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7. 중학생은 커피

아늑했던 일탈의 기억

by 춘춘

지경사에서 나온 소녀 명랑 소설 시리즈를 아시나요? 다렐르와 별난 친구들, 말괄량이 쌍둥이 시리즈를 기억하신다면 8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내신 분들 맞으실 겁니다.


그중 중학교 때부터 저를 커피의 길로 안내한 서적은 바로 '데이트 대작전'이라는 책이었습니다.

주인공 민희가 친구들과 함께 죽은 사촌언니의 소원을 들어주는 참신한 소재였어요.


이루지 못한 첫사랑의 꿈에 등장하는 것이 언니의 소원이었습니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소설이었는데도 주제는 사랑에대한 애틋한 감정이었죠.

그래도 충분히 공감했던 걸 보면 사랑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나이는 큰 걸림돌이 되지 않는가 봅니다.


세상을 떠난 언니가 짝사랑하던 남자의 꿈에 나타나게 할 방법을 고민하던 장면에서 민희는 커피를 홀짝거렸습니다.


초등학교 졸업을 앞둔 민희가 커피를 홀짝 거린다?

당시 4학년이었던 저에게는 굉장한 충격이었습니다. 아, 그 정도 나이면 커피를 마실 수도 있구나. 나도 중학생이 되면 커피를 마시리라, 다짐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이래서 검열이라는 게 필요한가 봅니다.


몇 년이 흘러 중학생이 되자마자 저는 싱크대 위 커피 선반에서 커피를 꺼내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맥심 그래뉼 커피 둘, 프리마 둘, 설탕 둘. 황금비율에 맞춰서요.

그때 부모님이 왜 제가 커피를 마시도록 그냥 두었는지 지금도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저 재미로 한두 번 먹어보는 정도인 줄 아셨겠죠.


하지만 방학이 되면 저는 매일 커피를 마셨습니다.

아빠는 새벽같이 출근을 하셨고, 엄마도 그즈음 동네 전자제품 조립업체에서 일을 하셨거든요.

엄마가 출근을 하시면 설거지는 제 몫이었어요. 설거지가 끝나고 나면 자유시간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작은방에 계셨고, 동생은 오전에 학원에 갔던 건지 10시경이면 늘 저 혼자 있었습니다.

공부를 하겠다는 요량으로 TV 앞에 밥상을 펴고 앉았습니다.

TV가 없는 방도 있었는데 꼭 그 거실 방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밥상 위에 책을 펴놓고 커피를 타 가지고 옵니다.

호로록 한입 마시면 입안 가득 프리마의 우유 향이 퍼졌습니다. 고소하고 달콤한 커피를 마시며 TV를 틀면 딱 그때 만화 작은아씨들이 나왔어요.

왜 그랬는지 케이블티비에서는 아침시간에 꼭 작은 아씨들이나 빨강머리 앤 같은 힐링 만화를 방영해서 제 공부를 방해하곤 하더라고요.


그렇게 한두 시간을 만화를 돌려보며 커피를 마시는 것이 중학생이던 저의 일탈행동이었습니다.

그 뒤로 벌써 30년간 커피를 마시고 있네요.


오늘도 늦은 주말 아침에 커피를 마시며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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