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워낙 술이 세서, 많이 마셔도 크게 티가 나지 않았는데요. 말을 거의 하지 않고 바로 잠자리에 드는 날은 정말 많이 드신 날이라는 건 알수 있었습니다.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아빠가 걱정이 되었습니다. 원래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니 엄마도 그저 좀 줄이라고 할 뿐이었는데, 나는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닌지 매일 걱정이 되었습니다.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나? 고민거리가 있나? 혹시 잘렸나? 무슨 보증을 서거나 빚을 진 걸까?
드라마에서 보면 밖에서 큰일이 생겼을 때 아빠들이 늘 술을 먹고 들어오던데, 이렇게 술을 자주 먹는 건 필시 무슨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짙어졌습니다.
어느 날, 작정을 하고 한번 물어봤어요.
“아빠, 매일 왜 그렇게 술을 마시는 거야? 무슨 고민 있는 거 아냐? 말 못 하는 거 뭐 그런 거 있어?”
내 얼굴이 심각했는지 아빠가 바로 답을 주었습니다.
“어, 일이 끝나고 나면 배가 아주 탁 고파. 그럼 요기하려고 어디 들어가는데 빈속에 쏘주를 한잔 쫘악 들이켜면 아주 발가락 끝까지 짜릿짜릿해. 그게 엄청나게 좋아.”
아, 짜릿짜릿하다는 말에 아빠의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절대 거짓말이 아니었어요. 나는 단박에 걱정을 멈출 수 있었습니다.
아주 나중에 내가 회사를 다니면서 매일 저녁 술을 먹는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업무가 끝나고 나면 회사 앞 건물 2층 맥주집에 모여서 술을 마셨습니다. 먼저 끝난 사람들이 창가 쪽에 자리 잡고 있다가 늦게 나오는 동료가 퇴근하는 모습이 보이면 바로 전화로 부르거나 뛰어가 잡아와서 같이 먹는 화목한 날들이 이어졌죠.
별일 없어도 일을 마치고 집에 그냥 가는 날은 허전했습니다. 집에 가는 길에 작별인사를 하다가도 누구 한 명이 맥주 한 잔 할까? 하면 못 이기는 척 따라붙는 재미가 있었거든요.
물론 대학교 때도 친구들과 어울려 허구한 날 술을 마셨지만 직장 동료와의 술자리는 조금 달랐습니다. 힘든 일도 털어놓고, 하소연도하고, 상사 욕도 해야 하고, 누구누구 원망도 해야 하고 술 마실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으니까요.
요즘은 워라밸이 중요해지기도 했고 체력도 따라주지 않아 술을 거의 먹지 않는데요. 하지만 아주 가끔 기회가 되면 동료들과 술자리를 갖습니다. 피곤한데도 한잔 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맛이 달콤할 때쯤, 옛날 아빠의 ‘짜릿짜릿한 쏘주 한잔’이 생각나 배시시 웃음이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