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자들은 하루 종일 사내 게시판을 들락날락한다. 일부 누락자들은 이미 언질을 통해 자신이 누락된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연차를 내거나 사무실 자기 자리를 최대한 떠나 있으려고 한다.
오후 3시 발표 예정인 것을 뻔히 알면서도 수시로 게시판을 새로고침 해보는 당사자들은 입이 바짝바짝 마른다. 새로고침을 누른 게시판에 로딩이 걸려 약간이라도 시간이 지체되면 '지금 뜨는 건가?' 두근대며 더 초조히 마우스를 만지작댄다. 그러다가 띄워진 화면에 새소식이 없으면 괜히 낙담하기를 수차례.
3시가 되기 조금 전, 초단위로 게시판을 새로고침 하던 S차장이 다 들리게 소곤거린다.
"떴어. 떴어!"
S차장은 이번에 대상자도 아닌데 늘 이런 소식에 민감하다.
소식은 삽시간에 퍼지고 모두 자기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마우스를 광 클릭하여 승진 대상자 명단을 열어본다.
긴가민가 했던 진급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고, 누락을 점지받았던 자들은 혹시나 했으나 확인사살의 아픔을 느끼며 속으로 쌍욕을 다시 한번 날린다.
나머지 사람들은 특히 궁금했던 친한 동료나 라이벌 동료, 안되기를 남몰래 바랬던 사람들의 명단을 차례차례 훑어간다.
곧이어 웅성거림은 사그라들고 PC방을 방불케 하는 고요 속의 타자 소리가 울려 퍼진다.
사내 메신저를 열어 진급자들에게 차례로 축하의 메시지를 보낸다.
진급된 사람들은 답을 보내기 바쁘다.
혹시라도 자기 옆에 누락자가 있는 진급자는 숨소리도 죽여가며, 내 모니터의 축하 메시지를 들킬세라 가만가만 키보드를 두드린다.
누락자에게는 감히 누구도 말을 건네지 않는다.
팀장과 임원들은 웬만해서는 자리를 뜨지 않는다. 누락자와 눈이라도 마주칠세라 꼭꼭 숨어있는다.
슬슬 여기저기서 티타임이 열린다.
예상치 못하게 승진된 사람이 있다면 그의 입사 초기부터 지금까지의 업적이 까발림 당하면서 아부와 편애로 인한 부당한 승진인지, 노력과 인정에 의한 정당한 승진인지 토론이 벌어진다. 될 줄 알았는데 안된 사람에게는 어떤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 것인지 스토리 텔링이 들어간다.
구석구석 티타임 자리에서 '사설인사위원회'가 진행된다.
진급자들은 발표일부터 회식 퍼레이드를 펼친다. 낮에는 차를 사고 밤에는 술을 사며 진급 턱을 낸다. 그달 월급이 눈에띄게축나지만 과히 기분 나쁘지 않다.
누락된 자들은 다음날 연차를 내거나 회사 내 어딘가에 짱 박혀서 당당한 농땡이를 피운다. 술이 위로가 되는 사람은 연이어 술을 마시고, 반항하고 싶은 사람은 며칠 이어서 연차를 낸다. 마음을 추스르고 싶은 정적인 사람은 '자존감 수업'같은 책들을 사들여 보기 시작한다.
누락자에게 1년은 이불 발차기와 자기 위로가 반복되는 기복의 한 해가 된다.
월급과 진급이 회사생활의 다가 아니다? 다일 수도 있다.
동료와의 우애, 일에 대한 성취감, 자기 계발... 일 년 내내 다양하게 일궈놓은 회사생활의 가치가 진급 시즌에 무너져간다. 백 명이 봐도 이 사람은 진급해야 한다고 생각되어 진급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능력, 운, 때, 사내 정책, 사내정치... 다 영향을 미치는 것이 진급이다.
특히 위로 올라갈수록 더하다.
진급에서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는 말은 어느정도 통한다.
조직장은 평가와 진급 시즌이 괴롭다. 자기가 예뻐하는 직원을 올리고 싶어도 눈치가 보인다. 어쩔 수 없이 최대 다수가 올라갈 수 있도록 조정할 수밖에 없다.
그중 가장 골치 아픈 사람은 '징징대는' 사람이다. 누락될 경우 끊임없이 팀장을 괴롭힐 사람, 편파적인 진급체계라는 소문으로 주위를 선동할 사람, 일 년 내내 맡기는 일을 제대로 안 하면서 주변에 안 좋은 에너지를 끼칠 사람. 눈에 보인다.
아예 능력 차이가 크다면 모르겠지만 비슷비슷한 사람이 대상자라면 누락시켰을 때 파장이 클 사람은 진급을 시키는 것이 수월하다. 문제 소지를 없애려고 노력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럼 누가 누락시키기 수월하냐. 조용한 사람이다. 말없는 사람은 치열한 경쟁 구도 속에서 혜택을 받기 힘들다.
특히 자기가 갖고 싶은 것을 쉽사리 말로 꺼내지 못하는 사람들은 결정권자의 고민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다.
팀장도 조용히 자기 일을 해내면서 상사를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에게 마음이 가고, 잘해주고 싶다. 줄 수 있는 것은 준다.
그러나 팀장을 곤혹스럽게 하는 막다른 결정에 다다랐을 때는 어쩔 수 없이 문제가 생기지 않을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조용히 일 잘하는 사람은 어려운 일을 맡길 때만 가장 먼저 생각난다.
그럼 '나 진급하고 싶다.'라고 떠벌리는 사람이 나쁜 사람이냐? 아니다.
회사를 다니면서 더 많이 느낀다. 하고 싶은 것은 하고 싶다고 말해야 한다. 왼손이 열심히 하는 걸 오른손이 모르게 하면 오른손뿐 아니라 아무도 모른다. 그건 봉사 활동할 때나 써먹어야 한다.
내가 한 일은 한껏 모양을 내서 보여주고 '나 진급하고 싶다.'라고 말해야 한다.
'누가 진급하고 싶지 않은 사람 있어? 그걸 말해야 아나? 그냥 열심히 일하면 회사가 알아주는 날이 오겠지.' 안 온다.
결정권자는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먼저 눈에 보인다. 그들도 회사원이고 조직을 책임지는 관리자이다. 조직이 원활하게 돌아가는 것이 제1의 목표이다.
단, 징징대지는 말자. 상사에 따라 우는아이 떡을 뺏어버려야 속이 시원한 사람도 있다. 패배했을때 인정하지 않고 끊임없이 주변을 원망하는 것은 진급과 회사생활을 떠나서 볼품없는 인간이 되는 지름길이다. 그것을 피하더라도 원하는 것을 담담히 말할 수 있다.
확실하게 일하면서 하고싶다고 어른스럽게 어필할 수 있다.
하고 싶다고 손드는 사람 먼저 시키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
나는 지금 이 진급의 소용돌이에서 한걸음 벗어나 있다. 얼마 전까지 저 안에 술렁이며 수많은 번뇌로 괴로워했는데 한걸음 떨어져서 조망해 보니 진급과 누락은 인간의 가장 나약한 부분을 건드려 바닥까지 보여주게 하는 시스템이라는 생각이 든다.
회사일이 객관식 시험처럼 명확하게 평가되고 딱 잘라 순위를 나눌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럴 수 없다.
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평가의 고통이 크다.
인간이 인간을 평가해야 하는 이 시스템 안에서 업무의 다양성과 개인의 성향, 조직의 분위기까지 영향을 미치는 진급 체계는 인생사 갈등이 그대로 들어있는 축소본 같다.
그 안에서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자기 개선이 필요하다.
원망이나 비난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이 시스템을 움직이는 사람들의 입장과 성향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면서,감정을 빼고 내가 원하는 것을 정당하게 갖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비열할 필요는 없다. 부도덕하게 남을 짓누를 필요도 없다. 그러나 내가 정당하게 잘해서 의도치 않게 남이 피해를 본다면 그것은 어쩔 수 없다. 그것이 싫다면 패배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감정을 빼면 정당하게 성취할 수 있는 방법이 눈에 보인다.
그것이 어떤 면에서는 씁쓸하고 나답지 않더라도, 패배의 쓴맛을 오래 보고 싶지 않다면 개선하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