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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춘 May 02. 2022

엄마랑 대화할 때 소리 좀 지르지 말자

엄마와 아름답게 대화 하기 캠페인 중

오늘도 엄마한테 화를 버럭 냈다.


- 엄마~. 아직 시골집이야? (처음엔 상냥하게 시작했다.)

- 어, 병원에 와있다. 고모가 체해서 병원 왔는데 아빠랑 고모 병원에 들어가 있고, 엄마는 차에서 기다린다. 알타리 담가야 되는데 오래 걸리네.

- 아, 그래? 고모는 괜찮고?

- 응 소화가 안된대서. 있다가 고모 데려다줘야지.

- 아~ 고모 데려다주고 올라올 거야?

- 아~~ 니!! 알타리 담아야 돼. 주석 마트 가야 되는데 할 일 있어.

- 그럼 고모 데려다주고 다시 시골로 간다고?

- 아~~ 니, 고모 데려다주고 어딜 와~. 

- 어? 그럼 고모를 오늘 데려다준다는 게 아니야?

- 아~~~니!!  고모는 오늘 가지!!

- 그럼 병원 갔다가 고모 데려다주고 서울 온다고?

- 아~~~니!! 알타리 사야 된다니까!!!

 

아, 도저히 못 참겠다.


- 그게 무슨 소리야!!!! 오늘 서울 온다는 거야 안 온다는 거야!!! 알타리 좀 빼고 말해!!

- 고모 데려다주고 오늘 간다고!!


흠.. 처음부터 내가 정리해서 들었어야 됐다.

진정하자. 내 잘못이다.


- 그러니까...  지금 병원에서 진료 끝나면 주석 마트에서 알타리 사고, 고모 데려다주고 서울 온다는 거지?

- 그렇취!!!


후... 왜 엄마랑 긴 얘기를 하면 꼭 소리를 지르게 되는 걸까.

회사 화장실에서 통화했는데 남들이 싸우는 줄 알았겠다.




내가 여유가 있을 때는 좀 낫다. 그런데 정신없이 바쁠 때 전화해서 오전 내내 있었던 일을 시간 순으로 두 번씩 반복해서 말해준다거나 급히 묻는 말에 대답은 안 하고 배경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하면 목소리가 좋은 톤으로 나가지 않는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나면 영 마음이 껄끄럽고 왜 그때 딱 참고 좋게 말하지 못했을까 후회가 된다.


어떨 땐 같은 소리를 너무 많이 반복하는 걸 듣다가 은근히 걱정이 될 때도 있다.

치매 테스트를 좀 해보자고 해야 할까? 구청해서 해준다는 걸 받아보시라고 했는데 받아본 거 맞나? 뭐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엄마의 말하는 방식은 패턴이 있다. 그 패턴은 자식들이 들어주는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

엄마 앞에 앉아 눈을 맞추고 차근차근 듣고 있을 때는 엄마의 반복이 덜 하다. 당연히 관련 없는 얘기로 빠질 때가 있어서 바로잡아줘야 하긴 하지만 한소리 또 하는 건 확연히 줄어든다.


엄마가 한소리 또 하고 또 하고 할 때는 주로 내가 집중하지 않을 때이다.

건성으로 들으면서 집중하는 척 하지만 엄마도 그걸 다 안다. 엄마가 많이 무뎌져서 내가 귀찮아하는 걸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느끼는 것이다.

그러니 못 알아들은 것 같거나 당신이 생각한 반응이 안 나오는 것 같 때, 다시 박진감 넘치게 설명하기 위해 자꾸 반복하는 것이다.


또한 가지 엄마와의 대화가 힘든 이유는 오늘의 알타리 사건과 같은 TMI이다.

전혀 상관없는 얘기가 갑자기 튀어나와 한도 끝도 없이 삼천포로 빠지는 순간 엄마와의 대화를 마무리 짓고 싶어 진다.

아마 내가 중단시키지 않았다면 알타리 김치를 무슨 이유로 담글 것이며, 얼마나 담글 것이며, 그걸 담아서 누구누구에게 나눠줘야 할지, 지난번 담갔던 김치는 뭐가 잘못됐었는지까지 다 나왔을 것이다.


이러니 뭔 얘기를 꺼내기가 두렵다. 마음먹고 엄마 말을 들어줘야겠다고 작심하고 들을 때도 TMI를 모두 흡입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어쨌든 아침에 엄마한테 한바탕 성질을 부리고 나니 세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마음이 무거워서 이 글을 쓰고 앉아있다.


그러면서도 피식 웃음이 난다.

어제 친구와 호호바 오일을 사러 들어간 상점에서 오일 사용법을 알려주는 점원에게 우리도 그걸 어디 어디에 쓰려고 사는 거라는 둥, 얘가 이거 좋다고 했다는 둥 하는 쓸데없는 소리를 늘어놓던 내 모습이 생각난다.

식당에 가서는 일행이 오면 음식을 시키겠다고 간단히 말하면 될 걸, 있다가 친구 오면 시킬게요. 거의 다 왔대요.라는 누구도 물어보지 않은 말을 두 문장이나 했던 것도 포함해서 말이다.


이번 주는 딱 30분을 꼭 시간 내서 엄마 눈을 보고 말을 들어야지. 아름답게 끝낼 자신이 없긴 하만.


늘 바쁘고 정신없는 우리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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