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이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회전의자를 있는 대로 뒤로 젖히고 책상 위에 멀찌감치 올려놓은 노트북 모니터를 훑어보며 느긋하게 재택근무를 하고 있었다.
코로나가 한창이라 전체 인력의 50%가 재택근무를 하던 2월의 금요일이었다. 집에서 일하는 혜택을 마음껏 즐기며 커피도 마시고 간식도 먹으면서 보고서를 쓰던 중이었다.
스마트폰이 울리고 화면에 아빠라는 글자가 떴다.
“아빠? 왜요?”
“어...... 이야....”
“어? 목소리가 왜 그래? 잘 안 나와? 목 아파요?”
목이 잠긴듯한 아빠의 목소리, 우리에게도 올 것이 왔나 보다. 코로나 키트를 챙겨야겠다고 생각했다.
다 같이 검사를 해야겠지? 학교에 간 아이들은 어쩌지? 지금 쓰던 보고서를 보고해야 하는데 일주일 뒤로 미뤄야 하나?
아빠가 코로나 확진을 받게 되면 처리해야 할 일들이 1초 안에 머릿속에 한 번에 떠올랐다.
“아.. 니... 그게 아니아... 지난번하고 같.. 은거...”
숨이 턱 막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허겁지겁 점퍼를 걸쳐 입고 양말도 신지 않은 채로 지갑과 핸드폰을 챙겨가지고 나가려다 현관 앞에서 잠깐 멈췄다. 침착해야 해.
119에 전화를 걸어 증상을 얘기하고 도움을 청했다.
아빠는 2년 전에 뇌경색 진단을 받은 적이 있었다.
다행히 발의 감각이 떨어지고 소리의 방향이 인지되지 않는 증상을 아빠가 스스로 눈치채고 병원 응급실로 바로 가서 후유증 없이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본인만 느꼈던 증상이라 우리 가족은 크게 놀라지 않았고 그마저도 잊고 있었다.
이번엔 그때와 달랐다. 119와 통화를 하며 골몰 맞은편 부모님 댁으로 달려갔다
아빠는 침대에 앉아있었는데 혀가 굳은 듯 말을 하지 못했다. 10분도 지나지 않아 119 구급대원들이 왔다. 혼자 걷기 힘들었지만 쓰러진 상태는 아니라서 구급대원들과 내가 부축하여 구급차로 아빠를 옮겼다.
코로나일 것이라고 생각했을 때는 무엇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한눈에 펼쳐지던 일들이 이번엔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손은 떨리는데 몸과 마음은 더욱 침착해졌다.
남편에게 전화를 했고, 하필 그날 시내로 물건을 사러 나가서 집에 없던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가 놀라지 않도록 천천히 설명했다.
구급차 안에서 아빠는 한번 토했다. 의식은 살아 있어서 대답을 할 수는 있었지만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왼쪽 다리는 움직이지 못했다.
응급실에 들어가 접수 절차를 거치자 몇 명의 의사와 간호사가 다녀갔다. 혹시 뇌출혈인지 확인하기 위해 CT를 찍었다. 뇌출혈은 아니었다. 그전과 같이 뇌경색이 재발된 것 같다고 했다. 즉시 혈전을 용해할 수 있는 약을 주사해 주었다. 이 약이 바로 듣는다면 15%는 신속히 회복된다고 했다.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는 아빠의 팔을 힘없이 주물렀다. 불안하지 않으려고 미소를 지었다.
한 시간쯤 지나자 아빠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갈 만큼 발음이 돌아왔다. 그동안 내내 잡고 있던 아빠의 팔을 더 꽉 잡았다.
MRI 촬영을 하기 위해 자리를 옮겼다. 아빠가 촬영을 하는 40분 동안 가족들에게 연락을을 하고 병원 1층 편의점에 갔다.
이어폰과 생수, 수건, 칫솔, 종이컵을 바구니에 담았다. 생각해 보니 점심을 먹지 않아 내가 먹을 초콜릿과 젤리도 하나씩 넣었다. 가방도 없이 핸드폰과 지갑만 주머니에 넣어간 터라 커다란 쇼핑백을 하나 사서 구입한 물건들을 넣고 어깨에 멨다
MRI 촬영이 끝나고, 응급실에서 서너 시간을 보냈다. 다음날까지 응급실에 있어야 한다는 안내를 들었는데 운 좋게도 병실에 자리가 나서 뇌졸중 집중 치료실로 올라갈 수 있었다.
다행히 약이 효과를 발휘한다는 15% 안에 들었는지 하루가 지나지 않아 아빠의 발음은 꽤 정확한 상태로 돌아왔다. 약은 뇌경색에는 효과적이지만 부작용이 있다면 24시간 안에 뇌출혈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했다. 약 48시간 동안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고 꼼짝 않고 있어야 했다.
의식이 돌아오고 나서 간호사가 아빠에게 술을 얼마나 드시는지 물었다. 아빠는 일주일에 5일, 한 번에 막걸리 한 병을 드신다고 말했다. 질문하던 간호사가 '아버님 술 그렇게 드시면 안돼요’라고 했다.
그리고 나에게 따로 물어봤다.
"술을 언제부터 많이 드셨어요? “
”아... 아마 성인이 되신 이후부터인 거 같은데요. “
물어본 간호사도 대답한 나도 고개를 숙이고 웃었다. 몇 시간 전만해도 손을 덜덜 떨었는데 고비가 지나갔다고 웃음이 나오는게 어이없어 또 한번 피식 웃었다.
코로나 때문에 보호자는 한 명, 그마저도 자주 교대할 수 없어 내가 3일간 아빠 곁에 있기로 했다. 아빠가 나와 얘기를 나누고, 농담도 하고, 몸을 돌아누워 자신의 핸드폰을 들어 확인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날아갈 가벼웠다.
환자 침대 옆 낮은 보호자 침대 위에 이불을 각지게 접어놓고, 첫날 편의점에서 구입했던 쇼핑백 속에 수건과 칫솔치약, 종이컵 두루마리 휴지 등을 가지런히 정리해 두고, 집에 들러서 가져온 책을 꺼내 침대에 기대 읽었다. 더 이상 부러울 것 없이 느긋하고 평화로웠다.
아침저녁 간호사와 의사들이 번갈아 들어와 날짜와 이름을 물어보고, 팔다리를 교대로 들어보게 하고, 몸에 힘 빠지는 곳은 없는지 체크를 했다. 테스트가 반복될 때마다 아빠는 한시가 다르게 회복이 되었다. 더 이상 걱정은 되지 않았고, 감사했다. 3일째 되는 날부터 음식을 먹을 수 있었고, 걸어서 화장실을 가도 된다는 지시를 얻었다.
아빠를 제외하고 다른 침대의 환자들은 아무도 아빠처럼 또박또박 발음하는 사람이 없었다.
꽤 오랜 시간 집중치료실에 와 계신 분들도 있었고, 대부분 거동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환자와 보호자 간의 대화는 보호자가 환자를 돌보며 주는 간단한 지시 정도였다. 주로 조용했고, 몸을 움직이는 소리만 들렸기 때문에 나와 아빠도 커튼을 쳐놓고 최대한 목소리를 낮추어 얘기했다.
간혹 환자의 몸을 이리저리 돌려 눕히는 보호자의 힘겨운 신음 소리와 야릇한 냄새가 슬픔처럼 밀려왔다.
본격적으로 아빠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아빠의 메모에서 시작되었다. 병상에 누워했던 생각들을 짤막하게 기록한 아빠의 메모.
퇴원 후 안부를 물어오는 지인들에게 카톡으로 답하기 힘들었던 아빠는 몸이 좋지 않음을 느꼈던 순간과 병원에서 겪은 일련의 일들을 수첩에 적었다. 그리고 그 메모를 사진으로 찍어서 안부를 묻는 지인들에게 전달했다.
내가 보호자 침대에서 생과 사에 대해 생각하는 동안 아빠도 자신이 현재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는 것을 메모를 보고 알 수 있었다.
난 왜 아빠가 별생각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내가 아무리 가슴을 졸여도, 마비증세를 겪고, 위기 상황을 넘긴 당사자는 아빠인데 말이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고 해도, 한 몸에서 분화된 부모와 자식일지라도 물리적 통증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공유할 수는 없다. 가장 두려웠을 사람은 아빠였다는 당연한 사실을 늦게서야 깨달았다.
아빠의 인생은 어땠을까. 둔탁해 보이기만 했던 아빠의 나날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아빠의 마음들을 이해해 보고 싶었다.
하나씩 뒤로 돌아가면서 되짚는다. 늙음에 대한 서글픔, 은퇴를 앞둔 불안, 가족의 생계를 짊어졌던 무거움, 열사의 사막까지.
사막에서 서른 한 살 아빠는 어땠을까.
아빠가 중동에서 가지고 온 모형 물담배 장식품, 작은 동물 인형들, 사막에서 모래를 가리는 데 사용했던 쉐마그같은 것들은, 책장 꼭대기에, 서랍 구석에, 버리지 않지만 사용하지도 않는 관광 기념품들처럼 집안 여기저기 박힌 듯 자리하고 있었다. 아빠는 젊은 시절에 중동에 다녀온 많은 인부들 중 한명이고 그래서 그런 물건들이 집에 있다는 것을 항상 알고있었지만 그 곳에서의 아빠의 마음은 한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가장 가깝지만 가장 신경쓰지 않았던 부모의 이야길르 다시 듣고 기록하고 짐작하고 싶었다.
아빠의 이야기를 쓰기로 하고 나니 조급했다. 아빠는 내 곁에 오래 머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지만 더 오랫동안, 앞으로 오랜 시간을 아빠의 얘기를 듣고 기록하고 짐작하고 싶었다. 그 주 주말부터 아빠 얘기를 듣기 위해 아빠를 만났다. 그리고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꼭 기록하고 싶은 이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