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1. 흔들어 아이스커피
방울방울 흩어지는 인연들
신입사원이었던 저는 실험을 가르쳐주는 사수였던 김대리님을 마냥 믿고 따랐습니다.
저보다 한 뼘은 작은 김대리님은 그 여린 몸 어디에서 기운이 그렇게 나는지 실험실을 늘 반짝반짝 윤이 나게 닦았습니다. 고기도 줄을 맞춰 구워야 직성이 풀린다며 자기와 함께 사는 남편은 참 피곤할 거라는 농담도 하면서요.
그래도 함께 일하는 것이 피곤하지 않았어요. 정말 부지런한 사람들은 같이 일하는 사람이 불편하지 않게 사부작사부작 혼자서 일을 해 냅니다. 정리 못하던 저도 그분께 정리하는 방식을 많이 배웠습니다.
더운 여름에 짬이 날 때면 김대리님은 실험실에서 흔들어 아이스커피를 만들어주셨습니다.
즉석에서 만들어 먹는 커피인데요. 제조 방법은 아래와 같습니다.
빈 생수병에 맥심 모카골드 믹스커피를 세 개 정도 넣습니다. 그리고 정수기 냉수를 가득 채웁니다. 뜨거운 물로 미리 녹이지 않고 바로 찬 물을 넣는 거예요.
생수병 위로 5cm쯤 공기가 들어갈 공간을 비워두고 뚜껑을 꽉 잠급니다.
그리고 정말 세차게 흔듭니다. 위아래로 팍팍 치듯이 흔들어 커피 알갱이와 프리마 가루, 설탕가루를 억지로 섞는 겁니다. 커피는 그런대로 잘 녹지만 설탕과 프리마는 거의 녹지 않고 물리적으로 섞여있는 상태가 됩니다.
그때 바로 종이컵에 따라서 마십니다.
하얀 덩어리가 떠있는 흔들어 커피를 한입 머금었다가 삼키면 덜 녹은 프리마와 설탕 덩어리가 자잘하게 입에 남아 사각 씹힙니다.
그게 무슨 맛일까 싶으시죠? 굉장히 맛있어요. 진하고 달달한 커피우유에 설탕 덩어리를 넣어서 먹는 기분입니다.
이상하게 찬물에 타 먹도록 만들어진 아이스커피 믹스로는 그 맛이 나지 않습니다. 가루 크림과 설탕이 잘 녹아버리면 그런 맛이 나지 않더라고요.
이게 몸에는 안 좋을 거야. 우리 둘은 흔들어 아이스커피를 마실 때 늘 그런 말을 하며 낄낄댔습니다.
저와 4년쯤 함께 일하다가 김대리님은 개인적인 이유로 퇴사를 하셨어요. 떠나실 때 마음 아픈 일도 있고 해서 김대리님을 생각하면 더 아련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몇 년 후 김대리님이 운영하시는 카페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화분을 하나 사들고 입구에 들어갔는데 카운터에서 반기는 김대리님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주책맞게 울음이 나와버렸습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같이 간 사람들 모두 웃음이 터졌는데요. 왜 이러냐며 웃는 김대리님의 눈에도 눈물이 그렁했어요.
카페 사장님이 되신 김대리님은 아주 훌륭한 드립 커피를 내주셨습니다.
흔들어 아이스커피를 제조하던 실력이 그냥 있었던 게 아니었나 봅니다. 깜찍한 아이디어들로 메뉴판이 예쁘게 꾸며져 있었습니다.
얼마 후 김대리님은 육아에 전념하시느라 카페 문을 닫으셨더라고요. 한번 만난 후에 새해 인사 정도만 드리고 더는 만나지 못했습니다.
회사에서 만난 인연은 조금 허무합니다.
몇 년을 하루에 열 시간씩 함께 했어도 퇴사와 함께 희미해져 버립니다.
여름에 실험실에 앉아 있으면 김대리님이 만들어 주시던 흔들어 아이스커피가 생각납니다.
김대리님이 나가시고 나서 한두 번 해 봤지만 그 맛이 안 나더라고요. 생수병, 찬물, 믹스커피, 그리고 김대리님 손맛이 모두 들어가야 맛이 완성되는 레시피였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