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오피스 365

싫은 상사가 인사도 제대로 안 받는다면?

싫은 상사와의 관계에 대한 마음가짐

by 춘춘
그의 비열한 모습을 많이 봐 왔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사람 카테고리에 넣었지만 나도 살아야 하니까 오늘도 열심히 맞춰준다. 사는 게 뭐 그런 것 아니겠는가.


회사에 대부분의 직원들이 좋아하지 않는 상사가 한 명 있다.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이지만, 영악하게 일하고 대단히 정치적이어서 꾸준히 위로 올라가는 중이다. 그를 탐탁지 않아하는 사람들도 직장에 목을 매고 있는지라 그의 요구를 맞추려고 노력하고 있다.

얼마 전 동료가 하소연을 했다. 그에게 보고를 하러 가면 일단 입술을 묘하게 아래로 찌그러 뜨리는 표정부터 보이니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자꾸 버벅거린단다. 호의적이지 않은 상사에게 보고할 때는 그렇지 않을 때보다 몇 배는 말이 안 나오는 법이다. 주눅이 들어 등신 같은 소리만 하고 나오면 패배감마저 든다.

(요즘 마스크를 쓰는 덕에 그 삐죽 대는 입술을 보기 힘들다. 그나마 코로나가 주는 장점 중 하나이다.)

동료가 토로하는 불만 또 하나는 인사였다. 그 상사는 인사도 제대로 받지 않는다. 참 일관성 있게 여러 면에서 진상이다. 인사를 하면 모른척하진 않는데, 눈을 약간 치켜떠 이마에 가로 주름을 만들면서 뭔가 의아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곧바로 고개를 약 1cm가량만 아래로 움직인다. 인사를 받았다고 하기엔 움직이는 폭이 너무 작다. 그게 어떤 행위를 설명하는 것인지 나도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동료는 그게 너무 재수 없다며 마주치고 나면 오랜 시간 기분이 나쁘다 했다.


그런데 나는 그 제대로 인사받지 않는 행위가 별로 기분이 나쁘지 않다.
나도 이 사람을 만나면 90도 각도로 인사를 깍듯이 한다. 잘못 보여서 피해보고 싶지 않으니 활짝 웃는 얼굴까지 더해 오버스럽게 인사한다. 가증스러워도 어쩔 수 없다. 돈 드는 것도 아닌데 인사를 아껴서 찍힐 필요는 없으니까. 그렇지만 그가 보이는 떫떠름한 반응에는 별다른 불쾌감이 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사람, 인정받고 싶은 사람이 내 인사를 묵살하면 서운하다. 그러나 싫어하는 사람과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의무적으로 하는 인사라면 내가 인사했다는 사실을 인지시키기만 하면 된다. 인정받고 싶은 상대에게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회사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처세하는 것은 다르다. 기분 나빠하는 것도 에너지 소모다.

그렇다고 동료에게 좋게 좋게 생각하자는 CS 매뉴얼 같은 말을 늘어놓지는 않았다. 나도 그 표정이 뭔지 알고 대체 왜 저러는 건지 모르겠다고 한바탕 맞장구를 쳤다. 대신 인사 같은 감정적인 것에서는 상처받지 말자고 했다. 월급이 깎이거나 진급이 누락될 때만 잠깐씩 상처받자고 했다.


회사에서 상처를 받는다는 것 자체가 나를 너무 힘들게 하는 일이다.

잘한 것을 인정받고, 무시당하면 그렇지 않도록 방어하고, 모르면 배우고, 무례한 자에게는 그러지 말라고 경고한다. 대응할 수 있는 것은 그정도 뿐이다. 너무 울화가 치밀 땐, 홧병 방지를 위해 보안이 유지되는 사람과 뒷담화나 한판 하고 말자.

그러고 보니 그렇다. 보고할 때조차 주눅이 들 필요가 없다.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소신 있게 일처리 하고, 보고하고, 맞는 피드백은 받아들여 수정하고, 비 이성적인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할 수 있는데 까지 하고, 안되면 어쩔 수 없다. 내 제안이 맞는데도 거부당했다면 거부한 사람이 지 복 걷어차는 거다. 패배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일 때문에 꼭 봐야 하는 사람이 싫어서 괴롭다면 감정을 분리해야 한다. 특히 상대가 상사일 때는 더욱 그렇다. 나를 특별히 괴롭히는 것도 아닌데 그의 고유 특성을 가지고 내 감정을 망가뜨릴 필요가 없다.

일을 잘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성공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도 아니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꼭 그렇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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