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5. 할머니랑 커피 한잔
커피가 있어서 더 따뜻했습니다.
외갓집은 저희 집에서 버스로 20분 정도 거리에 있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이모와 삼촌들이 북적대던 외갓집에 가는 것을 좋아했어요. 중학교 때부터는 혼자 버스를 타고 주말이면 자주 외가에 가서 놀다 왔습니다.
대학에 다닐 무렵이 되니 삼촌들이 결혼을 해서 분가를 하고 서른 평쯤 되는 아파트에는 외할머니와 큰 이모만 남았습니다.
그래도 주말만 되면 외갓집에 습관적으로 갔어요. 책을 잔뜩 싸들고 가서 이틀 동안 마루에서 뒹굴 거리며 TV를 보다 오는 게 전부였어요.
금요일 저녁 무렵 시간이 나면 외갓집으로 갑니다. 뜨듯한 거실 바닥에서 뒹굴거리며 밤늦게까지 책을 읽다가 주로 거실에서 잠이 들었어요. 아침에 느지막이 일어나면 이모가 아침을 먹자고 상을 들고 옵니다.
밥그릇 가득 넘치는 고봉밥에 반찬이 빽빽한 동그란 밥상 앞에 앉아 할머니와 이모와 같이 아침드라마를 보며 밥을 먹습니다.
아침드라마는 일주일 내내 안 봐도 토요일 하루치만 보면 내용을 훤히 알 수 있죠.
"그러니까 저 여자가 쟤 친엄마야?"
"응, 그렇지. 애 버리고 시집갔는데 친구가 데려다 키운겨."
헷갈리는 부분은 물어보면 이모와 할머니가 바로 답을 해줘서 내용 파악에 도움을 주십니다.
밥을 다 먹고 나면 이모가 찻잔 가득 커피를 타서 가져옵니다. 할머니는 당뇨를 앓고 계셔서 음식을 주의해서 드셨는데, 그래도 꼭 아침에 다방커피 한잔은 드셨습니다.
할머니랑 이모랑 셋이 둘러앉아 진하고 달콤한 다방커피를 한잔 마시다 보면 세상 걱정이 다 날아갔습니다.
제가 취직을 할 무렵 할머니는 큰 외삼촌 댁으로 들어가 사시게 되었고, 이모도 분가를 했습니다.
그리고 더 세월이 흘러서 할머니는 집과 요양병원을 왔다 갔다 하실 만큼 몸이 안 좋아지셨어요. 혼자 몸이셨던 이모는 할머니가 거동이 불편해지시면서 거의 매일 삼촌 집과 요양병원을 오가며 할머니 간병을 하셨습니다.
저도 가끔 시간이 나면 할머니에게 들렀습니다.
"이모, 커피 사갈까?"
"어 아메리카노 한잔만 사와. 할머니랑 나눠 마시면 돼"
"할머니 아메리카노 드셔? 우리 할머니 신식이구만"
입맛이 세련되지신 할머니는 아메리카노도 즐기셨답니다. 많이 드실 수는 없어서 아메리카노 한잔을 셋이 나눠마셨습니다.
병실 침대에 걸터앉아 말도 걸고, 제 아들 사진도 보여드리면서 할머니 눈을 보고 있으면 흐릿한 눈빛이 조금씩 살아나는 듯했습니다.
연세도 있고 지병도 있으셔서 병세가 나아지지는 않았습니다. 할머니가 정신도 혼미해지시고 식사도 거의 못하시는 채로 천정만 바라보며 누워계시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래도 정신은 있으셔서 문병 온 사람들 얼굴은 알아보셨지만 말씀은 거의 못하셔서 눈빛만으로 대화할 때였어요.
할머니 병상 옆에 앉아, 수개월 동안 거동도 못하고 진통제를 맞으며 목숨만 유지하고 계시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사람이 병에 걸려 죽음에 이르기까지 짧지 않은 기간, 아무것도 의지대로 하지 못하고 의식만 깨어있는 저 시기는 인생에 무슨 의미일까,
답을 내기 힘들었습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실까 봐 슬퍼지는 마음과 고통스러워하시는 할머니가 이제 그만 편안해지셨으면 하는 바람 사이에서 혼란스러웠습니다.
누워계시는 아흔넘은 할머니의 얼굴을 닦아주는 일흔 넘은 이모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이모가 말했습니다.
"엄마, 오늘 얼굴 보니까 좋지? 이렇게 하루 또 사는 거야. 그리고 또 내일 얼굴 보는 거야. 얼굴 보고 좋고, 그렇게 하루하루 사는 거야."
이모의 말은 저의 오랜 혼란에 답이 되었습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벌써 4년이 넘었네요.
이모랑 할머니랑 TV를 보던 시간, 병실에서 할머니의 얘기를 한마디라도 더 들으려고 눈을 마주치고 있던 시간, 커피가 함께 해서 더 따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