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인한 생활의 제약들이 불편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덕을 본다고 생각한 것이 있다면 회식이 없어진 것이었다.
회식이 싫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재밌었던 기억도 많고, 조직 운영에도 유용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나서부터는 퇴근 후 활동이 모두 부담스러워진 탓에 회식이 달갑지 않게 된 것이다.
또 한 가지 회식이 꺼려지는 이유는 억지로 술을 마셔야 했던 점이었다. 요즘에는 사회적으로도 술을 권하는 문화가 급격히 줄어들었고, 공교롭게도 회사에 술 좋아하는 사람들이 여럿 퇴사를 하는 바람에 술로 인한 스트레스는 거의 없어지긴 했다.
하지만 예전에는 회식 시작하기 전에 '여명'이나, 'RU21'같은 효과 좋다는 숙취 해소제를 나눠 마시며 각오를 다지기도 했고, 집에 가는 길에 오바이트를 한판 하고 들어가서 잠들기도 하는 등 몸이 괴로운 일들이 많았다.
그래서 원망스럽기만 했던 코로나 덕에 '회식 불가' 상황을 누리게 된 것이 약간은 다행이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제 슬슬 회식이 살아나려고 한다.
그동안에도 삼삼오오 짝지어 한잔씩 하기는 했지만 팀 전체가 공식적으로 식사를 하는 것은 코로나가 시작된 후, 단 한 번도 없었다. 코로나 초기에는 혹시라도 술 한잔 하려면 무슨 비밀 결사모임을 하듯이 극비리에 먼 식당을 잡아 주변에 회사 사람이 없는지 샅샅이 살핀 후 술을 마셨고, 그 후 3일간 확진자 접촉 연락이 올까 봐 전전긍긍했었다.
아직도 팀 내에 한두 명 코로나 휴가를 가 있는 상황이긴 하지만, 다음 달쯤에는 공식적인 회식이 한 번쯤 생길 것 같기도 하다.
다시 회식이 시작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뭐든 못하게 하면 하고 싶어지는 이상한 심보 때문에 요즘은 가끔 일 끝나고 삼겹살 집에 가서 소주 한잔 하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다.
더구나 예전처럼 부어라 마셔라 술을 먹이지도 않는 분위기고, 맛있는 음식을 남의 돈으로 먹는 즐거움도 쏠쏠하다. 나의 경우는 아이가 좀 자라서, 전처럼 술잔 위로 아이 얼굴이 아른거리는 정도도 덜할 것이다. 이제 조금씩은 회식을 즐길 수도 있을 것 같아 즐거운 마음마저 든다.
주류와 비 주류
그러다 보니 문득, 내가 이제 그 술 권하던 꼰대 아저씨들의 나이가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새 40대 중반이 된 것이다.
소주잔을 끊임없이 주고받고, 멀미가 날 만큼 파도를 자꾸 태우고, 집에 가려는 사람들을 붙잡아서 왜 일찍 가는지 청문회를 해 대던 그 차장님들의 나이가 딱 내 나이였다.
나는 그 사람들을 상사로, 팀장으로, 선배로 겪은 사람이다. 그리고 그 문화가 진저리 쳐지게 싫었으면서도 그들에 대한 유대감과 끈끈함은 남아있다.
당시에는, 대체 왜 저렇게 사나 혀를 끌끌 짜기도 했고, 죽을 것처럼 술을 먹어대는 무리를 보며 '야만인 들이다'라고 중얼거리기도 했다.
물론 모두가 술을 잘 먹는 것은 아니었고, 우리 조직이 권위적인 편은 아니어서 '주류'/'비주류'로 나뉘어 술 안 먹는 사람들은 안주를 즐기며 다른 테이블에 앉아 담소를 나눴다.
나는 주류와 비주류에 모두 속했었다. 신입사원 때는 젊음을 기반으로 열심히 술을 먹었고, 술자리의 왁자지껄함도 좋아했다. 숙취가 있어서 속도 울렁거리고 다음날 머리도 아픈 탓에 술 먹기를 꺼려하긴 했지만 그래도 술자리에 가면 또 즐겼다.
출산과 수유기를 약 2년 보내면서 그나마 있던 주량도 줄어들었고, 몸도 좀 안 좋아진 탓에 술을 거의 끊다시피 하면서는 나도 비주류의 좌석에 앉기 시작했다.
그때가 30대 후반으로 들어서는 시점이었다. 그 자리에는 주로 술을 못하는 사람들과, 술 먹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비주류' 좌석은 술잔이 오고 가는 '주류'의 좌석보다 조용하고 대화가 많았다.
술을 잘 먹던 시절에도 술이 센 편은 아니라 억지로 먹는 술은 곤욕이었다. 특히 인원수대로 배정된 부서운영비를 자주 술 먹는 사람들이 대부분 써 버리는 것에는 불만이 있었다. 더구나 본인들이 술을 잘 먹는다는 이유로 회식비를 대부분 소진하는 혜택을 보는 주제에 술을 먹지 않는 사람들을 사회생활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비난하는 것이 늘 못마땅하여 기회만 되면 부당하다고 한소리씩 하기도 했다.
그런데 참, 묘하게도 비주류의 자리에 앉아 있자니 회식자리와 술 먹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소리도 듣기 싫었다.
빨리 자리가 끝나서 집에 가고 싶고, 술 먹고 정신 못 차리는 사람들이 보기 싫은 것은 이해가 가서 맞장구를 쳤지만, 끊임없이 불평만 하는 그들도 얄미웠다.
"저는 술 싫어요."
'주류'의 좌석에서 술을 먹어대고 있는 저 사람들 중 정말 좋아서 먹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아무리 술을 좋아한다고 해도 상무님과 분위기를 맞춰가며 먹는 술은 맛이 없다.
주류 테이블의 사람들 중에는 술이 좋아서 먹는 사람도 있지만 술이 세서 거기에 속한 사람들이 더 많다.
그들도 따로 앉아서 편한 사람들과 술잔을 나누고 싶지, 술 좋아하는 상무심과 속도를 맞추며 억지로 먹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단지 '주류'라는 이유로 불편한 자리에 앉아있는 것이다.
비주류라는 이유로 상무님과 다른 테이블에 앉는 혜택을 보고 있으면서, 술 먹는 사람들을 한심하게 바라보는 비주류들이 얄밉고, 주류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느끼지만 내 몸 때문에 술은 먹지 않는 나는 위선자인가.
소주와 와인
우리 팀은 여직원 비율도 많고 분위기도 자유로운 편이라, 회식으로 공연을 본다든가, 패밀리 레스토랑을 간다든가 하는 일도 잦은 편이었다.
어느 날, 모처럼 고급 와인바에 가게 되었다.
술 값이 비싸서 많이는 못 마시지만 그래도 모아놓은 회식비에 상무님이 조금 보태주기도 해서 꽤 비싼 와인을 몇 병 시킬 수 있었다.
와인은 취하도록 마실 수 없으니 다들 동일한 양을 나눠 마셨다.
그런데 그동안 종교적인 이유로 술을 먹지 않는다고 신입사원 때부터 선언한 직원 한 명이 와인은 먹는 모습을 보았다. 그 직원 말고도 종교적인 이유로 술을 먹지 않는 직원은 꽤 많았다. 그런 직원들에게는 아무도 술을 권하지 않는 분위기였고, 비난도 하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그렇게 강하게 자신의 신념을 지켜오면서, 대표님과의 술자리에서 대표님이 단체로 따라 주시는 술도 거절했던 직원이 와인은 먹고 있었다.
분위기도 좋고, 특별한 술자리라고 생각되어 한잔 마시는 정도라면 모르겠는데, 새로운 와인이 개봉되어 다 같이 나눠 마실 때마다 한 잔도 놓치지 않고 다 받아먹는 건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그 와중에도 꼰대 소리는 듣기 싫었던 나는 "와인은 그래도 먹나 봐?"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꾹꾹 눌러 참았다.
나의 이성은 이렇게 말했다.
'자기가 먹고 싶을 때 먹는 거지 그걸 왜 규정 삼아 놓느냐, 먹지 않겠다고 하면 영원히 먹지 않아야 하는 것이냐, 법률로 정해놓은 것도 아닌데, 네가 뭔데 그걸 비난하냐. 꼰대냐? 신경 꺼!'라고......
그런데 내 의지와는 다르게, 내 눈은 한잔 한잔 받아 마시는 그 직원이 최종 몇 잔까지 먹는지 세고 있었다.
마음을 정의 내리는 것이 참 어렵다.
모든 구성원이 다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무리가 없는 조직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눈치를 본다.
'눈치 보는 사람이 바보지, 왜 다른 것을 인정 안 해주냐, 하고 싶은 말은 하고 살아야지'라는 생각과, '그래도 조직생활인데 상사의 기분도 고려하고, 팀 분위기도 생각해야지. 일하는데 분위기가 얼마나 중요한 건데'라는 생각이 늘 충돌한다.
그러면서도 점심시간에 나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동료들과 밥을 먹지 않고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는 나를 다른 동료들이 볼 때, 종교적인 이유로 술을 먹지 않았던 그 직원을 보던 나의 눈초리와 같을까 걱정한다.
내가 조금 비난받을 것을 감수하고 점심시간을 혼자 보내는 것과 그 직원이 비난받더라도 자신이 의지대로 했던 금주의 날들은 동일한 걸까.
그래도 점심시간은 단체로 활동해야 하는 시간이 아니니까 나는 그 상황과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자유롭고 싶지만 욕먹을까 봐 눈치를 보고, 애써 쿨한 척하면서도 이런저런 보기 싫은 일에는 심사가 뒤틀리는 나는 꼰대 소리를 듣기 싫어하면서도 서서히 꼰대가 되어가는 걸까.
참 혼란스러운 시기다.
아무튼 이제 다시 부활하려는 회식자리는 술 권하는 자리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예전에 열심히 술을 따라주며 억지로 먹기를 권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회사를 나갔거나 분위기를 파악하고 조용히 자기 잔에 술을 따라 마신다. 술 때문에 몸과 마음이 피곤할 일은 없을 것이다.
요 몇 년 사이 너무 빠르게 직장생활 문화가 바뀌어서 이제 회식의 개념도 광범위하고 희미해졌다.
단지 회식자리를 회상하던 중, 이제 정말 중년의 꼰대가 된 것인가를 깨닫고 화들짝 놀라는 내가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