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아버지에게 주어진 여건 안에서 최선을 다했다. 나에게 그 어떤 잔소리도 하지 않고, 삶을 정성껏 사는 법을 보여주었다.
콘테이너를 싣는 트레일러 운전석 뒷자리는 꽤 넓어서 멀리 이동하는 기사들은 그곳에서 숙박을 해결하기도 합니다. 어릴 때 몇 번 아빠의 트레일러에 타 본 적이 있습니다. 다리를 쭉 펴고 한 바퀴 뒹굴 만큼 넓은 운전석 뒷 공간은 늘 어수선했습니다. 추운 날 차 안에서 밤을 보내야 할 때를 대비해서 가지고 다니던 이불더미, 출장 중에 사용하는 생필품들, 그리고 수북한 책들이 있었습니다.
핸드폰도 넷플릭스도 없던 그 시절에 차 안에서 혼자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던 아빠에게 책은 유일한 쉴 거리였습니다. 전업 운전자는 근무시간 내내 동료가 없습니다. 식사도, 휴식도, 숙박도 대부분 혼자 해결해야 합니다.
그 시절 많은 우리의 부모님들이 그러했듯이 아빠는 공부를 오래 할 수 없었습니다. 열두 살에 어머니와 둘이 서울에 올라온 아빠는 고등학교를 마치지 못하고 스무 살이 되기 전부터 운전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랬던 건지, 독서가 아빠 취향에 맞았던 것인지는 모르지만 아빠는 언제나 책을 끼고 살았습니다. 특별한 공부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다양한 분야의 책을 취미 삼아 읽었던 것 같습니다. 아빠가 읽던 책들은 문학작품뿐 아니라 처세서, 역사서, 과학도서까지 광범위했으니까요.
배움이 깊지 않아도 오랜 시간 책을 읽으면 책근육이 붙고 문해력이 깊어진다는 것을 저는 아빠를 보고 알수 있었습니다.
나의 독서 이력도 아빠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아마도 매월 말 경 이었을 거예요. 한 달에 한 번씩 아빠는 그달에 발간되는 만화잡지를 사 왔습니다. 전화번호부만큼 두꺼운 월간 만화잡지의 제목은'보물섬'이었어요.
아빠의 손에 들린 서점 비닐봉지에 까치나 요정핑크가 비친 것을 발견하면 늘 환호를 질렀습니다.
결정적 순간에 장면이 멈춘 연속극은 하루, 길어야 일주일만 기다리면 되잖아요. 월간 만화는 끊긴 이야기를 이어서 읽으려면 한 달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러니 아빠 손에서 한달만에 보물섬을 발견한 날 얼마나 기뻤겠어요. 바로 달려들어 봉지를 빼앗아 읽고싶었지만 그럴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엄마가 먼저 읽어야 했거든요.
아직도 만화를 좋아하는 우리 엄마는 아빠가 들고 들어온 만화책을 가장 먼저 차지하는 권력자였습니다. 가끔 심하게 궁금한 작품이 있으면 그것 한편만 나 먼저 보면 안 되냐고 건의해도 '가만있어봐!'라며 손사래를 치고는 다 읽고 나서야 넘겨줬다니까요.
오락실에서 동전 놓고 목을 빼며 기다리는 아이처럼, 엎드려 책을 읽는 엄마 옆에서 조바심을 내며 기다리다가 엄마가 보고 싶은 만큼 보고 나면 내가 받아서 읽었습니다. 나보다 읽는 속도가 느렸던 어린 동생은 그 다음 순서였고요.
지금 생각하면 엄마가 좀 너무했던 것 같지만 그런 재미에 만화책 보는 일이 더 가치 있게 받아들여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만화책을 아무리 오래 봐도 집안에서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으니까요.
나중에 책을 많이 읽게 하기 위한 전처리 과정으로 만화를 보여준 것이 아니라, 만화책 자체를 즐길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던 우리 집, 아빠가 사다 주신 만화책을 엄마랑 제가 투닥거리면서 먼저 보겠다고 한 그 분위기 때문에 만화 보는 일이 더 즐거웠던 것 같습니다.
지금 내가 내 아들에게 흥미로운 만화책을 잔뜩 안겨주는 것은 아들에게도 행복했던 나의 날들 같은 기억이 남기를 바라기 때문일 겁니다.
아빠에게 독서는 무엇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취미와 재미 그 자체였습니다. 아빠는 내게 다양한 책들을 추천해 줬지만 읽었는지 확인하지 않았고, 어떤 종류의 책도 내가 원하는 대로 읽게 뒀습니다. 그래서 무조건적인 재밌거리로 딸들에게 만화책도 매달 안겨준 것이겠죠.
목적 없이 순수하게 책을 즐기고 독서에서 휴식을 찾는 모습, 책이란 그저 즐기는 것일 뿐이고, 그 안에서 쾌락마저도 얻을 수 있다는 개념을 아빠에게서 물려받았습니다.
힘든 시절 공부를 할수 없어 아쉬웠다면, 아무 걱정 없이 공부만 하면 되는 자식세대에게 잔소리를 할 만도 한데요. 아빠는 한 번도 공부가 쉬운 것이라고 말 한 적이 없었습니다. 내 성적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책상에 앉아있으면 슬쩍 다가와서 '공부가, 그게 무지하게 힘든 거야. 아유, 머리 아프지.'라며 어깨를 툭툭치고 지나갈 뿐이었습니다.
철이 들어 그 말에 가슴이 시렸던 것은 아빠가 원하는 학업을 마치지 못했던 것을 알고부터였겠죠.
아빠는 아빠에게 주어진 여건 안에서 늘 최선을 다했습니다. 나에게 그 어떤 잔소리도 하지 않고, 삶을 정성껏 사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