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 워킹맘] 레몬케이크, 예쁜 포스트잇, 저가의 만년필
“레몬케이크, 예쁜 포스트잇, 저가의 만년필… 내가 아주 좋아하는 것들을 즐길 시간을 잠깐 마련하면 나머지 역할을 수행할 에너지도 충전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마켓컬리에서 파는 레몬케이크는 우리 집에서 내가 제일 많이 먹는다. 내가 제일 좋아하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은 남편과 나, 아들 세명인데 그중 아들은 레몬케이크를 먹어본 적이 없다. 주로 새벽에 일어나서 나와 남편만 먹고, 아들에게는 주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달고 맛있으니 아들도 좋아하긴 하겠지만 아들은 이 작은 케이크를 야금야금 먹으면서 느껴지는 새콤하고 풍부한 맛을 완전히 즐기지는 못할 것이다.
더구나 작은데 비싸서 아들이 순식간에 몇 개를 먹어치우면 커다란 홀케이크 값만큼 나올까봐 주지 않은 것도 이유라고 한다면 내가 너무 인색한 걸까?
아이를 낳고 나면 모든 것이 아이 위주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그래도 '내가 엄마는 엄마구나' 싶을 때는 정말 좋아하는 만두 같은 음식이 딱 한 개밖에 없는데도 내가 먹는 것보다 아들이 먹는 것이 훨씬 더 기분 좋을 때이다.
안타깝고 절절한 모성을 느낄 때도 있지만 그런 원초적인 욕구까지 양보하게 되는 것이 생활 모성 아닌가.
그러면서 왜 레몬케이크는 혼자 먹느냐.
그냥 이건, 딱 나만 생각하고 사는 물건이다.
아들이 웃는 얼굴을 보면 모든 것을 다 해주고 싶고, 내 마음이 아릿할 만큼 소중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기준을 아들에게 맞추다 보면 묘한 상실감이 들고, 나도 모르게 공치사를 하게 된다.
아주 좋아하는 어떤 것을 나 혼자 만끽할 때 느끼는 충만함은 가족을 더 조건 없이 사랑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그 충만함은 2천7백 원짜리 레몬케이크만으로도 채워질 수 있으며, 이상하게도 다른 음식과는 달리 다 같이 먹을 때보다 나 혼자 먹을 때 더욱 극대화된다.
(2020년 12월 29일의 일기)
https://brunch.co.kr/@hanschloejun/53
몇 년 전에 제가 썼던 일기를 가져와 봤습니다.
당시에 저는 레몬케이크에 빠져 있었는데요. 새벽기상을 하고 나면 저에게 주는 상으로 레몬케이크를 한 개씩 먹었습니다.
눈이 휘둥그레질만한 맛은 아니지만 담백하고 상큼해서 홍차와 잘 어울리는 중독되는 맛이에요. 한 조각 잘라서 입안에 넣고 혀로 꾹 누르면 풍부한 식감이 끝내줍니다.
가족들이 모두 잠든 시간에 혼자 일어나 노란 스탠드 불 아래에서 차와 케이크를 먹는 아늑함은 행복이라는 말로 표현되기 적합했습니다
사이즈가 작고 가격도 만만치 않은데도 종종 사 먹었어요. 몇 개만 장바구니에 넣어도 만원 대가 훌쩍 넘어버려서 살 때마다 고민이 되긴 했는데요. 어쩐지 이것만은 내가 먹고 싶은 만큼 먹어야 후련했다고 할까요?
분수에 맞지 않는 사치라면 절제해야겠지만 생활비를 크게 축내는 정도가 아니라면 자기만을 위한 약간의 소비는 긍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묘하게도 실용도가 떨어지는 물건일수록 효과는 더 높습니다. 완벽히 즐거움을 위해 구입한 작은 물건이 내 손에 들어올 때 가슴이 콩다닥 뛰는 느낌을 하시나요?
레몬케이크 말고도 저에게는 몇 가지 그런 아이템이 있습니다. 책갈피로 쓸 수 있는 예쁜 포스트잇, 플래너에 붙이기 위해 구입한 마스킹 테이프, 좋은 제품은 아직 장만하지 못했지만 저렴한 것으로 사각거림을 만끽하고 있는 저가의 만년필, 이런 것들이요.
직장인, 엄마, 아내, 자식, 수행해야 하는 역할이 많아질수록 자기 자신에게 집중할 시간과 비용이 줄어듭니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것들을 즐길 시간을 잠깐 마련하면 나머지 역할을 수행할 에너지도 충전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요즘은 밀가루를 줄여보려는 강한 의지로 한동안 레몬케이크를 먹지 않고 있었습니다. 어제 이 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고 예전 일기를 열어보다가 다시 레몬케이크를 몇 개 주문했습니다. 3년 전만 해도 이 케이크가 2천7백 원이었나 본데 지금은 3천5백 원이 되었네요.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주말 새벽인데요. 주말에는 새벽기상이 더 어렵습니다. 오늘 주말은 어제 받은 레몬케이크를 먹을 생각에 목표 시간에 반짝 눈을 떴어요. 그게 뭐라고 잠이 홀딱 깨나 싶어 웃기긴 하지만 그 덕을 톡톡히 봅니다. 아주 좋아하는 작은 것을 하나 떠올리고 즐겨보세요. 기대 이상으로 생활이 윤택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