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인샬라, 박기사님 이제 진짜 은퇴합니다.

by 춘춘

아빠는 트레일러 운전을 그만두시고 나서 화물트럭으로 개인사업을 하셨고, 몇년 후 일을 완전히 그만 두셨습니다.


그리고 또 얼마 후, 쉬는것도 지루하셨는지 경력을 이용할 수 있는 콘테이너 운반일을 구했다고 공표하셨습니다.


사업장 내부에서 콘테이너를 이동시켜 주는 일이었습니다. 전처럼 장거리 운전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힘이 많이 들 것 같지 않다고 하시는 모습이 활기차보여 저도 마음이 좋았습니다.


한 달쯤 출근을 하셨는데 어느 날 그만둬야 할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생각보다 손에 익지가 않네. 차를 바짝 대고 빼주고 그래야 하는데 벤츠, 아우디, 이런 차들 조심하자니 진땀도 나고 어렵겠어."



그때 알았습니다. 콘테이너 운반용 트레일러들도 브랜드 차량이 많다는 걸요.


그러고 보니 고속도로에 무수한 벤츠와 아우디 트레일러가 보이더라고요. 동안은 보이지도 않덧 것이 접적으로나마 내 삶에 발을 들이고 나면 기하게 눈에 꽂힙니다.


콘테이너가 모이는 사업장 안에서 이동 작업을 하는 것이 아빠의 업무였는데, 예전만큼 일이 손에 익지 않은 상태에서 고가의 트레일러들에 손상이 가지 않게 해야 하다 보니 하루에도 몇 번씩 심장이 덜컹덜컹 내려앉았을겁니다.


익숙해질 새도 없이 이 일을 더 하는 건 무리라는 생각이 드신 거죠.



"많이 아쉬워?"

"뭘 아쉽냐, 골치도 아프고 이제 그만해야지."

"그래요. 꼭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시도해 봤으니까 이제 취미 생활하고, 엄마랑 시골밭에 다니고 그래요."


택시를 해볼까, 파트타임을 해볼까, 다시 현장에 서 볼 가능성을 타진하시던 시기가 정말 지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인샬라,

'신의 뜻대로'라는 무슬림의 말니다.

사막에서 늘 듣던 그 말이 아빠의 생활태도에도 묻어있는걸까요?


손 닿지 않는 것에 대해 여러 말하지 않고 그대로 두는 아빠의 성격대로 아빠는 조용히 진짜 은퇴를 하셨습니다.



그래도 아주 성과가 없었던 건 아닙니다.


한 달간 받은 월급으로 손자와 손녀에게 고가의 장난감을 선물하셨으니까요.


당시 무려 12만 원이라는 무시무시한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헬로카봇' 세트는 아빠의 손자이자 제 아들인 준이의 최고 희망 장난감이었는데요.


아빠가 그걸 사주신 겁니다.


그날 카봇을 사러 마트에 갔으나 선반에는 박스만 전시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직원에게 실물이 있는지 물었더니 창고에 재고가 있는지 확인해 봐야 한다고 했요.

당장 그자리에서 사주고 싶었던 할아버지와 그날 물건을 받고 싶은 제 아들은 각자의 이유로 조바심이 났습니다.


장난감을 사러 마트에 동행했던 제부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아버님은 직원과 함께 창고 쪽으로 사라지셨고, 나타나셨을 땐 옆구리에 카봇을 끼고 개선장군처럼 행진해 오셨다'라고요.



벌써 몇 년이 지난 일입니다.

그 후로 아빠는 복지관에서 기타를 열심히 배우셨고, 몇 차례의 공연도 하셨습니다.


좋아하는 책도 읽으시고, 한적하게 노후를 보내는 모습에 저까지 안락한 기분이 듭니다.


한 가지 바람이라면 평생 마음껏 즐기신 술을 이제 좀 놓아버렸으면 하는 건데요. 몇 년 전 뇌경색을 앓고 나서 많이 줄이셔서 제가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다.


거친 항해를 마치고 돌아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고요히 항구에 정착한 거대한 무쇠 배 처럼, 아버지가 오래오래 평온한 노후를 즐기며 행복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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