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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춘 Oct 07. 2023

스도쿠와 내 친구 성목이

스도쿠를 선물해 준 친구



구독하지도 않았는데 매일 어린이 신문이 들어온다. 신문 구독자가 적어서일까 이런저런 신문사의 신문을 한 군데서 보급한다.


어린이 신문 맨 뒷장에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스도쿠 게임이 실려있다.

나는 매일 일삼아 공짜 신문에 실린 스도쿠를 풀어낸다. 퇴근 후 씻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도 아, 이거 풀고 자야지 하며 식탁 앞에 앉을 만큼 스도쿠를 좋아한다.


구멍 뚫린 칸에 숫자들이 맞춰 들어가고 마지막 남은 대여섯 개는 생각하지 않아도 슝슝 쓸 수 있을 때 희열을 느낀다.


언제부터 스도쿠를 좋아했더라?

한가한 휴일 아침에 어제치 빈칸을 다 채우고 멍하니 앉아있다가 성목이가 생각났다.




대학 동기 성목이는 키가 크고 잘 웃었다.

여자 동기들과도 잘 어울렸고, 친절하고 순했다.

통학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집에 가는 시간이 맞으면 여러 명이 버스 맨 뒷좌석에 조로록 앉아서 가는 내내 수다를 떨었다.


성목이는 스도쿠를 좋아했다.

가끔 수첩만 한 스도쿠 퀴즈 책을 자주 들고 와서 한 장씩 찢어서 친구들에게 나눠 줬다.


"뭐야, 아저씨처럼 어디서 이딴 걸 자꾸 사와. 너나 풀어, 골치 아파."


어처구니없어하며 구박을 했지만 우리는 종종 볼펜을 꺼내 들고 각자 받은 스도쿠의 숫자를 맞추며 재밌어했다.


굵은 테두리 안의 빈 칸에 중복되는 숫자가 없도록 맞춰 쓰고, 뭐가 들어갈지 모르는 칸에는 후보가 될 수 있는 숫자를 네 귀퉁이에 작게 적어두었다가 다른 칸의 숫자가 확정되면 후보 숫자들 중 답이 아닌 것들을 지워낸다.

이런 방법을 성목이가 상세하게 알려주었다.


이상하게 한 번도 성목이와 밥을 먹은 기억이 없다. 각자 학교 내에서 따로 생활하다가 집에 갈 때 만나면 그때만 버스 안에서 수다를 떨며 성목이가 주는 퀴즈 잡지를 풀었다.


딱 한번 성목이의 교회에 가서 공연하는 걸 본 적이 있다. 친구 정연이가 성목이와 많이 친해서 친구들을 다 데리고 성목이 교회에 갔었다. 성목이는 성가대였나본데 즐거운 노래를 하며 약간의 연기를 하는 어설픈 모습이 너무 웃겨서 다 같이 엄청 웃었던 기억이 난다.




성목이는 곧 군대갔다.

동기 남자들이 대부분 1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가서 여자 동기들은 남자 동기들을 거의 잊어버리고 살았다.


나는 주말에 뷔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아침 10시쯤 출근해서 저녁 9시까지 일을 하는 노동 강도가 높고 보수도 높은 자리였다.

예식장을 함께 운영하는 곳이고 돌잔치, 칠순잔치가 주말마다 벌어지는 곳이라 정신이 없었다.


일하던 중 전화를 받았다.

친구 경이였다.


"성목이가 군대에서 세상을 떠났대. 허리 쪽에 무슨 암이 있었대."


친구들이 모여서 장례식장에 간다고 했다.






나는 장례식에 가지 못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에 가겠다는 말을 못 했다. 밀려들어오는 손님들을 안내하며 중간중간 울었다.


나중에 친구들에게 전해 들었다.


성목이는 자주 허리가 아프다는 말을 했었다. 버스에서도 허리가 아프다고 한 적이 있었던 것 같다. 버스를 오래 타고 가다 보면 우리는 모두 허리가 아팠으니 다들 나도 그렇다고 했었다.


군대에서는 훈련을 받으며 허리가 많이 아파서 군인 병원에 갔다고 했다. 거기서 정밀 검진을 받으라는 말을 듣고 바깥으로 나와 암 치료를 하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친구가 죽었어요. 장례식에 가야 해요.'

지금이라면 그렇게 말하고 조퇴를 했겠지만 스무살을 갓 넘긴 나는 그럴 생각을 못했다.


드라마를 보다가 순간순간 현명하게 판단하고 행동에 옮기는 어린 주인공들을 보면 비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스무 살에 저렇게 후회 없을 판단을 한다고? 난 왜 저렇게 못했을까?


아쉬움이 없는 인생은 없고, 지난 일은 그때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래도 가끔 조금 더 성숙했더라면 좋았을 거라고 후회되는 일들 중 하나는, 그날 성목이의 장례식에 가지 못했던 일이다.

일을 중단하고 집에 가서 검정 옷으로 갈아입고 지인의 장례식에 가는 건 서른이 넘어서야 익숙한 일이 되었다.


그 후 십 년이 훨씬 지나서 또 한 명의 친구를 잃어버렸다.

그때는 더 상황이 좋지 않아 장례식에 참석하기 정말 힘든 때였다.

그래도 하던 일을 접고, 마음을 추스르며 장례식에 갔다. 가서 한동안 아주 친하게 지냈던 친구의 사진을 보며 향을 올리고 왔다.





이제는 마음이 아프지는 않지만 스도쿠를 풀 때 가끔 생각이 난다.

스쿨버스 안에서 고개를 숙이고 스도쿠를 풀던 친구들과, 아저씨처럼 퀴즈책을 사들고 와서 유머란에 있는 유치한 유머를 읽어주던 성목이도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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