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좀 덜하지만 10년 전만 해도 우리 회사에서 육아휴직을 쓰는 사람은 거의 없어서 3개월에 10일을 더 붙여서 백일잔치를 마치고 복귀하는 것도 조금 눈치가 보이던 시절이었다.
임신기간 중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줄곧 했지만 출산휴가 3개월을 보내면서 내가 전업주부로서의 재능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매일 아침 출근'과 '회식 후 노래방 가기'가 너무 그리웠다. 당시에 김남주 주연의 '넝쿨째 굴러온 당신'을 보다가 김남주가 노래방에서 폭탄주를 먹는 모습이 부럽기까지 했었다.
그런데 막상 복귀 날짜가 다가오자 그다지 격하지 않았던 모성애가 무르익는 건지 아이를 놓고 출근하는 것이 뭔가 서럽고 마음이 아팠다. 분유 먹어도 잘만 큰다고 복귀전에 젖 끊고 가볍게 출근하자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슬슬 모유수유에 대한 집착이 커지기 시작했다. 어차피 젖 양도 많고, 수유용품도 시판되는 것은 모조리 사놓았고, 회사에 수유실도 생겼다고 하니 한번 해보기로 했다.
낮에 애기 봐주시는 친정엄마와, 같은 회사를 다니고 있는 남편과 연대하여 열심히 모유수유를 했다. 생각해보면 당시 생활의 가장 큰 비중이 모유수유 관련 작업이었던 것 같다. 아이가 빨지 않으면 젖이 금세 줄어드니 집에 오면 한 번이라도 젖을 더 빨리고, 회사에서는 하루 두 번 꾸준히 유축을 했다. 시간이 부족하다는 생각 때문에 동료들과 커피 한잔 제대로 마시지 못했던 것 같다. 집에 오면 손만 씻고 바로 아기 젖을 먹이고, 그러고 나면 유축 용품을 소독하고, 남편도 나도 하루하루가 숨 가빴다.
복귀를 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서 TF로 발령을 받았다.
본부장이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아 분위기가 어수선할 때였다. 본부장이 큰 뜻을 품고 TF를 발족했는데, 각 팀별로 한 사람씩 보내달라는 거였다. 팀장 입장에서 사람을 한 명 뺏기는 것이라 반갑지 않은 일이었고, 출산 휴가 후 아직 자리를 잡지 않은 나를 보내는 것이 딱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름대로 본부장이 힘을 실어주는 TF였기 때문에 어찌 보면 기회였다. 하지만 나는 젖먹이 어린애를 둔 애엄마였으니 야근도하고 주말근무도 해야 하는 TF 발령이 많이 부담스러웠다. 특히 좁은 TF 사무실에서 7명의 남자 직원들과 종일 붙어서 일을 해야 하는데 하루에 두어 번 유축을 해야 하는 것이 가장 큰 걱정이었다.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는 것도 아니고 20분 정도는 유축을 하러 가야 하는데 "유축하고 올게요~"라고 상큼하게 말하고 나올 자신이 없었다.
그 생각을 하니 괜히 울화가 치밀었다. 익숙한 내 업무를 그대로 했다면 몇 달 유축해야 하는 기간이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았을 텐데, 이 시점에서 나를 갑자기 다른 팀으로 보내다시피 한 팀장이 원망스러웠다.
오기가 발동해서 어떻게든 일 년을 꼬박 젖을 먹이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다행히 TF 인력들이 대부분 애아빠들 이어서 자신들이 먼저 애 키우는 얘기도 하고 금세 친해지게 되었다. 또 하나 다행스러운 것은 거의 흡연자들이라 그들이 담배 피우러 가는 동안 나도 유축하러 가는 것이 눈치 보이지 않아 나의 직장 생활중 모유수유는 순탄하게 진행되었다.
갑작스러운 해외 출장이 생기기 전까지는 말이다.
새로운 제품 컨셉를 위한 TF라서 벤치마킹을 위한 일본 출장이 계획되었다. 본부장이 포부를 가지고 TF를 발족시켰으니 멤버들의 사기도 북돋울 겸, 도쿄 전자상가와 업체도 둘러보는 가벼운 일정의 출장이었다. 다녀와서 써야 하는 보고서도 부담스럽지 않아서 모두들 즐거워했다.
모유수유 중인 나만 청천벽력이었다. 갑작스러운 출장 일정에 수유를 끊고 갈 수도 없었다. 2박 3일 짧을 출장인데 짐을 바리바리 싸갈 것도 아니고 다리미만 한 유축기를 가져가기도 힘들었다. 남자 직원 3명과 한 조가 되어 가는 것인데 하루 종일 돌아다녀야 하는 벤치마킹 출장 중에 어떻게 유축을 하나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급하게 휴대용 유축기를 주문했다. 출장지에서 짠 젖을 보관할 수는 없으니 젖이 불 때마다 짜서 버리기 위한 용도였다.
깔때기 같은 흡입기를 가슴에 대고 손 운동을 할 때 쓰는 악력기처럼 생긴 손잡이를 반복해서 누르면 깔때기 반대편에 연결된 젖병으로 젖이 들어가는 시스템이었다.
그래도 유축기를 사놓으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매일 낮에 떨어져 있는데도 이틀간 아기를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릿했다. 평소에 잘 놀아줄 것이지 같이 있을 때는 애가 보챈다고 짜증을 내면서 하루 이틀 못 본다고 애틋해하는 건 또 뭔가.
아무튼 새벽에 집에서 나오면서 애 얼굴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 보고 괜히 눈물이 핑 돌았다. 뭔가 서러운 마음에 공항버스를 타자 마자 한바탕 울었다. 누가 보면 뭔 일 있어서 먼 나라로 영영 떠나는 사람인 줄 알았을 것이다.
한껏 가라앉은 마음으로 공항에 도착했다.
동료를 만나서 출국 절차를 밟았다. 그래도 사람들을 만나니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고 공항이 주는 활기에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면세점의 화려한 불빛 사이를 누비며 조금씩 설레는 마음도 들기 시작했다. 애를 봐주느라 매일 녹초가 되어있는 엄마와, 거의 엄마 집에 살다시피 하면서 거들어주고 있는 우리 이모 선물도 샀다. 가족들 선물을 사고 나니 조금 더 즐거워졌다.
시간이 되어 탑승을 했다.
일본까지 두 시간도 채 안 되는 시간이지만 비행기에 타고나니 안락한 마음이 들었다.
아, 나 이틀 동안 애는 안 챙겨도 되겠구나...
그러네? 이틀 동안 애랑 떨어져 있네? 젖 안 줘도 되네? 밤에 젖 먹이려고 깰 필요도 없고, 호텔 침대에서 혼자 자는 거네?
출장 준비 내내 정신이 없었고, 아이랑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우울했는데 갑자기 이게 웬 횡재냐 싶어 졌다. 죄책감이 약간 몰려 오려고 해서 얼른 치워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