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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춘 Feb 20. 2022

다 같이 잘 살아야 하는 이유

다송이네 스며든 비극 _ 영화 기생충 中

딱 그 짝이다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에 대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웃고 즐기면서 봤는데,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을 때 보 여기저기 상처가 나있을 거라고.


기괴하지만 웃기고, 안타까운데 왠지 눈물은 안나는 독특한 영화.

그런데 다 보고 나서 며칠 동안 계속 각났다. 본 지 2년이 다 돼 가는 지금도 몇 장면은 불쑥불쑥 떠오른다.


그중 가끔 머릿속을 맴돌며 끄느름하게 지속되는 생각 하나.


대체 부유한 주인집 가족에게 왜 비극이 일어났던 걸까. 그들이 뭔가를 잘못한 걸까? 


이선균과 조여정이 나쁜 사람들이었냐 하 그렇지 않다. 오히려 관대하고 좋은 부자에 속한다.


물론 지하철 냄새가 나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 없이 말하는 장면에서 내 얘기를 하는 듯 움찔 하긴 했다. 서민들에게 반감을 주는 대사였을지 모르나 운전기사의 칼을 맞고 죽을 만큼 큰 잘못은 아니다.


채끝 등심이 들어간 짜파구리를 아줌마 주려다가 아까운 듯 자기가 먹은 것도 물건의 주인으로서 할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자신들의 부를 과하게 누리고 살지만, 고용인들에게 인색하지 않았고, 진솔하게 속 얘기를 하기도 했다. 조금 무감각하고 어리석은 면이 있을 뿐이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부리는 사람들이 집안 곳곳에서 호화로움을 경험하는 것이 가능할 만큼 자유롭게 해주었다.


그런데도 그들 가족은 비극을 겪었다. 마치 권선징악을 주제로 하는 영화처럼 끔찍한 결말을 맞았다.


그 가족이 왜 그런 일을 겪어야 했는지, 이 이야기가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한가지 답으로 설명 되지는 않을 것이다.


가장 단순한 답 하나는, 사회 구성원이 다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모두가 부자가 될 수는 없지만 최소한 비참할 만큼 가난한 경우 줄여야 한다.


극도의 궁핍에 몰린 상황에서 도덕적 원칙을 지키기는 어렵다.




학창 시절 늦게 들어온 나에게 아빠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요즘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사회가 뒤숭숭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람들도 불안정하고. 그래서 범죄도 많이 일어날 수 있어. 일찍 다녀라."


늦게까지 놀고 싶은걸 제지당하는 상황이라 별로 그 말을 듣고 싶지는 않았다. 경제와 일찍 다니는 게 뭔 상관인가 좀 맥락에 안 맞는 말이라고도 생각했다.


그 후로도 나는 종종 늦게 들어왔지만 늦을 때마다 아빠 말씀이 영 불편하게 기억나곤 했다.


요즘 그 말씀이 가끔 생각다.

광에서 인심 난다고, 자기 상황이 여유롭고 편안하면 대부분 착하게 산다. 위기가 닥치고, 특히 가족이 궁지에 몰릴 때, 그 평정심을 지키기 쉽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극한의 상황에서도 도덕적으로 옳은 판단을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내 상황이 안 좋아지면 타인에 대한 원망이 늘게 되고, 그런 상황에 처하지 않았다면 하지 않았을 행동도 할 수 있게 다.


기생충의 가족들이 먹거리 X파일로 인한 피해를 입지 않아 그런대로 대만 카스테라 매장을 잘 유지했더라면 이런 비극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당한 것은 아니다.

분명 나쁜 사람들. 자기 것이 아닌 것을 너무 많이 탐냈고, 적당 모르고 극한까지 끌고 갔다.


아들과 딸이 사기를 쳐서 과외 선생이 됐으면 그 정도로 만족 것이지 굳이 멀쩡히 일하던 운전기사와 가정부를 음해하여 쫓아내고 자신들이 그 자리를 차고 들어가 부유함을 체험할 필요까지는 없지 않느냐는 말이다.


하지만 경계에 있는 사람들이 한 발짝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순식간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좋은 사람이길 원하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평범한 도덕심을 유지하며 산다. 가난하지만 훌륭한 사람들이 부자이면서 착한 사람보다 더 많다.


그러나 그 경계에 있는 자들 중에는 위기에 몰릴 때 남의 것을 탐하고, 그것을 취하는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도 있다.


결국 확률의 문제이다. 극도의 가난이 늘어날수록 범죄율이 늘어날 수 있다.


생활이 안정될수록 경계에 있 사람들이 도덕적 안전선 안으로 들어올 가능성이 높아진다


당장 끼니를 이을 수없는 궁핍함.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할 정도의 가난으로 인한 모멸감. 런 것들은 힘겹게 붙잡고 있던 종잇장같이 얇아진 개인의 도덕심을 한순간에 놓아버리게 만든다.


모두 다 잘 살게 만드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 오죽하면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 못한다는 말이 있겠는가. 그러나 사회와 국가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극빈자를 줄이는 일은 국가뿐 아니라 구성원 모두자신들의 안정된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노력해야 할 일이다.


최소한 누군가는 하루에 수십억을 쉽게 손에 넣는데, 다른 누군가는 굶어 죽어가는 자식을 손놓고 봐야하는 일이 한 사회 안에서 발생하지는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런 것들이 이루어질 때 잘 사는 나라, 살기 좋은 사회가 되는 것이 아닐까.


그 목표가 완성될 수 없는 이상향 일지라, 그곳을 는 모습으로 나라가 운영되고, 인도 그 사회의 가치를 깨닫고 최소한의 책임을 다하는 것. 그것이 건강한 세상을 만들어 내는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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