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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춘 Feb 27. 2022

부부싸움? 재발 방지를 위해 끝장을 봅니다.

부부싸움의 바람직한 마무리

친구 싸움, 형제싸움, 자매 싸움, 부녀 싸움, 연인 싸움. 이런 이름은 없다.

어떤 관계 간에 싸움이 일어나면 '친구와 싸웠다. 엄마와 싸웠다.' 정도로 설명한다.

그런데 부부간의 싸움은 '부부 싸움'이라는 정식 명칭까지 붙어있는 정체가 뚜렷한 싸움이다.


오늘 간략한 미니 부부싸움을 하는 중간에 시간이 나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부부는 왜 싸우지? 근데 왜 부부싸움이라는 이름까지 존재하는 거지? 명사화해서 이름이 존재해야 할 만큼 꼭 필요한 일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부부는 꼭 싸우기 마련이어서 일까? 결혼해서 부부로 살면서 겪는 일들 중 싸움은 중요한 절차이거나 일정 부분 포함되는 행위이기 때문일까?

조금 심각해서 다른 일은 손에 안 잡히고 그렇다고 딱히 싸움을 진행할 상황도 아닌 이런 순간에는 종종 시답지 않은 생각으로 빠질 때가 있다.


특히 우리 부부는 싸우는 현장에서 큰 소리를 내지 않고 주로 삐치고 보기 때문에 혼자 생각할 시간이 많아서 휴전하고 있는 동안에 내 생각은 자주 안드로메다로 간다.

 



오늘 싸움의 전말은 이랬다. 

"오늘 날씨도 좋은데 산책을 하던지 낮에 어디 좀 나갈까?"

"나 지금 싱크대 청소 중이고, 오후에 할 일 있어. 바빠."

"아 그래?"

큰 맘을 먹고 닦아보기로 한 가스레인지 후드에 찌든 기름때가 빠지지 않아 팔이 빠질 것 같은 순간이었다. 왜 안 하던 후드 청소 같은 것을 화창한 주말에 시작했는지 후회 중이기도 했다. 안 그래도 오후에 이것저것 계획한 일들을 해야 하는데 청소가 일찍 끝나지 않아 슬슬 짜증이 일던 참이었다. 하필 그때 산책이나 하자는 남편의 태평한 소리가 성질을 돗군 것이다.


괜히 한마디 더 쏘아붙이고 싶은 건 또 왜일까.

"지난주에 내가 말했던 거 있잖아. 내가 시도해 보고 싶은 일이 있다고 했는데 여보가 찬물 끼얹어서 안 했던 거 있잖아. 그거 해야 돼"

"아 그래? 그럼 찬물 한번 더 끼얹어 줘?"

아, 저런 재미도 없고 분위기 파악 못하는 농담, 완전 꼴 도보기 싫다.

 

바로 지난주에 나는 어딘가에 글을 연재할 기회가 생겼고, 그 글의 주제에 대해 남편에게 의견을 물었던 적이 있었다.

"이런 일들을 주제로 삼으면 어떨까?"

"솔루션은? 솔루션이 있는 거야? 뭐 해결책이 있어야지 그냥 말만 하면 별론데?"

말을 꺼내자마자 지적을 하는 남편이 얄미워서 성질을 버럭 냈던 그 상황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때 기분이 상했지만 남편이 외출해야 하는 상황이라 급하게 마무리하고 끝내서 내 마음에 앙금은 조금 남아있었다. 그 얘기를 다시 꺼냈더니 남편은 언제 그 일이 심각했냐는 듯 장난으로 받아치는 것이다.


아니, 사실은 본인도 빈정이 좀 상해서 저러는 게 분명하다. 산책하자고 좋게 말했는데 내가 톡 쏘았으니 그게 기분 나빠서 저렇게 나오는 거겠지. 그래도 그렇지 그걸 저렇게 밉살스럽게 말하다니.

나는 다시 당시의 기분을 고스란히 회복하여 동일한 강도로 화가 났다.


남편은 그때와 똑같이 다시 미안하다고 말했고, 난 빨리 끝내려는 미안하다는 말이 더 미워서 대꾸도 안 하고 가스레인지 후드와 싱크대까지 있는 힘을 다해 닦아댔다. 시작은 해놓고 귀찮아서 대충하고 그만두려고 했는데 중간에 싸우는 바람에 딱히 할 일이 없어 열심히 해버렸더니 싱크대가 반짝반짝 윤이나는 부차적인 효과를 거두긴 했다.


청소를 마치고도 분이 풀리지 않아서 나는 안방에, 남편은 아이방에 자리를 잡았다. 내가 금방 화를 풀지 않는다고 저쪽도 토라졌나 보다.

'치, 뭘 잘했다고 자기도 삐치고 난리야.'


화가 사그라질까 봐 걱정이라도 하는 듯 좀 전의 대화를 곱씹으며 분노에 풍무질을 하다 보니 생각이 꼬리를 물어 '부부싸움'이란 단어는 왜 있을까? 까지 오게 된 것이다.


...

그러던 차에 갑자기 동생네 부부가 너프건을 들고 들이닥쳤다.

어린이날 선물로 아이들에게 사준 건데 어린이날 기념 가족 사격대회를 하자며 생수병에 점수를 써붙인 총알받이까지 만들어왔다.

각자 양쪽 방에서 휴전 중이던 우리는 솔직하게 싸웠다고 할 수 없어 사이좋은 척 연기를 하며 경기에 참여했고, 편을 나누어 아이스크림 내기 총쏘기 시합을 하고 나니 전의를 상실하여 싸움은 시시하게 마무리되고 말았다.

 



왜 같은 주제로 재발할까?

칼로 물 베기.

아무리 베어봤자 결코 갈라질 수 없다는 뜻에서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말을 했겠지만 사실 아무리 베어도 끝이 안 나고 계속 벨 수 있으니 반복되는 싸움이라는 뜻도 있지 않을까?


근데 이번 싸움은 왜 재발한 걸까? 아무래도 끝장을 안 봤기 때문인 것 같다.

혼자가 됐던 쌍방 합의가 됐던 갈등은 결론이 나야 한다.

후련하게, 그게 아니면 앙금 없이라도 풀어야 하는데 상황에 맞춰 억지로 끝냈다 보니 희미하게 엉겨있던 것들이 다시 뭉치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보통 부부싸움은 주변 상황 때문에 흐지부지 마무리가 된다.

소리 높여하고 싶은 말이 차고 넘치지만 애가 옆에 있어서 목소리도 죽이고, 말도 줄이고 일단 여기서 마무리하는 것이 가장 잦은 경우.

혹은 친정이나 시댁 식구들과 만나야 할 시간이어서 급하게 방긋거리는 표정으로 연기를 해야 할 때도 있다. 연기를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얼굴로 웃으면서 말투까지 다정하게 한번 연기하고 나면 싸울 맛이 떨어다. 화도 좀 풀리고, 마주 보며 웃기도 했으니 대충 싸우던 타이밍이 지나가 버리는 것이다.


아주 사소한 감정 대립이었다거나 어디 가서 내놓기도 부끄러운 한심한 주제였다면 이런 주변 상황이 도움이 되어 싸움이 해소된다.


그런데 확실히 마음이 다친 일들, 뭔가 결론에 도달해야 하는 일들, 너무 서운해서 두고두고 생각날 일들은 그렇게 한번 흩어졌어도 빌미만 생기면 다시 뭉치고 만다.

그래서 끝장을 봐야 한다.




물어뜯고 싸워서 한쪽이 전사할 때까지 끝장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전달하기라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꼬는 말투로 또 다른 다툼을 유발하면 위험하다. 사실 부부싸움이 시작된 원인은 상대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경우가 많다. 내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다른 때 같으면 넘어갈 것을 한번 쏘아 줬더니 일이 커져버린 다던가, 가볍게 전달하면 될 불만을 가슴속에 꼭꼭 갈무리해놨다가 더는 담아둘 공간이 없을 때 빵 터뜨려 버리는 것, 그럼 상대는 자기가 맨날 하던 짓거리를 한 것뿐인데 이 사람이 오늘 왜 폭발한 건지 알 길이 없다.

요런 것들을 알면서도 인정하기 싫은 것도 싸움을 질질 끄는 요인중 하나이다.


이런 적 있지 않은가?

"대체 왜 그래? 뭐 땜에 그래? A 사건 때문이야?"

"아~니야."

"그럼 B 사건 때문이야?"

"하.. 참 나... 내가 고작 B 사건 때문에 이러는 걸로 보여?"

그런데 B 사건 때문이 맞다. 그러나 B 사건은 너무 하찮은 사건이라 이것 때문에 이 난리를 피운다는 사실을 인정하자니 내가 너무 없어 보인다. 인정 못해.


이때 마음 딱 먹고 'B 사건 때문이고 나 그것 때문에 화가 난 거다'라고 솔직히 인정하면 일이 쉽게 풀린다.


사과를 받지 못한다고 해도 서로 원인을 알고, 합의까지는 아니어도 주의하자 정도의 결론만 나와도 싸움 재발률이 줄어든다. 혹시 반복되어 재발하더라도 훨씬 쉽게 끝이 난다.




끝장을 자주 보면 시작 횟수가 줄어든다.

우리 부부가 싸우는 원인 중에 하나는, 내가 뭔가를 말하고 있을 때 남편이 내 얘기를 다 듣지 않고 중간에 자기가 생각나는 주제로 화제롤 돌리는 것이다. 신혼 때부터 이것 때문에 다툰 적이 많았다.

처음에는 이 별것 아닌 이유로 몇 시간 동안 기분이 상해있기도 했다.

아니, 결혼 전에는 그렇게 내 눈을 바라보며 초롱초롱 내 얘기에 집중하더니 그건 다 거짓 행동이었던가? 일종의 사기 결혼이 아닐까? 이런 생각에 서럽게까지 했다.


"당신은 매번 그래. 맨날 내 얘기 안 들어."

"내가 언제 그랬어. 그리고 왜 자꾸 지난 일을 말해. 오늘 얘기만 해."

"화난 게 오늘 때문이 아닌데 어떻게 오늘 얘기만 해. 오늘 한 번으로 화내는 사람이 어딨어. 자꾸 그러니까 감정이 쌓여서 폭발하는 거 아냐."

이게 이 주제애 대한 우리 부부의 레퍼토리이다.


아직도 이 문제는 가끔 우리 부부 말다툼의 주제가 되곤 한다. 그런데 확실히 싸움의 강도와 길이가 줄어들었다.

내가 또 참을성 없이 성질 자랑을 하며 말을 잘라먹는다는 지적을 하면 남편이 말한다.

"그래도 나 많이 고쳐지지 않았어? 지금 하는 얘기는 예전에 그랬던 거잖아. 지금은 안 그러잖아."

그 말을 듣고 나면 조금 미안해진다. 맞지, 이 사람이 요즘은 안 그러려고 노력하고 이제 전보다 내 얘기도 잘 들어주지. 내가 그걸 자꾸 까먹네. 하고 반성도 한다.


그래서 부부싸움은 필요하다. 그냥 넘어가는 게 좋을 때도 있지만 내 마음에 계속 남아있을 것 같은 것들은 차분하게 전달해 주는 것이 좋다. 상대와의 의견이 도저히 좁혀지지 않는 부분이면 나 혼자 고민해서 결론이라도 내야 한다.

'이 문제는 합의할 수 없다.'라는 결론이 나면 그건 저 사람 영역으로 그냥 두기로 했다.


이렇게 '저 사람 영역'으로 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그중 가장 큰 것은 남편의 '잊어버림'에 대한 것이다. 건망증이랑은 좀 다르다.

남편은 가끔 무서울 만큼 자잘한 사건들을 잊어버리는데 그 정도가 너무 심해서 어떨 때는 병원에 가봐야 하나 싶을 때도 있다. 그런데 좀 약 오르는 건 자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우산을 챙겨야 한다거나 다음날 아침에 들고나갈 물건 세 가지 챙기기. 이런 것들은 신기할 만큼 기억을 잘한다. 그런데 내가 어제 밥 먹으면서 해준 친구 이야기 라던가 다 쓴 행주를 어디다 쌓아놓아야 하는지, 비닐봉지 분류는 어떤 기준으로 하는지 등 내가 설렁설렁 설명한 것들은 하얗게 잊어버리고 그런 말은 들은 적도 없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이게 너무 기가 막혀서 싸우기도 여러 번이었는데 세월이 지나며 겪어보니 이건 이 사람의 어쩔 수 없는 단점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내가 길눈이 어두워서 종로에서 명동 가는 길을 20년 동안 찾지 못하는 것과 같다.


쌍방 합의던, 혼자 내리는 결론이던 '이렇게 하기로 한다'라는 뭔가가 쥐어져야 같은 주제로 싸움 재발이 안된다. 그러니 만일 좀 토론이 필요한 문제로 싸우고 있었다거나, 상당히 강하게 감정이 상해서 그걸 푸는 중이었다면 중단된 싸움은 다시 시작하는 것이 좋다. 감정이 격해서 내가 받은 만큼 돌려주고 싶어서 가장 뾰족한 말로 갚아주는 것은 물론 피해야 한다. 세상 도움이 안 된다.

하지만 하고 싶은 말을 차분히 할 만큼 감정 정리가 되었다면 그 얘기를 전달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 비슷한 상황에서 똑같은 강도로 싸움을 시작하지 않는다.


P.S.

참, 여기서 재발이란 이번 건에 대한 재발을 말한다.

한 가지 병 앓고 났다고 다른 병에 안 걸리겠는가? 부부 싸움할 거리는 천지에 널려있다. 살다 보면 그 건수들이 줄어들겠지만 아예 안 생기지는 않는 것 같다.

다른 원인으로 싸움이 시작됐다면 그건 그거대로 재발방지를 위해 열심히 싸우기로 한다.


2021년 5월의 일기 중 일부였는데 이제야 생각이 정리되어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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