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6. 다방과 카페 사이
이울어 가는 것들
저희 동네는 서울 변두리였습니다.
동네 사거리에 나가면 90년대 시내 곳곳에서 볼 수 있었던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이나 '산타페'같은 커피숍들만 있었는데요. 커피숍 문화가 확산되면서 저희 동네에도 크고 작은 카페들이 늘어났습니다.
당시에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친구 한 명이 동네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그 커피숍의 원래 이름은 '참다방'이었는데요. 다방 사업이 기울어지다 보니 사장님이 가게 이름을 '참커피숍'으로 바꾸고 새롭게 대학생 아르바이트생을 뽑은 겁니다.
동네에서 주말에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가 흔치는 않았습니다. 친구는 토, 일요일에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했고, 일을 마치고 나면 저를 비롯한 동네 친구들을 만나 놀곤 했지요.
고등학교 3년 내내 매일 만나다가 각자 다른 대학으로 뿔뿔이 흩어진 상황은 모두에게 향수병 같은 감정을 앓게 했습니다. 왠지 고향을 떠난 것만 같아서 주말마다 만나 지난 학창 시절 이야기들을 끊임없이 되뇌던 시기였어요.
그날도 친구는 커피숍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조금 늦게 합류했습니다.
"왜 이렇게 늦었어! 오백 하나 시켜."
"어, 알바 그만둬야 될까 봐."
"왜? 그래도 시간당 2천 원 주니까 괜찮잖아."
당시 동네에서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라고는 롯데리아 정도였는데 시간당 천육백 원이었어요. 그나마 그 자리도 고등학생들이 포진해 있어 뚫기 어려운 자리였습니다.
웃음과 하소연이 섞인 친구의 사정은 이랬습니다.
할아버지 손님 한분이 들어와 테이블에 앉으셨어요.
서빙 종업원인 제 친구는 할아버지 손님에게 가서 메뉴판과 물을 드리며 물었습니다.
"뭐 드시겠어요?"
"커피 두 잔 줘, "
"아, 한 분 더 오세요?"
"아니, 아가씨 한잔 마셔야지."
울상을 하며 털어놓은 친구 얘기에 우리는 배가 아플 때까지 웃었습니다.
그런 할아버지들이 하루에 한 번씩은 오신다는 말에 사그라들던 웃음이 더 터져 나왔어요.
다행히 손목을 잡는다거나 옆에 앉으라고 하지는 않으셨다고 합니다. 종업원 아가씨에게 차 한잔을 시켜주는 아량을 베풀 줄 아는 점잖은 어르신일 뿐이었을 거예요.
새로운 인테리어와 개명으로 다시 태어나보려던 참커피숍은 다방의 흔적을 지우지 못해서인지 이듬해에 문을 닫았습니다.
정다웠던 고교시절을 잊지 못해 주말마다 모이던 우리들도 대학교라는 화려한 환경에 적응해 갔고 주말 모임은 슬슬 사라져 갔습니다.
아마도 커피숍이 문을 닫기 전에 친구는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었을 것입니다.
주말마다 모이던 친구들 중 반 이상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참커피숍 종업원이었던 친구 수경이도 지금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겠죠.
가끔씩 거리에서 다방 간판을 볼 때마다 참다방, 아니 참커피숍에서 일했던 수경이가 떠올라 피식 웃음이 터지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