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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춘 Apr 28. 2021

득 될 것 없는 일도 흔쾌히, 정성껏.

시간의 가성비보다 기쁨의 정도를

우리 동네의 많은 아이들이 무술 학원을 다니고 있다.

도복이 굉장히 멋진 데다가 호신술도 배울 수 있어 친구 따라 가입하는 원생이 늘어나더니, 동네에서 가장 인기 있는 체육 학원이 되었다.


아들과 조카도 옆집 누나를 보고 따라서 다니기 시작한 지 몇 년이 되었고, 드디어 지난주 검정띠를 따기 위한 승단심사를 보게 되었다.


승단심사 장소는 차로 1시간 거리였다. 아들이 아직도 멀미를 하는 편이라 아들과 조카는 학원차로 이동하지 않고 나와 남편이 데려다주었다.


주말 아침, 우리가 먼저 도착했고, 곧이어 관장님이 운전하시는 학원차가 도착했다.

시험을 볼 초등학생 아이들 세 명과 관장님, 그리고 스무 살 안팎쯤 돼 보이는 몇 명이 함께 차에서 내렸다. 이 학원에는 고등학생과 대학생도 꽤 여러 명이 다니는데 아마도 그 친구들이 동생들을 응원하기 위해서 같이 와준 것 같았다.


아이들을 들여보내고 남편과 나는 차에서 끝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저 학생들은 누구야?"

"어, 고등학생도 꽤 있더라고, 작년에 무술 학과 입학한 대학생도 있어. 그때 보니까 플래카드 붙였던데."

"아~ 그래? 그럼 저 사람들은 나중에 관장님처럼 하려고 지금 배우는 중인가?"

"글쎄, 관장님이 도와 달라고 부르셨나?"

"뭔가 배우러 온 거겠지. 이제 저쪽으로 나갈 거니까."

"토요일이니까 그냥 놀러 오는 셈 치고 온 거 아닐까?"

"그런가? 왜?"

"저 때는 그럴 때잖아. 꼭 가야 하는 일 아니어도 재밌어하고 열심히 하는 나이. 생각해 보면 대학교 때는 무슨 득 될 일도 없었는데 누가 뭐 한다고 하면 내 일처럼 따라다니기도 많이 했어. 그게 무슨 중요한 업무인 것처럼."

"그러네, 지금은 나랑 상관없는 일은 시간 아까워서 안 하는데. 얻는 거 없으면 안 하고."

"맞아. 저 때는 그런 시간 계산 안 했는데."

"여보야, 우리 너무 세상에 찌든 눈으로 저들을 보는 거 아냐?"




득 될 것 없는 일도 마음이 즐거워서 정성껏 하는, 그럴 때가 있었다.

친구가 옷을 사러 가는데도 따라가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주고, 과에서 하는 행사가 있는 날 새벽같이 일어나 이 일 저 일 챙기던 때가. 학원 선생님이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을 같이 하자고 하면 무슨 큰 임무를 부여받은 것처럼 시간 맞춰 나가서 열심히 청소와 정리를 하고 떡볶이를 얻어먹던 날들도 생각났다.


그때는 내가 꼭 가야 하는 자리인가 분위기를 살피지도, 시간 대비 성과가 따르는지 계산하는 것도 하지 않았다. 그냥, 지금 하고 싶은 일인가? 오늘 재미있을까? 생각할 뿐이었다.

마음이 내키는 대로 했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 관한 일이니까 해주고 싶어서 하는 일들로 하루하루를 채웠던 것 같다.


어느새 우리는 아무 이득 없이 자신의 하루를 기꺼이 제공하기 위해 이곳에 따라온 젊은 친구들을 한 번에 이해하기 힘든 나이가 되었나 보다.


동네 학원 초등학생들이 시험 보러 가는데 따라가서 응원하고 챙겨주는 것을 '미래에 관장님처럼 도장을 운영하고 싶으니까 견학차 온 거겠지?'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심사를 마친 아이들을 인도하며 나오는, 앞머리를 예쁘게 드라이하고 어설프지만 상큼하게 화장을 한 스무 살 남짓의 여학생을 보니 마음이 풋풋해졌다.


일분 일 초도 가성비를 생각하며 사용하는 40대 중반이지만, 가끔은 얻는 것이 없을지라도, 마음이 내켜서 하는 일을 흔쾌히, 정성껏 해보는 것도 삶을 풍요롭게 사는 방법인 것 같다.


하긴,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삶이라도 풍요롭게 만들어야 한다'라는 보상을 생각하고 있는걸 보면 그게 쉽게 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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