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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춘 Apr 19. 2023

아들에게 주의할 일을 말해줄 때.

입장바꿔 생각해.

지난 주말, 스마트폰에 포켓몬고 게임을 처음으로 깐 아들은 음을 뺏겨 버렸다. 정신을 매우 못 차리고 있는 듯하다.


이동할 때 포켓몬을 잡아야 해서 폰을 고 다닌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듣고 더럭 겁이 났다. 길에서 폰을 보고 걷는 건 너무 위험하니까 그러지 말라고 했다.

"집에서만 잡으면 안 될까?"

그는 시원스럽게 대답해주지 않았다.

내가 생각해도 말이 안 된다. 집에서만 잡으라니, 뭐가 있어야 잡지. 그럴 놈이면 애초부터 게임을 안 했겠지.


그러고 나니 좀 후회가 됐다. 옛날일이 생각났다.




내가 중학생일 때 즈음일 것이다.

학원에서 집에 돌아오는 길은 늘 정해져 있었는데 어느 날 친구들과 새로운 길을 알게 되었다. 동네 큰 골목에서 벗어나 약간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면 주택가를 벗어난 한적한 길이 있었다. 산 밑 길이라 나무 그늘도 있고, 새소리도 나고 아주 예쁘고 아늑해서 그 길을 발견한 우리는 기분이 좋았다.


집에 돌아와 부모님에게도 그런 길이 있음을 알려드리고 싶어 신나게 말을 꺼냈다.

"거기, 인빌라 위로 올라가면 산길 있는 거 알아? 그 길 너무 예쁘다."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엄마와 아빠가 흠칫 놀라며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런 길로 다니지 마! 위험해. 산길이고 사람도 없는데!"


예상밖의 반응에 놀랐고, 그 순간 아차 싶었다.

"말하지 말걸."


그 뒤로도 나는 부모님 말을 듣지 않고 종종 친구들과 그 길로 다녔다.

그런데 그 길을 들어설 때마다 두려웠던 건 낯선 사람들이 아니라 부모님이었다. 혹시라도 그쪽 길로 다닌걸 부모님이 알게 될까 봐 걱정스러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해도 나는 말 안 듣고 한동안 그 길로 다니긴 했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님이 먼저 그 길이 예쁘다는 내 말에 공감해 주고, 그 후에 그래도 그 길은 너무 한적하고 혹시라도 나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니 다니지 말도록 해라, 하고 말했다면 최소한 사람이 너무 없는 시간은 피하는 주의 정도는 기울였을 것 같기도 하다.




포켓몬고 게임도 그렇다.

어찌해도 아들은 길에서 그 게임을 할 것이다.

집에서만 포켓몬을 잡으라는 비 현실적인 제안 대신 어떤 길에서는 주의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이 위험 요소를 줄이는데 효과적라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그래서 작전을 바꿨다.

그게 시간을 정해놓고 할 수 있는 게임이 아니라는 건 인정.

하교길 중, 인도가 있는 길을 콕 집어서, 그 길에서만 할 것, 길을 건널 때는 절대 하지 말 것, 우리 마트에서 올라오는 길은 인도고, 동사무소 맞은편 길에서는 하지 말 것.


이미 잔소리가 너무 길어져서 다 듣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알겠다는 답을 받았다. 나름대로 열심히 듣고 그림까지 그리면서 이 길은 안되는 거냐고 묻는 모습에 감동도 받았다.

효과가 있어야 할 텐데.

그래도 얘기해 놓으면 한번이라도 내말을 떠올리긴 하겠지.


아들을 상대하는 전략은 짧고 굵어야 하는데 요번엔 조금 늘져서 아쉽다.

꼭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마음에 딱 와닿는 방식으로 알려줘야지.


Pray instead of worry
걱정대신 기도를...
요즘 내 다이어리 머리에 늘 쓰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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