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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춘 Apr 15. 2023

하루 두 문제, 저녁마다 아빠와 수학 푸는 아들의 성장

feat. 아빠의 노력

오은영 선생님이 그랬다.

아들을 키우면서 단 한 번도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지 않았다고.

자신도 사람인지라 폭발할 뻔한 적이 수두룩했지만 그 순간마다 다른 방으로 들어가 꾹꾹 참았다고.


나도 그것만은 지키려고 노력한다.

화가 나서 버럭 지를 때가 없지 않지만 혼은 내더라도 화는 내지 않으려고.


남편에게도 그 얘기를 꾸준히 하며 함께 노력하기를 권한다. 고맙게도 남편은 내 얘기에 자주 수긍해 준다.

가끔은 무섭게 화를 내 버릴 때도 있지만 그래도 대체로 함께 잘 지켜내고 있다.


아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남편이 저녁마다 수학을 봐준다.

학원은 다니기 싫다고 해서 그럼 하루에 아빠와 30분씩만 공부를 하자고 했었다.


자기 자식 가르치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 중 하나가 아닐까.

그 30분간 얼마나 번뇌가 일었겠는가.

아빠는 속이 터지고 아들은 우는 날들도 있었지만 결국은 둘 사이 균형이 생겼고, 이제 평화로운 날들이 더 많아졌다.


사실 평화의 가장 큰 이유는 학습의 양을 줄인 것이기도 하다. 아들의 상태를 파악한 아빠는 얘는 하루에 딱 두 문제만 풀어야 평화가 유지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욕심을 버렸다.


하기 싫어서 머리로 상모를 돌리는 날은 융통성 있게 패스하기도 하고, 금방 가르쳐 준 것을 멍한 표정으로 모른다고 하는 아들에게 화를 내지 않기 위해 심호흡을 하는 남편의 모습은 기립박수를 쳐 줘야 할 만큼 발전적이었다.


그리고 엊그제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나는 회식이 있어서 늦게 들어온 날이었다. 나 없을 때 두 남자는 수학 수업을 진행했다.

이미 배운 부분인데도 이해하지 못하는 문제가 나오자 아들이 말했다.


"나 이거 한번 확실하게 이해해 봐야겠어. 앞에서부터 한번 봐야겠어."

남편은 자기 귀를 의심했다고 한다. 단 한 번도 그런 의지를 비춘 적이 없었다.


잠시 후,

아무리 읽어봐도 이해할 수 없었던 아들은 성질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동안 수련이 된 남편은 아들에게 '자상한' 말투로 제안했다.

"아빠가 도와줄까? 모르는 거 물어봐."

흥분한 아들에게 아빠의 말은 들리지 않는다.


책상을 쾅쾅 치며 분을 못 이기더니

"나 안 해. 내일 할 거야!"

소리치고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고 한다.


그 순간 남편은 미쳐 돌아버릴 것 같은 자신을 누르고 또 눌렀다고 한다.

몸에서 사리 나오는 순간이다.


어차피 그렇게 터진 날은 더 이상 공부는 어렵다고 판단한 남편은 화를 참으로 아들에게 말했다.

"준아, 이제 그만하고 나와서 카스텔라 먹자."


잠시 후, 진정한 아들이 방에서 나왔다.

놀랍게도 거실에서 풀고 있던 수학 책을 식탁으로 옮겨와 자리에 앉았다.


"아니이~ 아빠, 이게 이렇게 돼야 되는데 왜 안 되는 거야, 도저히 모르겠어!"

퉁퉁거리긴 했지만 아빠에게 안 풀리는 부분을 물어보는 아들. 상당히 고무적이다.


남편은 아들의 변화에 희열을 느끼며 모르는 문제를 정성껏 알려주었고, 아들은 이해할 수 있었다.

평화롭게 공부를 마무리한 두 남자는 행복을 느끼며 카스텔라를 나눠 먹었다고 한다.


나는 이 얘기를 그 어떤 성장 드라마보다 뜻깊게 들었다.

결국 분노가 폭발하긴 했어도 스스로 이해해 보겠다고 말한 아들도 기특했지만 무엇보다 박수를 보내고 싶었던 것 남편의 대처였다.


남편이 방으로 들어가 버린 아들을 붙잡고 화를 내 버렸다면 이런 행복한 결말은 맞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아들은 그날의 기억이 눈물과 원망으로 남았을 것이다.


답답했지만 건강하게 감정을 정리하고 학습을 달성한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던 건 남편의 성숙한 태도 덕분이었다.


물론 아들은 다음 주에도 수학을 하기 싫어하는 날이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 모르는 것을 파고들어 정복한 경험을 맛봤으니 그것만으로도 한 걸음 성장한 거다.


그 성장은,

책이라고는 부동산 서적만 읽던 과거를 청산하고 아들의 사춘기를 맞아 육아책을 읽으며, 분노로 소용돌이치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스스로를 다스렸던 남편의 노력과 사랑이 일궈낸 성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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