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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춘 May 10. 2021

코로나만 아니면 다 할 수 있을 것 같지?

망할 놈에 코로나긴 한데 조금 솔직해져 보면

어제까지 하늘에 장막이 드리운 듯 희뿌옇던 먼지가 감쪽같이 사라지고 햇살 가득한 아침 하늘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좋으면서도 심통이 났다.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연휴를 노려서 해외여행을 갔을 텐데,

주말마다 맛집이며 놀이동산을 여기저기 놀러 다녔을 텐데,

부모님과 같이 뷔페에 가서 외식을 하고 예쁜 카페에 가서 커피도 마시고 올 텐데,

수영장에 가서 녹초가 되게 수영을 하고 나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사 먹고 싶은데.


코로나만 없어지면 마음에 그늘이 하나도 남지 않을 것 같았다.

아무 걱정 없이 여행도 다닐 수 있고, 맛집을 찾아다닐 것 같고, 주말마다 수영장에 찜질방에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훨훨 놀러 다닐 것 같았다.


정말 그래?


문득,  물어보고 싶었다.

셀프 Q&A 한 번 해볼까?


Q. 2년 전에는 연휴 때마다 해외여행 다니고, 주말마다 놀러 다녔어?
A. 뭐... 그때도 해외여행은 일 년에 한 번 갈까 말까 했지. 사실 연휴가 생겨도 돈 때문에 못 갔지. 2년 전에 동남아라도 갔다 오려다가 돈 아까워서 부산 갔었어.
집에 있는 걸 좋아해서 솔직히 주말에 자주 나가지도 않았어.
Q. 그럼 그때는 수영장 자주 다녔어?
A. 가족 수영 강습을 받은 후에 매주 수영장에 가서 연습을 하자고 다짐했지만 강습이 끝난 몇 달 동안 아마도 두 번 정도 수영장에 갔을걸.


Q. 부모님하고 외식도 자주 했었나?
A. 음... 그때도 부모님을 모시고 외식을 하려면 애들 데리고 대가족이 출동해야 하다는 번거로움에  집에 음식을 사 가지고 와서 먹곤 했었지. 코로나가 생겼다고 해서 우리 집의 외식 문화가 크게 달라진 것도 없긴 해. 몇 년 후 부모님 팔순잔치 전까지는 코로나 끝나겠지?
Q. 그럼 코로나 전에는 무엇 때문에 즐기지 못하고 살았지?
A. 그때는 그때대로 걱정이 많았었지. 매달 모아야 할 돈이 부족할까 봐 여행은 자주 가지 못했고, 늦잠 자고 싶어서 놀러 가려다가 접을 때도 많았고, 컨디션이 좋지 못하면 감기 때문에 며칠 힘들까 봐 짜증부터 났었어.
그때라고 무기력하고 심드렁한 게 없었던가, 자주 번아웃이 온다고 하고 만사가 귀찮아 꼼짝 못 하겠다고 했었지. 정작 밖으로 돌아다니지 못하게 하는 지금은 나가고 싶어서 몸살인데 말이야.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의 걱정거리들 중에 많은 것들이 지금 생각해 보면 하잘 것 없네. 다시 돌아간다면 단 1초도 고민할 필요가 없는 일들이 태반이야.


Q. 눈 씻고 찾아봐도 없겠지만 좋은 것을 생각해봐. 그래도 다행인 것들을 꾸역꾸역 생각해 볼까?
A. 아, 그 지긋지긋한 마스크도 좋은 점이 있긴 있어.
아침에 화장하는 시간이 반으로 줄었어. 요즘 눈썹 그리고 눈 화장만 대충 해.

그리고 회사에서 정말 웃기 싫을 때 눈은 웃으면서 입은 삐죽거리거나 쓴웃음 짓는 거 완전 잘할 수 있어. 요즘은 마스크 벗은 후에도 습관 될까 봐 걱정이 될 만큼 눈과 입의 표정이 다르다니까. 그것도 은근히 스트레스 해소된다.





그때는 그때대로 걱정이 있었지.


그 겨울에, 십 년 만에 콘서트를 간다는 생각에 며칠을 설레며 다녀왔던 김동률 콘서트가 생각난다.

콘서트가 끝나고도 여운이 가시지 않아서 바로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맥주 한잔을 하던, 다시 20대가 된 것 같던 행복했던 그날도 마음속에는 수만 가지 크고 작은 걱정들이 있었다. 부모님께 아이를 맡기고 놀러 온 미안함, 늦게까지 안 자고 있을 아이 걱정, 내일 출근해야 하는데 피곤할 것 같은 불안한 마음, 너무 비싼 콘서트를 충동적으로 보고 와서 생활비 구멍 난 것 메꿀 걱정 등등, 나름대로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들이 수두룩했다.


만일, 몇 달 후에 온 세상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몇 년간 콘서트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하는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  그날의 고민들은 다 시답지 않은 것이었을 텐데 말이다.




Let’s make it happen.

<영화 Intern 중에서...>



늘 그렇듯이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고, 온 세계가 코로나와 싸우고 있지만 지금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내 생각밖에 없다.


두런두런 혼자 생각해보니 최대한 행복해질 방법이 꽤 많다.

내일부터는 가장 좋은 것들을 생각하면서 한번 해보자.


날씨가 맑은 날은 꼭 놓치지 말고 뚝방길로 나가, 아이가 자전거를 타는 동안 나는 조깅을 할 것.

미세먼지가 없는 날은 창문을 활짝 열고 집을 깨끗이 치우고 커피를 내려 마실 것.

부모님과 외식하기 어렵다면 스카프나 모자 같은 선물을 자주 해드릴 것.

판데믹 시즌이라 넘쳐나는 유튜브를 최대한 즐기며 매일 홈트를 할 것.

회사에서 입을 한 대 톡! 때리고 싶을 만큼 얄미운 사람과 얘기할 때는 마스크 속에서 마음껏 '메롱'을 해줄 것.



그리고, 다시 돌아간다면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기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코로나는 결국 물러갈 텐데 그때가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 잊어버릴 것이 뻔하다.

물론, 모든 것을 기억하고 살 수는 없고 또 그때는 그때대로 바쁘게 살겠지만 그래도 꼭 잊지 않고 싶은 것들이 있다.


아들이랑 길에서 호떡을 사 먹으며 걸어가는 걸 너무 해보고 싶었다는 것.

땡볕 아래 옹기종기 모여 앉아 운동장에서 달리기 하는 아이들을 응원하고 싶었다는 것.

지겨운 워크숍을 이틀이나 가는 것이 그렇게 괴로운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약 5분 정도는 했었다는 것.

가끔씩은 마음먹고 뮤지컬 같은 것도 보고 살자는 것.


지금은 지금대로 행복할 방법을 열심히 찾고, 그때가 되면 당연한 일상에 꼭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란다.

다 잊어버리지 않도록 생각날 때마다 기록해 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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