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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춘 Apr 15. 2022

우울의 늪에서 빠져나올수 있었던 이유

내 인생을 바꾼 결정적 사건

내일을 빼앗길까 봐 전전긍긍하면서
이미 가진 오늘을 훼손하고 있었다.


저에게는 굉장히 큰 사건이지만 사실은 아예 일어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인 기억이 하나 있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걱정이 많은 사람이었어요. 친구들이 걱정병이라고 놀릴 만큼 쓸데없는 걱정을 달고 살아서 늘 마음속으로 전쟁을 치뤄왔습니다.

밝게 웃고 장난을 치다가도  걱정이 몰려오면 걷잡을 수없이 순식간에 그 늪에 빠져버리는 나약한 정신상태였습니다.

그것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인지 20대부터 자주 두통을 앓았어요. 맥박에 맞춰 지끈거리는 편두통 때문에 생활의 질이 떨어지는 시간들이 많았지요.


아이를 낳고 일 년이 되지 않은 어느 봄날, 머리가 너무 아팠습니다.

그날따라 걱정병이 함께 몰려와 이 두통이 무슨 큰 병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불안했습니다. 그럴 때 불안은 극에 달해서 정말 제가 죽을병이라도 걸린 것 같은 공포가 되어버립니다.

머리가 너무 아파서 앞도 똑바로 보이지 않고 속도 울렁거린 나머지 저는 조퇴를 하고 무작정 신경외과를 찾아 나섰습니다.


대학병원은 예약을 하고 기다려야 해서 조금 먼 곳에 있는 개인 병원을 검색해서 방문했습니다.

의사는 바로 MRI를 찍자고 하더군요. 검사비가 60만 원이 넘었지만 그걸 따질 정신이 없었어요. 대체 이 두통이 무슨 병인지 알고 싶어 검사하자는 말이 반가웠습니다.

곧바로 검사를 하고 좀 기다리니 결과가 나왔다고 들어오라고 하더군요.


혹시 암은 아닐까 걱정하던 저에게 의사는 뜻밖의 진단을 내려주었습니다.

“아, 다발성 경화증이 살짝 지나간 거 같습니다. 근데 이건 50 넘으면 발병을 안 해요. 그거 뭐 지금 두통은 그것 때문은 아닙니다. 그건 그냥 편두통이니까 약 먹으면 됩니다. 혹시 뭐 다른 이상 없어요?”

“네, 없는데요.”

“그럼 내일 아침에 밥 굶고 오세요. 청신경, 시신경 검사해 봅시다. 그거 뭐 인터넷 찾으면 무섭게 나올 겁니다. 내일 오세요.”


너무 순식간에 엄청난 얘기를 들어서 정신이 없었습니다.

병원을 나서면서 가슴이 두근거려 숨이 잘 쉬어지지도 않았어요. 그리고 바로 핸드폰으로 검색을 해 보았습니다. 역시 의사의 말 대로 무서운 병이라고 나오더군요.


처음에는 눈물도 나오지 않더니 지하철을 타자 가슴이 답답하고 무서워서 옆에 사람들이 있는데도 그냥 울어버렸어요.

그날 밤 남편은 저를 달래느라 입이 마르도록 안심이 될 만한 말들을 해주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회사에 휴가를 내고 남편과 함께 다시 병원을 방문했습니다. 의사의 지시대로 청신경과 시신경 검사를 했고, 결과는 아무 이상이 없었습니다.

“뭐 지금 증상은 없는 거 같네요. 그냥 가볍게 지나간 것 같습니다. 나중에 눈 안보이거나 귀 안 들리면 오세요.”

의사는 참 솔직한 사람이었어요. 조금 화가 난 남편이 몇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유전인가요?”

“유전 아닙니다.”

“그럼 지금은 정상인 거죠?”

“아, 정상은 아닙니다. MRI 결과에 보이는 게 있긴 합니다. 70대 노인이라면 이런 노폐물이 있는 게 정상인데, 환자분은 너무 젊어서, 젊은 나이에 그런 것은 정상은 아닙니다. 눈이 안보이거나 증상 있으면 오시면 됩니다.”


저희는 터덜터덜 병원을 나섰습니다.

저의 불안은 하나도 사라지지 않았어요. 어느 날 갑자기 눈이나 귀에 문제가 생기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가슴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괜찮아, 지금 괜찮다잖아. 그냥 잊어버리고 살면 돼.”

남편은 나를 달래랴, 야박하게 말하는 의사를 욕하랴 정신이 없었습니다.


혹시나 싶어 다른 병원을 찾았습니다.

첫 번째 의사처럼 무섭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두 번째 의사도 검사 결과, 그 병의 전형적인 형태는 아니지만 정상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 병은 진단도 어렵고, 완치도 없으며 증상이 나오는지 봐야 안다는 애매한 말을 하며 정밀검사를 자신 있게 추천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날 이후 몇 개월을 제가 무슨 정신으로 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회사도 다니고 아이도 키우고 겉 보기에는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것 같았지만 틈만 나면 인터넷에서 병명을 검색하며 최악의 경우를 찾아보기 바빴고, 그러고 나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슬프고 무서웠습니다. 아기의 얼굴만 봐도 눈물이 났습니다.

좀 안정적인 날에도, 장애가 오면 아기를 어찌 키우나 하는 생각이 파도처럼 밀려와 밤에도 자다가 숨이 막혀 벌떡 일어날 정도였습니다.


돌이켜보니 남편이 정말 힘들었겠습니다. 저 같으면 속이 터져서 그만 좀 하라고 쥐어박는 소리를 했을 것 같은데 말이죠. 남편은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걱정 말라며 저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몇 주를 보내고 나니 정말 우울증에 걸린 것 같았습니다. 정말로 그 병을 앓는 사람들도 자신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 우울증을 앓는 경우가 많다는 글을 읽었습니다. 병을 앓기도 전에 우울증부터 온 것 같았습니다. 아기와 놀다가도 갑자기 멍하니 앉아있곤 했습니다.


우울과 망상에 빠져 시간만 보내던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지금 이렇게 무섭고 불안한 가장 큰 이유는 아기였습니다. 저 어린 아기를 남겨두고 내가 잘못되면 어쩌나 싶은 마음이 가장 컸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정말 지금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었어요. 제가 그날 병원에 가지 않았다면 그저 모른 채로 살았겠지요.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증상이 나타나 아프게 된다 해도 그전까지는 또 모르고 살 거구요.


저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 때문에 하루하루를 훼손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아기에게 우울한 얼굴만 보이면서 말이죠.


이렇게 사는 건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수십 년을 매일 걱정에 가득한 얼굴로 눈물 흘리는 엄마로 같이 있는 것보다 며칠을 살아도 밝고 건강한 영향을 주는 엄마가 되고 싶었습니다. 아이도 저같이 어두운 얼굴로 살아가게 될까 봐 겁이 나기도 했고요.


그래서 억지로라도 웃었습니다. 미친 듯이 용기를주는 자료를 찾아보기도 했어요.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책 ‘시크릿’도 여러 번 읽고, 긍정에 대한 명언이란 명언을 죄다 찾아서 인쇄해 파일로 만들었습니다. 그것을 자기 전에 매일 읽었고요. 행복과 긍정, 걱정 없애는 법에 대한 영상도 매일 찾아서 들었습니다. 시간 날 때면 재밌는 드라마를 보며 많이 웃기도 했습니다.


의지를 다지는 것이 효과가 있었던 걸까요. 제 삶과 건강에 대해서도 조금씩 건전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일주일간의 여행을 시작한 여행자가 있다고 칩시다. 여행하는 시간이 즐겁고 소중하지만 마지막 날만 생각하면 아쉽고 슬픈 여행자가 있습니다. 여행지에서 보이는 것들, 먹는 것들, 느끼고 경험하는 모든 것들이 마지막 날의 아쉬움 때문에 색이 바래서 전혀 즐겁지 않다면, 그 여행자는 얼마나 어리석은 걸까요. 갑자기 제 모습이 그래 보였습니다.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르는 이 생이 빨리 끝날까 봐 전전긍긍하면서 지금 찬란한 날들을 즐기지 못한 채  흘려보내고 있는 어리석은 제가 바로 그 여행자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 생각들이 반복되면서 서서히 마음의 먹구름이 사라져 갔습니다.

아이와 함께하는 나날들이 소중했고, 나중에 언젠가 내가 없더라도 아이가 오늘 나와의 즐거운 시간을 영원히 기억하며 엄마를 떠올리면 기쁘길 바랬습니다.

그리고 아이 생각을 떠나, 나에게 주어진 순간순간을 가슴 벅차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에 법륜스님의 말씀도 많이 들었습니다.

병에 걸린 질문자가 죽음이 두렵다는 지문을 해왔습니다. 스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모인 많은 사람 중 당신보다 먼저 죽는 사람이 없을 것 같냐고요.

우리 앞에 닥친 일들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그날까지 매시간을 소중히 하고 즐기는 것 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쉽고도 당연한 진리를 저는 어른이 되고 한참이 지나서야 깨달았습니다.

나의 내일을 빼앗길까 봐 겁에 질려 전전긍긍하던 날들을 지나오면서 말입니다.


제가 정말 그 병을 가진 사람인지 아닌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럴 수도 있고 안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제가 대비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그저 하루하루 잘 살아내는 것 말고는요.


예전에 TV에서 탤런트 안재욱 씨가 우울증을 앓던 시기에 대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들과 어울려 술 먹고 떠들고 신나게 놀다가 집에 들어와 현관문을 닫는 순간 무너진다고요.

정말 그랬습니다. 남편 말고는 누구도 제가 우울의 시기를 겪고 있는 걸 몰랐습니다. 밖에서 저는 활달하고 잘 웃었으니까요. 남편마저도 제가 웃고 있을 때는 이제 좀 나아졌나 보다 생각했을 것입니다.


우울했던 몇 달간 기운 내라는 말들은 전혀 효과가 없었습니다. 우울증에 좋다는 행동을 한 개도 실천할 마음이 나지 않았어요.

누군가가 우울해할 때 사람들은 그 사람의 무게를 객관적으로 비교해서 우울할 일인지 아닌지를 판단하지만 각자의 우울한 이유는 기준점이 없습니다.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러냐는 말은 귓가에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그냥 어느 날, 내가 잘 살아내야 하는 실낱같은 이유를 잡아내서, 죽을힘을 다해 한 발을 내디뎠을 때, 다른 발을 움직일 힘이 생겨났습니다. 조금의 의지만으로 기운이 날만한 일을 계속 반복하니 조금씩 빛이 보였습니다.

귓등으로도 들리지 않던 긍정의 문구들이 마음에 와닿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 후에 제가 낙천적이고 걱정 없는 사람이 되었느냐 하면 그것은 아닙니다. 저는 아직도 걱정이 많은 편이고 순간순간 우울을 느끼곤 합니다.


그러나 이제 그 시간이 매우 짧아졌습니다. 우울의 늪에 빠졌을 때 헤어 나오는 법도 여러 가지 만들어 두었고요. 무엇보다 아이와의 시간을 진심으로 즐길 줄 아는 엄마가 되어 그 후 십 년이 지난 지금 평온한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우울해하는 주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우울의 깊이를 알 수 없어 아무 말도 해주지 못하지만 내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기운을 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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