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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춘 Mar 24. 2022

잃어버린 물건

엄마에게는 액세서리가 몇 개 없었다.

집에서 구슬로 수를 놓는 부업을 했던 엄마는 외출하는 날에도 늘 집에서 입던 옷과 별 다를 바 없는 옷을 입었고, 액세서리를 신경 써서 달고 나가는 일도 거의 없었다.

머리가 아프다며 귀를 뚫은 후로 작은 귀걸이를 하고 다녔지만 그것은 게르마늄 팔찌 같은 치료용 의료도구일 뿐이었다.


그런 엄마이지만 언제나 목에 걸고 다니던 목걸이는 있었다. 작은 하트 두 개가 달려있는 18K 금목걸이.

쇄골 근처까지 내려오는 평범하고 예쁜 목걸이는 목을 두르는 줄 중앙에 약 2센티미터 정도 길이의 두 개의 금줄이 나란히 달려있었고, 그 두 줄 끝에 역시 금색의 작은 하트가 붙어있었다.


가느다란 금 목걸이는 내가 기억하지 못하던 어린 시절부터 엄마의 목에 늘 걸려있었다. 중앙의 짧은 두 줄이 무게 중심을 잡고 있어 목걸이에 달린 두 개의 작은 하트는 엄마의 쇄골뼈 근처에서 엄마의 움직임에 따라 예쁘게 달랑거렸다.


내가 4학년쯤 되었던 어느 날 목욕탕 안에 있던 엄마가 비명을 질렀다.

“엄마야~~!!”

화들짝 놀라 달려가 보니 엄마는 비누 거품이 잦아드는 하수도 구멍에 손가락을 넣은 채로 연신 아우 어쩌냐, 아우… 를 중얼대고 있었다.

머리를 감으려고 잠깐 목욕탕 의자 위에 풀어 두었다가 집어 올린 목걸이가 손에서 미끄러지는 바람에 그만  물살에 딸려 하수도 구멍 속으로 쏙 들어가 버린 후였다.


지금처럼 냄새를 막는 트랩이 있는 하수도였다면 아마도 엄마의 목걸이는 트랩에 걸려 무사했을지도 모르겠다. 미장을 한 시멘트 바닥에 직통으로 연결된 하수도 입구는 성글고 허술한 초록색 플라스틱 망으로 덮여있었다. 그 커다란 초록 구멍 안으로 들어간 가느다란 목걸이는 잠깐 머물 새도 없이 길고 긴 하수 파이프 아래로 비눗물과 함께 내려가 버렸다.

내려갔어도 벌써 내려갔을 목걸이가 아쉬워 자꾸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해보는 엄마의 손길이 보는 나도 안타까웠다.


"아이씨, 어쩔 수 없지 뭐. 절루가. 비켜.”

부드럽게 말하지 못하는 엄마는 옆에서 안쓰러워 같이 쭈그리고 앉아있는 나에게 괜한 타박을 했다.

엄마에게 한소리를 더 듣지 않으려고 냉큼 일어나 방으로 들어간 나는 그저 엄마가 비싸 보이는 금 목걸이를 잃어버려서 기분이 좋지 않을 테니 건드리지 말아야겠다 생각했다.


얼마 후 동네 아주머니들과 엄마가 수다를 떠는 옆에 앉아있다가 목걸이 얘기를 들었다. 그 목걸이는 중동으로 몇 년간 출장 갔던 아빠가 귀국하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다준 금붙이였다고 한다. 늘 엄마의 목에 걸려 있어서 몰랐는데 엄마와 아빠에게도 목걸이를 선물하는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 신기했고, 생각보다 엄마가 더 속상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잃어버린 물건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으면 그 목걸이가 생각난다.

지금까지 나도 수많은 물건들을 잃어버려왔다. 그중에는 지갑이나 핸드폰, 다이어리 같은 허구한 날 잃어버리는 물건들도 있고, 엄마 것보다 더 비쌌을 아까운 내 금목걸이도 있었지만 왠지 잃어버린 물건을 연상하면 엄마의 하트 목걸이가 떠오른다.

아마도 그걸 흘려보낸 직후에 엄마의 당황했던 모습과 목걸이에 대한 사연을 말하던 엄마의 안타까움이 보여서였을 것이다.


그리고 몇 년 후에 아빠는 어쩐 일인지 혼자서 종로에 나가 엄마의 목걸이를 사 왔다. 호떡이나 붕어빵이 아니라 목걸이를 사들고 와서 우리는 모두 놀랐다. 그리고 그 목걸이를 보고 나서 우리는 더욱 놀랐다.


주문을 외우면 거인을 나올 것처럼 웅장한 펜던트가 달려있고, 백금과 노란 금이 교차하면서 밧줄처럼 단단하게 꼬여 있는 무지막지하게 굵고 화려한 목걸이였다.

심지어 비싸게 준 것 같았다.

선물이라고 사들고 온 아빠에게 화를 내지도 못하고 고맙다고 하기도 싫은듯한 엄마의 표정을 보며, 나는 엄마가 몇 년 전에 잃어버린 하트 목걸이가 다시 한번 생각났다.

(이런 생각도 들었다. 저런 걸 골라오는 아빠의 안목이라면, 그때 그 하트 목걸이는 다른 사람이 골라줬을 것이 분명하다.)

그 화려하지만 걸고 다닐 수는 없었던 종로에서 온 목걸이는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엄마의 화장대 서랍에 고이 들어있다.


이 글을 쓰면서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 하수도 구멍으로 들어가 버린 그 예쁘고 앙증맞은 하트 목걸이를 엄마에게 다시 찾아줄 수는 없겠지만 매일 걸고 다닐 만큼 작고 소박한 것으로 다시 하나 사드리는 것이 좋겠다는 계획을 말이다.



[정여울의 에세이 글쓰기 수업 中 '잃어버린 물건 중 다시 찾고 싶은 것에 대해 써보기' 과제로 제출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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