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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춘 Nov 17. 2022

완벽한 행복

곧 잊겠지만...

블루투스 이어폰을 늘 끼고 산다.

실험실에서 일할 때 주로 귀에 끼우고 듣는데, 며칠 전 저녁에 꺼내봤더니 귀에 닿는 면에 붙어있어야 할 고무링이 없어져 있었다. 가방과 주머니 안을 다 뒤져도 없는 것을 보면 아마도 주머니에 넣었다 빼는 과정에서 바닥에 떨어진 것 같았다.

고무가 없더라도 소리는 들을 수 있지만 귀에 닿는 부분이 딱딱해서 귓바퀴가 아팠다.
집에 여분이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것도 찾아보니 없었다.

이것 때문에 AS 센터를 가기도 싫고 며칠을 그냥 귓바퀴가 아픈 채로 참거나 다른 한쪽만 사용하며 지냈다.

일상에서 이런 사소한 것들이 없어졌을 때, 한구석이 삐그덕 거리는 것처럼 신경이 쓰인다. 기능이 마비될 만큼 큰 일이라면 다른 것들을 중단하고 원상 복구 힘을 쏟을 텐데 대강 잘 돌아갈 정도면 불편한 채로 버티게 된다.

아침에 이어폰을 꽂을 때마다 아, 이거 사야 되는데 주문해야 되는데, 생각만 하고 금세 잊어버린다. 몇 시간 후 다시 이어폰을 사용할 때 또 아, 불편한데 사야 되는데. 그러면서 혹시 내가 놓친 게 아닌가 헛되이 다시 가방 안을 뒤져본다.

이 덜그럭 댐이 반복되면  사소한 일의 크기가 점점 커진다.

그리고 어이없는 기도를 한다. 아, 이것만 찾게 되면 진짜 편안 해질 텐데, 다른 것들은 완벽한데. 그리고 다음부터는 절대로 안 잃어버릴 거야. 제발 나와줘.

그렇게 일주일쯤 보내고 난 후 오늘 아침, 출근하자마자 실험실에 내려가 보았다.

어제 했던 일을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실험대와 바닥이 부착되어있는 틈 안에 까맣고 동그란 것이 보였다.

설마, 쭈그리고 앉아 들여다보니 내가 잃어버린 고무링이었다.

내가 지른 탄성을 누가 들었다면 오만 원짜리 지폐라도 주운 줄 알았을 것이다.

고무링을 다시 부착한 이어폰을 귀에 꽂고 사무실로 올라왔다. 다시 모든 것이 균형을 이뤘다.

이제 오른쪽도 왼쪽도 다 끼우고 음악을 들어도 귓바퀴가 아프지 않다.

오후만 돼도 잊힐 행복이지만 오늘 아침은 완벽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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