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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춘 May 15. 2023

집에가면 샤워해야 된다는 말은 집에가서 합시다.

행복한 순간에 불행을 예고해 주지 말아요.

친구 남편이 이런다고 한다.


아이들과 놀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아직까지 흥분이 가시지 않은 아이에게 남편이 말한다.


"집에 가면 바로 샤워해야 돼!"


샤워를 싫어하는 아이들은 벌써 샤워물에 맞은 듯 게 식는다.


"왜 하기 싫은 걸 미리 말해서 기분을 상하게 하는 걸까?"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다.

우리 집에서...



출처) 처갓집 양념치킨 공식 인스타그램

일요일 오후.

아들은 기다렸던 TV 시리즈를 보기 위해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최근 역주행을 타며 유행한다는 처갓집 양념통닭, 순살 와락 간장 치킨을 주문해 놓고 신이 나서 엉덩이 들썩고 있던 찰나였다.


"너, 이번주는 수련회 갔다 오고 놀러 갔다 오느라고 수학 문제 풀기 안 했어. 내일부터는 빼먹지 말고 하자. 오래 걸리지 않으니까 낮에 해."


남편의 말투는 따스하고 다정했지만 아들의 흥분을 가라앉히기엔 충분한 찬물이 되었다.




왜 불행을 예고해 주는 걸까?

이게 아빠들의 특징인지, 성별과 상관없는 개인의 성향인지는 잘 모르겠다.

일단 친구 남편과 내 남편 둘의 행동에서는 관찰되었다.


가장 행복할 때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건 복수 수법 같은데...

설마 너무 신나 있는 아이들을 보면 할 일을 하지 않은 철없음에 심통이 나는 걸까?


어차피 샤워나 수학문제  풀기 같은 것들은 미리 말해준다고 효율이 좋아지지 않는다.

하기 싫은 마음만 더해질 뿐이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자.

주말에 동해바다로 여행을 떠났다고 치자.

푸르른 강릉 바다색을 바라보며 아름다운 커피숍에서 향기로운 커피를 마신다.

오전 커피 타임이 끝난 후 바닷가를 산책하고 가까운 횟집에서 회를 먹으며 소주를 한잔 걸친다.


세상 부러울 것 없는 그 순간,

다음 주 월요일에 출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더구나 10시에 상무님 보고가 있다. 워낙 까다로운 프로젝트라서 상무님의 질문에 대답하려면 진땀을 빼야 한다.


그다음부터 강릉의 바다색도, 커피도, 회와 소주도 맹숭맹숭해진다.


그걸 생각하는 동안 내 몸은 바다에 와 있지만 머리는 상무님 방에 가있고, 나는 주말 이틀간 상무님 보고를 마음에 담는다. 이도저도 아닌 시간이 되어 버린다.




아이도 똑같다.

어차피 해야 할 샤워, 풀어야 할 수학문제다.

어른이라면 미리 생각하면서 아이디어라도 짜낼 수 있지, 아이의 미션들은 미리 골똘히 생각할 필요가 없다.


샤워는 집에 들어간 후에 하고 말해주고

수학은 풀 시간이 임박했을때 말해주는게 전략적이다.


불행을 예고해  주지 말자.

행복한 순간을 맘껏 즐겨야 싫은 일을 받아들일 여유도 생긴다.

싫은 일을 싫어할 시간을 최소화하자.


딱 해야 할 상황이 닥쳤을 때,

화내지 않고 짧게 말해야 내 말대로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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