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인생은 없다.
박기사님은 군대를 제대한 후 운전으로 돈을 벌기 시작했습니다.
재건축 현장에 덤프트럭 기사로 입사한 얼마 후의 일입니다.
흑석동 육교 밑에서 무단횡단을 하던 노인을 치고 말았습니다. 노인은 의식불명이었고요. 바로 병원으로 노인을 옮기고 경찰서에 입건이 되었습니다.
노인은 혼수상태인 채로 병원에 있다가 다행히 깨어났지만, 박기사님은 과실치상법 미결수로 형무소에 두 달 간있어야 했습니다. 그때 한 방에서 사형수와 함께 지냈다고 합니다.
박기사님, 우리 아빠에게 그런 역사가 있었다는 건 이번에 아빠 이야기를 쓰면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아빠의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내 요청에 아빠는 자신의 이야기들은 너무 평범해서 책이 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사는 이야기는 다 평범하지만 그런 얘기들도 잘 쓰면 책이 될 수 있다는 남인숙 작가님의 말씀까지 인용하며 설득하는 나에게 아빠는 코웃음을 쳤죠. 그래도 좀 적어달라고 부탁했더니 며칠 후 노트 십여 장을 건네주었습니다. 아무리 봐도 책이 되기엔 우스꽝스럽고 글이 써지지도 않는다며 네가 이 종이들 가지고 알아서 하라고 했습니다. 칠십 평생 글을 쓰지 않았는데 잘 쓰려는 건 욕심 아니냐고 핀잔을 주며 종이를 받아 들고 왔습니다.
아빠의 노트에는 내가 몰랐던 많은 얘기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형무소에서 지낸 날들은 처음 듣는 일이라 마음이 저릿했습니다.
아니, 아빠. 이게 평범한 거면 대체 뭐가 특별한 거야? 무슨 마피아 갱단에 발좀 담그고 와야 특별한 거야?
이웃 블로거 김숙경 화가님은 일기 그림을 그리면서 좋은 말씀을 가끔 적으십니다. 작년에 올리신 이 말이 마음에 닿아 화장실 유리에 적어 두었습니다.
나는 신발이 없다고 울었다. 발이 없는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
_ 고대 페르시아 격언
수많은 행운이 우리를 거쳐갑니다. 기쁨을 주는 행운도 있지만 그중 대부분은 우리가 모른 채로 살아갑니다. 먹고 자고 공부하는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세대에 속했던 것을 감사해 본 적이 없습니다.
이제 나도 ‘나 때는 말이야’가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오는 나이지만 아빠의 그때는 더없이 혹독했습니다. 도저히 나는 그렇게 살 수 없을 것 같은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래도 묵묵히 하루를 성실히 살고, 자신의 날들은 그저 평범했다고 되뇌이는 아빠를 존경합니다.
끝으로 아빠가 직접 쓰신 글을 그대로 옮겨적으며 마치겠습니다.
73년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제대 후 담프트럭 기사 입사 후 1년쯤 되었나, 흑석동지나 육교가 있는데 사고가 나려 그랬는지, 진눈깨비가 내리는데 조수 녀석이 유리가 너무 지저분하니 좀 닦고 가죠? 한다. (이 시기에는 조수가 있었다.)
응, 그래. 하고 차를 세우고 앞 유리를 잘 닦고 출발 후, 육교 밑에서 무단횡단하는 노인을 쳤다.
(담배꽁초 줍는 노인이었다. 예전에는 이 꽁초를 주어서 담배만 까가지고 모아서 파는 곳이 있었다.) 담프차에 부딪쳤으니 사망 아니면 중상이다. 차는 조수에게 부탁하고 택시에 의식불명의 노인을 싣고 병원으로 갔다.
경찰서 차를 타고 입건되었다.
이 노인이 의식이 있으면 경찰서에서 형무소까지 가지 않았을 것 같은데 경찰서 10일 후 검찰로 송치되었다. 경찰서에서 검찰로 넘어갈 때 어머님이 버스 저편에서 울고 계신 모습에 마음이 울컥했다.
나중에 들은 바에 의하면 어머님도 자식이 형무소 방에서 이 겨울에 추운데 잠을 자는 것이 안타까워 불을 넣지 않고 주무셨다고 한다.
고척동 미결수 방에는 과실범들 (주로 교통사고) 있는 방에 사형수 및 중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하나씩 같이 넣어준다고 한다. 잡범들 방에 같이 두면 제2의 사고를 친다 해서 취한 조치이다.
이때 20일 일찍 들어온 사형수 강씨와 같은 방에 있게 되었다.
종이를 흰색, 검은색 찍은 것을 밥알로 붙여 만든 바둑알로 바둑을 같이 두기 시작했다.
강씨는 바둑이 3급이라 했다.
난 7급 정도 실력이니 한참 상수다.
검찰과 면회 갔다 온 날이면 눈물을 흘리며 통곡하기 직전이다.
자식과 부인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고 사형 언도를 받았다는데 어찌 회한이 없으랴. 정말 죄짓고 살지 말자 하는 생각이 든다.
부인이 면회 온 날 눈이 팅팅부어 울은 표정, 얼마나 뼈저리게 후회하고 고통을 느꼈는지 잇몸이 헐어 한참 동안 밥을 못 먹는 모습이 안타깝고 측은하다. 선량하던 눈빛이 무섭게 변하고 방안은 조용하다. 농담하기도 어렵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이 끼어 나는 45일 만에 집행유예 20일로 풀려났다. 다행히 혼수상태인 노인이 깨어났다.
문득 그 사형수 생각이 난다. 주범은 아니었지만 범죄를 공모하다가 우발적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었다. 안타깝지만 인과응보인 것이다.
사고가 난 후 두 달 동안, 길다면 긴 미결수 감방에 있으면서 많은 군상들을 만났다.
중동 현장에서도 살인 사건이 난 적이 있었다. 중간 기착지에서 포크레인 기사가 현장 인부와 다투다 살인이 벌어졌다고 한다. 현지 경찰과 관리자 감시하에 독방에 구금되었는데 곧 귀국하여 법의 심판을 받는다 했다.
주위의 수군대는 소리를 들으니 살기 띈 눈초리가 무섭다 했다.
우발적 살인이라도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 없고 3초만 생각하라는 옛 성인의 말씀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