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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춘 Apr 17. 2023

아들이 게임을 시작하면 나는 이어폰을 끼지.

가끔은 그대를 외면하고 싶어요.

집에서 이어폰을 끼기 시작한 건 아들이 진상을 부리기 시작한 네 살 무렵이었다.

징징대며 요구하는 걸 들어주지 않기로 했다면 아이가 체념할 때까지 화내지 않고 그대로 둘 수 있는 돌 심장이 되어야 한다.

맨 정신으로는 그게 어렵기 때문에 이어폰을 끼고 징징이를 원격 차단했다.


잠시 아이를 내버려둬야 하는데 참기 힘들 때는 이어폰을 끼고 기다리라는 소아청소년과 선생님의 강의를 어디선가 듣고부터였다.

효과는 좋았다. 불안과 울화로 두근대는 심장이 일단 가라앉고 아들과 독립된 캡슐로 분리될 수 있다.


요즘은 뭔가를 들어달라고 징징대는 일은 없지만 새로운 이유로 이어폰필요하다.

게임하면서 폭군이 될 때다.


게임에 지거나, 상대방이 비겁한 방법을 거나 하면 아들은 다른 인격인 듯 생전 처음 보는 분노를 뿜어낸다.


저게 혹시 분노 조절 장애로 발전하는 게 아닐까 걱정도 해봤다. 게임 프로그래머인 제부와 상의한 결과 자신은 대학생 때도 그렇게 화를 내다가 친구와 싸운 적도 있다며 정상이라고 말해주었다.


그 둘을 다 정상으로 보는 게 맞는지까지 생각할 체력은 없어서 그냥 안심하기로 했다.

대신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해 그 게임 시간 동안 변성기 쇳소리로 성질을 부리는 아들 목소리를 이어폰으로 차단하고 있다.


가끔 나만 살자고 하는 짓은 아닐까 불안하지만 그 자리에서 제지해 봐야 좋을 일이 없다는 걸 알고 있다.

차라리 나중에 흥분이 가라앉고 기분 좋을 때 감정컨트롤에 대해 말해주는 게 낫다고 생각하고 그 순간을 회피한다.


주변을 신경 쓰면서 게임할 나이가 되면 이어폰을 쓸 일이 없으려나? 또 다른 이유로 이어폰을 써야 하려나?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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