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춘춘매일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춘춘 May 27. 2022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

코로나만 아니면 할 수 있을 것 같던 일들 지금 하고 있니?

https://brunch.co.kr/@hanschloejun/136


과거는 보통 그립거나 후회된다.

우연히 작년 이맘때 썼던 글을 읽었다.

코로나 때문에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못해서 속상한 것 같지만, 잘 생각해 보면 코로나 이전에도 게으름과 의지 부족으로 못하던 일들이 많았다는 것을 하나씩 꼽아봤던 글이다.


그리고 그 시점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자고 야심 차게 다짐도 해 놓았다.

영화 Intern에서 나온 Let's make it happen.이라는 좋아하는 말도 인용하면서 의지를 다지는 기특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딱 1년 하고 15일쯤 지난 오늘 다시 그 글을 읽어보니 웃음이 나온다.


제대로 실천한 것이라고는 회사에서 얄미운 사람과 얘기할 때 마스크 속에서 마음껏 '메롱'을 날려준 것 밖에 없다.

코로나로 여러 가지 제약이 걸려있었어도 할 수 있었던 조깅, 환기와 청소, 부모님 선물, 홈트 이런 건 왜 하나도 안 했지?




생각해보면 늘 과거는 시원찮았다.

대학에 들어가 어학연수를 하러 가는 친구들을 보면서, 쟤들은 그래도 영어 좀 하나 보네. 나는 왜 고등학교 때 영어를 그렇게 싫어했을까? 그때 잘했더라면 토익 점수도 잘 나오고, 아르바이트비 모아서 연수도 가고 그럴 수 있을 거 같은데, 영어를 어느정도 해야 연수를 가지, 참 후회된다. 그랬다.


곧이어 대학원에 가서는 매일 읽어야 하는 영어 논문과 일주일에 한 번 진행되는 영어 랩 세미나 시간에 마음속으로 통곡을 했다. 대학 4년 동안, 아니, 영어공부한답시고 휴학한 1년까지 포함해서 5년 동안 왜, 영어공부를 안 한 것인지 땅을 치며 후회했다. 매일 저녁 술을 먹으며 신나게 돌아다녔으면 아침나절에 하루 한 시간만이라도 했다면 좀 좋아? 그랬다.


거기서 끝이면 좋았게? 취업하고도 후회는 이어졌다.

직장인도 자기계발을 해야 하고, 영어를 잘 하면 발전할 길이 많아진다는 생각에 의지를 다졌다. 하지만 맘처럼 안돼는 공부를 붙잡고, 대학원 시절, 공부만 하던 그 속 편하던 때에 왜 영어공부를 안 했는지 투덜대며, '이제 늦었어. 영어공부할 시간은 이제 모두 물 건너간 거야. 나는 영어 때문에 될 일도 안되고 있어.' 라며 또 염치없는 후회를 해댔었다.

출산을 한 후에는 그나마 정신을 차리고 매일 꾸준히 공부를 했다. 이번에는 옆에 딱 달라붙어 있는 아이때문에 내 의지대로 시간을 낼 수 없다는 구실좋은 핑계가 생겼다. 체력좋고, 머리맑고, 자유로운 20대에 왜 더 부지런히 안 살았을까 틈틈히 후회됐다.


그때는, 그때는 하며 보낸 날들을 떠올려보니 피식 웃음이 난다.

오늘은 그래도 후회만 하던 젊은 날들 보다 조금 철이 더 들어있다.

내가 그 시절에 놀기도 충실히 놀아서 그거 하나는 후회 없고, 연애도 열심히 해서 사랑과 인생에 대해 깊이 있는 생각도 많이 해봤고, 조금이라도 보수가 높은 직장을 잡기 위해서 (영어 공부는 열심히 안 했다만) 고군분투 한 덕에 이제 먹고살만해진 것이라고 토닥이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모처럼 옛날 일기를 읽고 하늘을 한번 보니 오늘도 날씨가 매우 좋다.

햇살이 눈부시고 바람은 시원하고 청량하다. 다음 주에는 비 소식도 있던데 비가 와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팬데믹이라는 생전 경험하지 못한 기간을 지나오면서 한 가지 배운 점이 있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순발력이 부족하고, 계획하지 않은 일을 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편이다. 그래서 오늘을 괜찮지만 다음번에는 괜찮지 않을 일들에 대해 불안해한다.

만약 오늘 점심시간에 30분의 여유가 생긴다면, 그 30분에 몰입하여 바짝 즐기는 것이 아니라 내일도 이 시간을 확보할 수 있을까, 앞으로 30분씩 여유가 생기면 무엇을 꾸준히 할까, 이런 것들을 고민하느라 10분 정도를 날려먹는 식이다.

다음날을 예측할 수 없는 기간을 지나오면서 오늘의 기준이 허락하는 것, 오늘 날씨가 허락하는 것들을 빨리 하려는 의지가 조금 높아졌다.


작년 이맘때 계획했던 일들을 다 실천하지는 못했지만 상황이 허락하는 한 좋은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을 하며 살아온 것 같다.

오늘은 바깥을 돌아다닐 때 바람이 시원하면 마스크를 벗고 크게 숨을 쉴 수 있고, 이번 주말에 아이와 외출하면 시장통에 서서 호떡도 사 먹을 수 있다.


내일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지만 오늘은 즐거울 것.

오늘은 오늘 저녁에 무슨 영화를 볼지 딱 그것만 고민하고, 나머지는 그때가서 생각해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랑 대화할 때 소리 좀 지르지 말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