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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춘 May 13. 2021

알림장 속 희미한 은폐의 흔적

옳다고 생각하는 걸 말해주는수밖에

아들 알림장 마지막 줄에 뭔가를 썼다가 지운 흔적이 희미하게 보인다. 은폐의 냄새가 난다.

다른 식구들 모르게 아들을 불러서 물어봤다.


"이거 뭐라고 썼다가 지운 거 같은데 뭐지?"

"어, 아... 그거... "

단박에 대답하지 못하고 스물스물 구석으로 나를 몰아가는 것이 숨기는 게 있긴 있는 것이다.


"사실은, 다음 주에 시험 본다는 건데 내가 지웠어."

요즘 공부에 대한 잔소리를 좀 했더니 시험공부하라고 할까 봐 미리 수를 썼나 보다. 그래도 바로 실토하는 것을 보니 아직 애는 애다.


"너도 이게 멋진 짓이 아닌 거 말 안 해도 알지? 시험 좀 못 보고, 공부하라고 잔소리 좀 들으면 어때. 이건 나쁜 거야, 엄마하고 신뢰가 깨지게 되는 거잖아. 그래도 솔직히 말해줘서 고마워. 자기가 생각하기에 부끄러운 일은 하지 말고 살려고 노력해야 돼."


몇 마디 해줬고, 아이도 수긍했지만 마음이 영 깔끔하지 않았다. 거짓말해봤자 다 들통난다는 걸 깨우쳐 주고 싶어서 한마디 덧붙였다.

"그리고, 네가 모르는 게 있는데 선생님이 알림장 앱에 시험 언제 보는지 다 남겨놓으셨어."


고개를 숙인 얼굴 옆을 볼이 실룩하며 슬쩍 웃는 것이 보인다.  그럴 줄은 몰랐던 것 같다.

학교를 다니고 있고 학생이니까 지금 해야 될 일은 하자는 잔소리를 또 한바탕 하고 마무리했다.


싫은 얘기를 자꾸 하면 듣기 싫어서 거짓말을 하는 것이 사람 심리일 텐데 그렇다고 공부하란 말을 하지 않고 살 수도 없으니 난감하다.


공부는 꼭 필요하니 해야 한다고 해놓고, 그게 싫어서 피하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은 더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이 입장에서는 모순으로 느껴지기도 하겠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사람 사는 게 앞뒤 안 맞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해줄 수밖에.


'부모는 지금 변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변하게 하는 사람.'이라는 글을 서천석 선생님 책에서 읽었던 것 같다. 불안해하거나 조바심 내지 않고 같은 얘기를 될 때까지 반복하기로 한 번 더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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