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욕심은 있죠. 프로젝트도 잘하고 싶고. 그런데 시어머니가 아기 봐주시니까 바로 칼퇴근할 수밖에 없어요. 새벽에 더 일찍 나오고 일찍 퇴근하면 좋은데, 말만 시차 출퇴근 권장하지 지난번에 본부장님이 시차 출퇴근하는 사람들은 일 안 하는 사람이라고 돌려 까셨잖아요. 출퇴근 시간이 도합 3시간이라 체력도 바닥이에요. 몸도 자꾸 아프고요. 근데 시어머니한테 애 맡겨야 하니까 회사 가까운 데로 이사도 못 와요. 지난주에는 어린이집 선생님 아들이 코로나 확진돼서 어린이 집도 못 보냈잖아요. 오전에는 시어머니도 힘드셔서 애 못 봐주시는데 연차도 못 내겠고, 자꾸 확진자 생길 때마다 애 어린이집 못 보내서 돌발상황 생기고 미치겠어요."
... 총체적 난국이라고 한다. 며칠 전, 막 두 살 된 아기 엄마인 동료의 하소연이었다.
고개는 끄덕여져도 해줄 말은 없는 그 얘기들을 듣고 있자니, 아이가 어릴 때 내가 겪었던 이런저런 일들이 떠올랐다.
워킹맘에게 가장 골치 아픈 비상사태는 아이가 아플 때가 아니다. 아이 봐주는 사람이 아플 때이다. 아이가 아픈데 출근을 해야 하는 날은 속상해서 눈물이 나지만 현실적인 타격은 크지 않다. 다만 마음이 지옥일 뿐이다. 그러나 아이 봐주는 사람이 아픈 날은 오만 가지가 꼬여 버리고, 그날은 그냥 지옥의 날이 된다. 특히 최악의 경우는 아이와 아이 봐주는 사람이 함께 아플 때.
그날이 딱 그런 날이었다. 2012년 경이었으니 아이가 세 살 정도 되었을 때 인가보다.
애는 지독한 감기에 걸렸고 그 감기가 애를 봐주시는 친정엄마에게 옮겨졌다.
아기와 친정엄마가 동시에 열이 나고 있어서 엄마가 아기를 데리고 하루 종일 있을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둘 다 상태가 심했다. 그런데 나는 TFT에 속해있던 때여서 도저히 돌발 연차를 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주말출근과 야근도 밥먹듯이 하던 때였다. 남편도 그날따라 본인이 해야 하는 중요한 보고가 있어 연차를 낼 수 없었다. 엄마는 물론 괜찮으니까 출근하라고 하셨다. 그럼 그 상황에서 엄마가 뭐라고 할 수 있었겠는가.
내가 처리해야 하는 중요한 일은 오전 중에 끝낼 수 있으니, 그럼 오전에 일을 빨리 마치고 오후 반차를 내고 오겠다고 했다. 오후 반차는 2시부 터지만 양해를 얻어 점심시간에 퇴근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두 시간 문서를 작성하고, 다른 사람 문서도 취합해서 외부기관에 보내고, 그쪽 담당자에게서 확답을 받으면 되는 일이었다.
오전에 일을 마치고 점심시간에 나올 수 있을 것 같았다.
출근하자마자 급히 내가 작성할 문서는 완료했고, 다른 팀원들 자료를 받으려고 재촉을 했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명언은 왜 그렇게 결정적인 순간에 빛을 발하는지, 다른 사람들의 업무가 예상외로 순탄치 않아 자꾸 일이 지체되는 것이었다. 누구 한 명이 빨리 해 준다고 되는 일도 아니었고, 누구의 잘못도 아니어서 더 대책이 없었다.
일은 마무리되지 않은 채로 점심시간이 되었다. 밥을 먹으러 나갈 정신도 없어서, 다른 팀원들이 자료를 주면 바로 보낼 수 있도록 기다리고 있었다. 점심시간 이후에도 일은 계속되었고, 이 사람 저 사람이 연결된 탓에 꼬이던 일은 결국 2시에도 끝나지 않았다. 일을 끝내고 나니 3시가 넘어갔다. 이 시간에 집에 가봤자 4시가 넘을 텐데 반차를 낼 필요도 없는 시간이 되어버렸다. 엄마에게 전화해 보니 아이 열도 떨어지고 엄마도 많이 좋아졌다고 신경 쓰지 말라고 하셨다. 눈물이 핑 돌았다.
허탈한 마음에 자리로 돌아가는데 다른 동료가 물었다. "어? 반차 낸다고 하지 않았아요? 왜 안 갔어요?" 아까는 눈물만 핑 돌았는데 이제 정말 울컥 울음이 나올 것 같았다. 다들 있는데서 우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어 화장실에 들어가 혼자 울었다. 엄마와 아기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리고 밥도 못 먹고 동동거리던 내 신세가 처량하게 느껴졌다. 저 사무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원망스러웠다.
그날은 그렇게 지나갔고 그 후에도 아이는 자라면서 여러 번 아팠지만 유독 그날만이 기억에 남는 것은 엄마까지 아팠던 그 상황이 너무 힘들어서였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뭐 그리 안달복달할 일도 아니었다. 그냥 주변 동료에게 부탁을 하고 갔어도 되는 일이었다. 아기가 아파서 집에 가야 하니 취합 좀 대신해주고, 외부업체에 자료 보내서 일정 좀 받아달라...라고 부탁하면 될 일. 입장을 바꿔서 누가 나한테 그 정도 부탁을 한다고 해도 절대로 부담스러울 일이 아니었다. 여성 직원을 차별하는 발언을 하는 분위기도 아니었고, 오히려 그 정도 급한데 부탁하지 않고 끙끙 앓은 것을 알면 서운해할 만큼 좋은 동료들이 더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가 세워놓은 기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아기가 아파서 일찍 가야 한다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 '부탁하면 안 돼, 할 일 못하는 걸로 보이면 안 돼, 애 엄마인 거 티 내면 안 돼. 공사 구분 못하는 사람으로 보이면 안 돼... '
요즘 분위기는 더 많이 좋아졌다. 남자 직원들도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기 위해 반차를 쓰고, 아이 입학, 졸업식에 당당하게 휴가를 내기도 한다. 아빠들이 육아휴직을 내는 경우도 가끔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워킹맘이 느끼는 미묘한 압박감은 남아있다.
2020 년 지금, 내가 8년 전에 있었던 이 일이 생각나 담담히 말해주었을 때, 나에게 하소연을 하던 아기 엄마인 동료는 눈물을 흘렸다. 별로 감정적으로 얘기하지도 않았고 그냥 나도 그런 적 있었어.라고 웃으며 말했는데도 그 친구는 울었다.
그리고 그날 집에 와서 오래전 일이라며 이 이야기를 남편에게 해주었을 때 남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랬구나, 그렇지만 남자들이었으면 그냥 별생각 없이 부탁했을 거야. 여자들이 오히려 더 신경을 쓰는 거지."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맞는 말인데도, 뭔가 목구멍에 걸려서 나올 듯 나오지 못하는 답답함이 있었다. 뭐랄까, 그냥 부탁해도 될 일이 부탁이 안 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남편은 나와 같은 회사에 입사하여 여러 가지 힘든 일을 같이 겪어 누구보다도 워킹맘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 미묘한 차이는 영원히 감지하지 못할 것이다. 설명해 주기는 어려웠다.
그 차이이다. 같은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냥 부탁하면 될 일을 왜 부탁하지 못하는지바로 느끼는 것과 그렇지 못하는 것. 그 차이이다.
그러고 보니, 그 당시에 남편에게 좀 더 강하게 요구를 할 수도 있었다.
내가 상황이 안되니 당신이 반차를 내달라,라고 했다면 어떻게든 나와 교대로 시간을 맞춰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이성적으로 볼 때 그날 남편보다 내 상황이 더 나았고, 내가 부탁하고 나오는 것이 더 수월하다는 것을... 혹시라도 남편이, '그냥 사람들한테 부탁해도 되는 상황이었는데 왜 못했어?'라고 물어온다면, '공사 구분 못하는 사람으로 보이기 싫어, 내가 할 일 미루는 걸로 보이기 싫어, 애 엄마라 그러는 것처럼 보이기 싫어...'라고 대답하기 싫어서였을까? 왜 그렇게 힘들어하면서도 기대지 못했을까.
다시 그날로 돌아간다면 그저 담담하게 주변에 부탁하고 반차를 낼 수 있었을까? 아닐 것 같다. 나는 똑같이 안절부절못하며 자존심도 무엇도 아닌 그 보이지 않는 기준을 지키려고, 반차를 쓰지 못하고 화장실에 가서 울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