질을 다시 빨래집게에 집에 옷걸이에 걸어놓는다.


내가 이 방법을 시작할 때 엄마가 무지하게 잔소리를 하셨다.

그래가지고 때가 빠지겠냐고, 저녁에 손 씻는 김에 후다닥 빨아버리면 되지 뭐 하는 짓이냐고.


저녁에 손 씻는 데 1분이 걸리는데 스타킹을 같이 빨면 3분은 걸리는걸, 그걸 어떻게 '손 씻는 김에'라고 말할 수 있겠나.

이정도면 굿이나프, 적정살림법이지.


제대로 하지도 않지만 그나마 꾸역꾸역 하는 살림살이는 정말 너무 귀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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