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트레일러 꼭대기에 허리를 묶고 잠을 청했던 밤들

최소한의 복지, 그리고 지금

by 춘춘

그날, 아침에 일어나 안방에 가보니 침대 옆 장식장 주변 물건들이 죄다 치워져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장식장 문에 끼워져있어야 할 유리가 온데 간데 없었어요.


"이거 봐라. 니 아빠가 박살 냈단다."

"어어? 언제? 왜? 안 다쳤어?"

"아, 자는데 뭐가 앞을 가로막는 거야. 아무리 떼 내도 안 떨어져서 머리로 냅다 받아버렸어. 근데 와장창하더라고. 흐흐흐흐"

“헤에? 아빠 다친데 없어? 유리가루 떨어진데 없고? 엄마 진짜 놀랐겠다."

"니 아빠 머리가 단단한가, 희한하게 다치진 않았어. 천만 다행이지. 아이고, 내가 기절하는 줄 알았다."

십수 년째 회자되고 있는 우리 집 전설 같은 이야기예요.


아빠는 잠귀도 어둡고, 굴러다니는 잠버릇도 요란합니다.

나이가 들면서 조금은 잠귀가 밝아졌는데도 그정도니까, 젊었을 때는 잠들면 그야말로 업어가도 몰랐을 거예요.


그런 아빠가 사막 한가운데에서 트레일러 꼭대기에 올라가 잠을 잤다고 하니 생각할 때마다 아찔합니다.




박기사님 이야기 3편

1979년, 이라크 움카슬에서 팔루자 가는 길


1. 사막을 달리는 트레일러 운전사

박기사가 시멘트 팀에 합류한지 두달이 지났다.

공사 현장 업무에 비해 안정적인 보수를 받을 수 있다는 말에 선뜻 지원을 했던 일이다. 이제 오가는 길도, 시멘트 타는 작업도 익숙해졌지만 처음 시멘트 이송길에 올랐을 때는 외롭고 지루한 작업에 몸도 마음도 고됐었다.


부두 공사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특수 시멘트가 들어간다. 시멘트 공급지는 현장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있어 시멘트를 운송하는 시멘트 팀이 없이는 일이 돌아갈 수가 없었다.

카스르 공사현장에서 시멘트 공급장소인 팔루자까지의 거리는 880킬로미터, 약 천 킬로미터에 육박한다. 서울에서 부산까지가 약 300킬로미터 정도이므로, 시멘트 한 차를 운반하기 위해 움직이는 거리는 서울, 부산을 세 번 오가는 거리와 맞먹는다.

운전환경은 한국 고속도로보다 훨씬 열악하다.


벌크 트레일러에 시멘트를 가득 실으면 약 50톤정도의 무게가 나간다.

70년대 이라크의 아스팔트 도로는 섭씨 40도를 웃도는 기온하에 대형차량을 버텨줄 만큼 상태가 좋지 못했다.종일 내리쬐는 사막의 태양볕으로 아스팔트는 뜨겁게 달궈지고 도로 위에는 끝없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육중한 트레일러는 열기로 말랑해진 아스팔트를 눌러내린다. 단단하지 못한 도로에서 트레일러 기사는 마음대로 고단 변속을 할 수가 없다.

트레일러는 출발 후 약 1킬로미터정도 달리다가 고단변속을 타야한다. 기어 5단까지는 저단이고 6단부터 고단변속이다. 속도가 붙으면 기어를 7단이상 올려야 하는데 열기로 눅진해진 딱 위에서 무거운 차량은 탄력을 붙이지 못한다.


새로 투입된 윤기사는 아직 이 답답한 운전 환경에 속이 터진다고 불평이다.

덤프차 운전을 하던 윤씨가 지난 주부터 시멘트 팀으로와 박기사와 한팀이 되었다. 오늘은 윤기사가 처음으로 팔루자 시멘트 공장에 가는 날이었다. 윤기사의 툴툴거리는 소리에 박기사는 너털웃음을 웃었다. 윤기사와 파트너가 되어 박기사는 내심 기분이 좋았다. 현지에 와서 얼마간 같은 내무실을 쓰며 속얘기를 나눴으나 보직이 달라 한동안 만나지 못했던 윤기사였다. 두살 어린 윤기사는 박기사를 형처럼 따랐다. 말은 많지만 속이 따뜻한 윤기사와 함께 지내게 되어 외로움도 덜했고 기운도 났다.


“고단 변속이 바로는 안돼. 저단으로 오래 달리다가 속도가 많이 붙으면 그때 변속해야돼.”


방법을 알려줘봤자 고단 변속을 붙일수 있는 상황이 자주 오지도 않는다. 이라크 도로에는 2차대전에 쓰였던 다찌차를 어렵지 않게 만날수 있다. 차선을 변경할 수도 없는 1차선 도로에서 다찌차가 앞을 가로막아버리면 대책이 없다. 다찌차의 느린 속도에 맞춰 느릿느릿 따라가는 수 밖에. 그럴때는 운전시간이 끝도 없이 늘어난다.



2. 절박할 때는 임기응변

에어컨이 없는 차량의 창문을 열고 달리면 뜨거운 바람이 창을 통해 들어왔다. 그나마도 닫으면 차안은 찜통이 되기 때문에 흙먼지가 들어와도 창문을 열어야했다.

“어, 어! 저거저거 펑크났네.”

빵빵— 빠앙——

그런대로 속도를 내고있는데 앞에 달리던 트레일러 왼쪽 바퀴에서 연기가 슬금슬금 피어 올랐다.


“펑크나서 저렇게 연기가 나는거야?”

“그렇지. 펑크난거 모르고 그대로 달리면 바닥이 뜨거워서 기울어진 쪽으로 타이어가 타들어가 저렇게 연기가 푹푹 솟아. 우리도 옆으로 차 대자.”


시멘트팀은 차량 2대, 기사 4명이 한 조이다.

한번 출발하면 열시간 이상 걸리기 때문에 교대 운전이 필요하다. 또 타이어가 터지기라도 하면 대부분 기사들이 직접 타이어를 교체해야 하기 때문에 비상시를 대비해서 차량 두대가 같이 이동해야 한다.

이번에도 두차량의 기사들은 타이어를 함께 갈기 위해 도로변에 차를 세우고 내렸다.


“여기서 세워? 빵꾸집도 없는데?.”

길에서 타이어를 갈아본 적이 없는 윤기사가 의아한 듯 물었다.

“넷이 달라 붙어서 해야지. 일단 따라와봐.“

편도 1차선 도로에 갓길은 없고, 도로 바깥쪽은 흙바닥이다. 대형트레일러를 대 놓을 공간이 부족해서 차량의 한쪽은 아스팔트위에, 다른 한 쪽은 도로 바깥 흙바닥에 올린 형태로 타이어를 교체해야 한다.


하필 골치 아프게 왼쪽 바퀴가 뚫어졌다.

무게가 수십톤에 달하는 벌크 트레일러의 타이어를 교체하려면 오일 작키로 차를 들어올려야 한다. 그래서 한두사람의 힘으로는 부족하다. 그나마 오른쪽 바퀴를 뺄 때는 흙바닥이 작키를 받쳐주기 때문에 조금 더 수월하다. 문제는 왼쪽 바퀴를 갈아야 할 때이다.


열을 받아 말랑해진 아스팔트 위에 작키를 놓고 차를 들어올리면 그 위로 차량 하중이 실리면서 작키자체가 아스팔트 속으로 박혀 버린다. 몇 번 이런 일을 겪었던 박기사들은 작키 아래에 고여넣을 돌을 구하기 위해 주변을 둘러봤다. 다행히 도로 밖은 황무지 벌판이라 크고 작은 돌들을 구하기는 쉬웠다.


“어이, 내가 요거 들고왔지.”

여느때처럼 돌을 구하려고 걸음을 옮기려는데 앞차 운전기사 창용씨가 뒷좌석에서 키만큼 큰 널빤지를 꺼내왔다.

“이걸 바닥에 깔고 하자고. 저놈에 작키 땅에 박히지 않게.”

창용이 널빤지를 바닥에 깔고 차를 약간 움직여 자리를 잡았다. 두툼한 널빤지가 작키를 받쳐주어 아스팔트 속으로 파고드는 것을 막아주었다.

“기가 막히는구만. 이거 몇개 구해서 넣고 다니자고. 잘했다. 잘했어.”


한참 고생할 각오를 했던 기사들은 비교적 수월하게 일을 해치우고 길가에 앉아 잠시 쉬었다.


“전에는 흙바닥쪽 땅이 물러서 어려웠던 적도 있었어. 차가 너무 무거워서 바닥이 자꾸 무너지는거야. 그래서 차 밑바닥 흙을 파내서 공간을 확보하고 타이어를 갈았던 적도 있어.그래서 삽도 가지고 다닌다고. 아스팔트 쪽은 돌을 주워다가 작키 밑에 고여놓고 작업을 했는데 판떼기 받치니까 훨씬 쉽네. 이게 돌발상황이 생기니까 요령도 늘어나는구만.”

경험이 있는 박기사와 동료들이 그동안 알게 된 노하우를 윤기사에게 알려 주었다.


“오다 보니까 빵꾸 때우는 애들 보이던데 걔들한테 갈아달라고 하면 안돼?”

“그렇기는 해. 근데 부르는게 값이야. 불러도 잘 와주지도 않아. 타이어 빼가지고 오라고 하면 그거 우리가 굴려서 가져가야돼. 그리고 너무 비싸서 회사에 수리비 청구하면 삥땅친거 아니냐고 의심해서 한바탕씩 싸우지. 그냥 우리가 가는게 속편해.”

“오늘 보니까 도사들이네.“



3. 별빛아래 아라비안 나이트

공사일정이 늘 촉박하여 시멘트 운송은 촌각을 다툰다. 이동중에 밤이 늦으면 길가에 차를 세우고 기사들은 차에서 밤을 보낸다.

운전석 뒤 공간에서 윤기사가 이불을 깔고 잠자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올라가서 잘거야.” 박기사가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

“어딜 올라가요? 탱크 위에? 아유 거기 높아서 어떻게 자요. 떨어지면 골로 갈꺼 같은데?”

“방법이 다 있지. 올라가서 자봐라. 바람도 솔솔 불고 모기도 없어.”

“그래볼까? 하긴 문닫으면 덥고 문 열면 이놈에 지독한 모기가 자꾸 들어와. 무슨 모기가 물리면 주먹만하게 부어. 나도 올라가 봐야겠네.”


트레일러 차량은 운전석 뒷편에 누울 수 있는 공간이 있다. 한명은 너끈히 잘 수 있지만 둘이 눕기엔 자리가 비좁다. 그래서 기사들은 주로 트레일러 꼭대기에 올라가 그 위에 누워서 잠을 잔다.

문제는 높이다. 혹시라도 잠결에 뒤척이다가 바닥으로 떨어지면 건물 2층 높이에서 떨어지는것과 마찬가지다.


트레일러에 얹혀진 시멘트 탱크 뒤에 붙어있는 사다리를 타고 둘은 시멘트 꼭대기로 올라갔다. 탱크 윗면은 평평하고 넓어서 두명이 충분히 누울만 했다.


“안떨어지게 안전벨트를 해야지. 이 봐. 나처럼 해봐.”

박기사는 탱크 난간 철재 봉에 바짝 붙더니 허리에 찬 벨트를 풀었다. 벨트 한쪽을 난간봉에 통과시킨 후 허리와 함께 묶어 빠지지 않게 단단히 고정시켰다. 그렇게 하면 시멘트 탱크 난간에 몸이 바짝 붙은 모양이 된다. 혹여 자다가 구르더라도 허리띠가 잡아주어 떨어지는 일을 막을 수 있었다. 기사들이 낙상을 방지하기 위해 발명해 낸 기가막힌 안전벨트인 것이다.


“아이고, 박형, 이렇게 묶고 잠이 와요?”

투덜대면서도 윤기사는 몸과 난간이 밀착될 수 있도록 벨트 끝을 단단히 조인다.

중앙에 맨홀을 사이에 두고 양측 난간 끝에서 각자 벨트 안전띠 작업을 마친 박기사와 윤기사는 하늘을 보고 누웠다.

박기사 말대로 바람이 솔솔 불었고, 귓가에서 앵앵대며 잠을 깨우던 모기도 그곳까지 올라오지는 않았다. 쏟아질듯한 사막의 별을 보며 생각에 잠기는 것도 잠시, 열시간을 쉼없이 운전한 그들의 무거운 눈꺼풀은 스르르 감겼고 탱크 꼭대기는 요람처럼 편안했다.


벌크 트레일러와 박기사님의 동료. 박기사님에게 사진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더니 친절하게 숫자를 써 주셨습니다. 역시 뭉툭한 박기사님, 이 귀한 사진에 볼펜으로 숫자를 써버리다니요.





박기사님 인터뷰

2022년 박기사님 자택

박차장 : 아빠처럼 험하게 자는 사람이 거기서 자다가 떨어졌으면 어쩔 뻔했어.

박기사 : 그러니까 허리띠를 난간에 묶고 잤지.

박차장 : 그게 한 바퀴 구르면 무게를 버티겠어? 상상만 해도 아찔해. 근처에 여관같은 데도 없었나보지?

박기사 : 가는 중간에는 숙소가 없지. 허허벌판인데. 시멘트 없으면 공사가 진척이 안돼. 부두공사에 시멘트는 무지하게 들어가고, 공사 일정은 촉박하고, 그러니까 시간 안보고 무조건 출발하는 거야. 그러다가 날 저물고, 졸리면 길가에 세워놓고 자야지.

박차장 : 오고 가는 길이 머니까 방법이 없었겠네. 근로 환경 개선하는건 지금도 힘드니까 뭐…… 그때는 더했겠지.


[일과 휴식]

일의 종류에 따라 근로 환경 복지와 편의의 수준은 천차만별입니다.
모든 것이 발전한 만큼 과거에 비해 근로환경은 나아졌고, 건의와 개선도 쉬워졌어요.
그러나 가끔, 일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합니다.

건물 청소 아주머니들은 용역업체 소속입니다.
아침 8시 사무실 쓰레기통을 비우는 것으로 시작하여 오후 3시까지 건물 안 곳곳을 청소해 주십니다. 각 층마다 담당하시는 분이 있어서 동료직원들만큼이나 자주 보고 인사를 나누죠.

우리 건물 청소 아주머니들은 휴식시간을 화장실에서 보내십니다.

어느 날, 몇 분이 화장실 거울 앞 선반 위에 참외를 깎아놓고 드시고 계셨습니다.

"우리 간식 먹으려고~"
화장실에 들어선 직원들을 보며 겸연쩍으셨는지 웃으며 묻지도 않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네~ 그런데 여기서 드시면 불편하시겠어요. 쉬실만한 장소가 없으신가 봐요."
"지하에 휴게실이 있긴 한데 너무 멀어. 그냥 잠깐 얘기하는 거야."
"위층에도 공간이 좀 있으면 좋겠네요."

그즈음에서 본부장이 여직원 간담회를 열었습니다.
불편한 사항을 모아 개선해 주겠다는 취지였어요. 작년과 다를 바 없이 한 사람씩 돌아가며 개선될 리 없는 의견들을 내놓았습니다.

"청소 아주머니들이 간단히 커피 드시고 앉아계실 공간이 있으면 좋겠어요. 화장실에서 간식을 드시곤 하십니다. 워낙 아주머니들이 깔끔하게 청소하셔서 냄새도 나지 않고 깨끗하지만 화장실은 화장실이니까요. 공간이 부족하면 직원들 휴게공간에서 잠깐 쉬시는 것을 허용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어, 그래 박차장, 알았어. 고려해 보도록 할게"

수유실을 만들어 달라던가, 유연근무제를 도입해 달라는 등 본부장을 불편하게 하는 다른 요구에 비해 가벼운 의견이 반가웠나 봅니다.
본부장의 반응이 좋았습니다.
매번 반복되는 의미 없는 제안보다 현실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계단 옆 공간들이 많이 있으니 테이블을 추가로 놓아주는 정도는 해주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 후 아주머니들은 화장실에서 간식을 드시지 않았습니다. 가끔 화장실에서 모여 담소를 나누시던 모습도 볼 수 없게 되었죠. 아주머니들을 위한 휴게공간은 신설되지 않았고, 직원 휴게실에서 쉬시는 일도 없어졌습니다.

"요즘은 어디서 쉬세요? 말씀 나누시는 거 한동안 못 뵀는데."
"화장실에 모여있으면 불편해들 하시니까, 그냥 여기저기서 잠깐씩 쉬지."

괜한 짓을 했나 봅니다.
아주머니들은 어디에서 쉬고 계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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