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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춘 Jan 20. 2022

띠지에 대하여...

나에 대한 남편의 불만 중 하나는 책의 띠지를 못 버리게 한다는 점이다.

띠지는 책의 일부로 생각되어 좀처럼 버려지지가 않는다.

히 작가의 사진이 있는 책은 더 그렇다.



예전에 에쿠니 가오리의 유명한 사진이 있었다.  

앞머리가 내려오지 않게 머리를 뒤로 넘겨 묶고 목선이 드러나는 옷을 입은 옆모습 사진이다. 무언가를 내려다보는지 시선은 아래를 향한 채로 차분하게 입을 다문  모습이 그윽하고 아름다웠다.

그 사진이 인상적이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오랫동안 그의  소설마다 이 사진이  박혀있는 띠지가 포함되어있었다. 나는 에쿠니 가오리의 생각에 잠긴듯한 그 표정이 좋아 그의 책마다 달려 나온 띠지를 버리지 않았다. 책을 열고 닫을 때 거추장스러워 어떤 책은 테이프로 살짝 고정해 놓기도 했다.



띠지가 표지보다 예쁜 경우도 많다. 책 표지의 일부인 띠지는 빼버리면 표지가 못나 보인다. 


어떤 책은 띠지에 실린 누군가의 추천사가 좋아서 보관하기도 한다. 오래된 책에서 고인이 된 다른 작가의 추천사를 발견하면 그것 또한 반갑다. 



감성적인 색깔과 문구를 넣어 도톰하게 만들어 놓은 것들도 있다. 그럴 때는  띠지를 조심스럽게 잘라서 펀치로 구멍을 뚫어 끈을 달고 책갈피로 쓰는 수고스러운 짓을 하기도 한다.

딱히 쓸데가 없는데도  뭔가 버리고 싶지 않은 것들은 그렇게 집안 어딘가에 잘 모셔 두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늑해진다.



남편은 상당히 불편해한다.

너무 성가셔서 꼭 버리고 싶을 때는 나에게 물어본다.

그럼 나는 꽤 오래 고민을 하면서 버리지 않아야 할 이유가 있는 책인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그러다 보면 띠지를 모으는 그 자체에 집착하여, 욕심나지 않는데도 계속 보관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자기 계발서나 실용서는 꼭 띠지가 매력적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광고 문구를 너무 강렬하게 넣어 책의 본 내용에 걸맞지 않다고 생각되는 경우는 시원하게 버리기도 한다.


어떤 띠지는 책을 쓴 저자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것 같이 본문과 느낌이 달라서, 그런 경우는 내가 알아서 버려준다.  잘못 해석한 것일 수도 있지만 내가 산 책이므로 그런 건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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