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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춘 Mar 29. 2022

이렇게 갑자기 노안?

라섹의 마법까지 풀리고...

2019년도 까지는 분명히 좌, 우 각각 1.0이었다.

매년 받는 건강 검진에서 시력은 가볍게 1.0을 패스했는데 2020년 갑자기 일 년 만에 양안 모두 0.7이 나왔다. 시야가 좀 흐리다는 생각은 했지만 지난 10년간 내내 잘 나오던 시력이 갑자기 낮게 나와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작년에는 0.5로 떨어졌다.

사실 0.5를 받은 것도 내가 시험 보듯이 열심히 시력검사를 해서 얻은 점수이다. 실제로는 0.4도 가물가물 했는데 최대한 높은 점수를 받고 싶은 의미 없는 욕심 때문에 눈을 수십 번 깜빡여가며 건조함을 이기고 0.5를 따다.


10년 전 라섹수술을 받기 전에는 꽤 심각한 근시였다.

열한 살 때부터 안경을 쓰기 시작해서 눈을 뜨자마자 안경을 쓰고 잠들기 직전에 벗어놓는 일을 이십 년간 했는데, 출산 후 갑자기 더 늙기 전에 안경을 벗고 살아보고 싶은 마음에 충동적으로 라섹 수술을 받았다.


결과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천정 벽지 모양이 보였다. 잠자리에 반듯이 누워 천정을 볼때는 보통 안경을 벗고 봤으니 우리 집 천정을 그렇게 훤히 본것은 처음이었나보다.  

그렇게 겨울에 안경에 김 서릴 일 없이, 여름에 콧잔등에 파운데이션 밀릴 걱정 없이 행복한 10년을 보냈다. 그런데 이제 라섹빨이 다한 걸까. 갑자기 눈이 잘 안 보인다.


침침하다는 말이 이런 건지, 분명히 보이긴 보이는데 초점이 안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어딘가 뿌옇기도 하고, 아무튼 시야가 지저분하다.

뭔가가 떠다니는 비문증 증상은 원래도 조금 있었는데 시력이 떨어지니 떠다니는 먼지들이 한결 더 성가시다.


가장 낯선 증상은 눈의 촛점을 맞추는데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라섹수술을 하기 전 근시가 심할때는 없던 증상이다.

카메라 렌즈도 아니고, 살면서 눈의 초점을 의식하고 맞춰본 일이 없는데 언제부터인가 눈을 몇 번 깜빡여야 초점이 맞아 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다.

특히 책을 읽다가 순간적으로 고개를 들어 먼 곳을 보면 카메라 초점이 틀어진 듯이 시야가 흐릿하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이 흐르면 다시 초점이 맞는 것이다.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고민하면서 안과를 찾아가 의사에게 최대한 구체적으로 묘사해 주었다.

"시력이 좀 떨어지셨네요. 그리고 만 45세를 전후로 노안이 옵니다."

"네? 너무 심하게 정확한 거 아닌가요?"


아니, 만 44세에 병원에 갔는데 하루도 봐주지 않고 제 날짜에 딱 맞춰 이자를 받으러 온 빚쟁이처럼 노안이 찾아왔단 말인가. 죄없는 안과의사가 얄미웠다.

더구나, 라섹 수술은 10년이 수명이라는데 그것 또한 10년 차에 접어든다. 정말 만 10년을 채우고 나면 마법이 풀리듯 다시 안경 신세를 게 됐다.


"그리고, 환자분은 약...... 간 백내장이 왔네요."

"네?"

"하하, 뭐 아직 느껴질 정도는 아니고 약간 시작되긴 한 것 같아요. 신경 쓰실 정도는 아니시고요."

우리 엄마도 아직 살짝 밖에 안 왔다는 백내장이 나에게 왔다는 건가. 백내장이라니.


며칠 후 실손 보험금이 나왔다. 나는 그저 시력이 떨어졌다고 썼을 뿐인데 보험사에서는 뒷조사를 단단히 했는지 정확한 진단명을 친절히 적어주었다.

'초로 백내장'

이 이름은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상생활은 그럭저럭 할만한데 회의를 하거나 멀리 있는 모니터를 볼 때 불편함이 커서 안경을 맞추기로 했다. 처방전을 받아 들고 안경원에 갔더니 안경사가 자꾸 모니터와 책을 내 눈앞에 왔다 갔다 옮겨가며 테스트를 한다.

"이 정도 보이세요?"

"네, 아주 잘 보여요."

"그럼 이 정도는요?"

"음... 약간 안 보여요."

"고객님이 근시 안경을 쓰시면 가까운 거리가 약간 불편하실 수 있어요. 그래서 약간의 조절을 해줄 수 있는데, 최근에는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안경의 층이 나누어져서..."

내가 노안렌즈를 권하면 화를 낼 상으로 보였는지 안경사는 아주 조심스럽게 우회적인 표현을 써가며 다초점 렌즈를 권했다.

"음...아직 괜찮을 것 같습니다."

"뭐, 아직 모니터가 잘 보이시니까 일단 근시 안경만 쓰시고, 조금 더 불편하시면 그때 렌즈를 바꾸시죠."

괜찮다고 우겨서 근시용 렌즈로만 맞춰 왔다.


그런데 불편하다.

이제 모니터를 볼 때 꼭 안경을 써야 잘 보인다.

책을 볼 때는 안경을 벗어야 글씨가 잘 보인다.


회사에서 안경을 쓰고 모니터를 보다가 고개를 숙여 가슴 앞에 놓인 자료를 보려면 안경을 벗는다.

옆 팀 부장님이 책상에 앉아 자료를 내려다볼 때 헤어밴드를 쓴 것처럼 안경을 머리 위에 살짝 올려놓는걸 곧 따라 할 기세다.

이쯤 됐으면 안경 아래쪽에 도수가 다른 렌즈를 살짝 넣어주는 것이 이성적으로 현명한 방법인데 마음의 준비가 영 안된다.


체력도 예전만 못하고, 몸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증상들이 나이 듦을 통보하고 있다. 나이가 먹었으니까 몸이 슬슬 낡아가는 거라고 심플하게 생각 했는데, 노안은 상당히 언짢다.

아직 버틸만 하지만 조금 더 심해지면 다초점 렌즈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최대한 오래 버틸 생각이다. 특히 옆자리에 앉은 삼십 대 후배들이 다초점 렌즈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며 한번 써보자고 할 것을 상상하면 은근히 배알이 꼬여서 더욱 맞추기 싫어진다.


나이 듦에 적응하기에 40대 중반은 아직 너무 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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