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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춘 Nov 26. 2023

#1. 오늘, 뜻밖의 행운

전화위복

벌써 7일째다.

찢어질듯한 인후통도 한차례 병원 약을 받아먹고 나았다. 그런데 이어지는 코막힘 때문에 밤에 몇 번이나 깼다. 코로 숨을 쉴 수 없어 입으로 쉬자니 목이 바삭하게 말라 다 나은 인후통이 다시 도질 지경이다. 감기가 낫고도 을 기간인데 도통 떨어지질 않아서 병원에 한 번 더 가기로 했다.


늘 다니던 내과에 가려고 잠깐 시간을 내서 나왔다. 건물 앞에 차를 대고 3층 내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병원 문 앞이 깜깜하다.


'목요일 오후 휴진'

무슨 목요일에 뜬금없이 휴진이지? 그동안 다니면서도 목요일에 와 본 적은 없었나 보다.


다른 병원이라도 갔다 와야겠어서 주변을 검색했다.

5백 미터쯤 윗길로 걸어올라 가면 이비인후과가 있단다. 거기라도 갔다 오기로 하고 차는 내과 앞에 세워 둔 채로 언덕길을 올라갔다. 찬바람이 쌩쌩 불어서 실낱같이 쉬어지던 숨도 안 쉬어지고 코를 손으로 꼭 쥔 것처럼 숨을 전혀 쉴 수가 없다. 입으로 숨을 쉬니 또 목이 아프다.


이비인후과는 5층이다.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는데 내 뒤로 네 명이 더 이어 선다.


엘리베이터에는 크나큰 오류가 있다.

가장 먼저 탄 사람은 가장 구석으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같이 탄 사람들이 한 번에 내리면 먼저 탄 사람이 나중에 내리게 된다.


아니나 다를까 다들 코감기가 걸린 건지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탄 사람들이 모조리 5층에서 내린다.

얼음판에서 선두를 따라가는 펭귄들처럼 처럼 쪼르륵 줄을 맞춰 엘리베이터 바로 앞 이비인후과 문으로 들어간다. 그대로 맨 앞사람부터 프런트 데스크에 줄을 서 접수를 시작한다. 그러니 가장 먼저 건물에 도착해서 엘리베이터를 탄 나는 다섯 명 중 가장 늦게 등록을 하게 되었다.


역시 엘리베이터 순서는 불공평하다. 엘리베이터도 공중화장실 한 줄 서기처럼 순서대로 먼저 탄 사람이 문 앞에 서고 그 뒤를 이어 달팽이처럼 동그랗게 줄을 선다면 좋지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가 중간층에 내리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건 불가능하겠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아무튼 우리 다섯 명 말고도 앞에 열명쯤 더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회사에 잠깐 나갔다 오겠다고 했는데 이건 보아하니 30분도 더 기다려야 할 판이다. 그래도 이렇게 숨 못 쉬는 채로 오늘밤을 또 맞을 수는 없어 그냥 기다리기로 한다.


축농증이요, 몸살이요, 코로나 검사하러 왔어요.

앞선 사람들 증상에 귀를 기울인다. 코로나 진료를 받는 사람이 바로 내 앞이 아니라서 조금 안심을 한다.

회사에 코로나 확진자가 하도 많아서 그런가 보다 하지만 그래도 병원에 와서 감염이 되면 억울할 것 같아서 마스크를 더 밀착해서 쓰고 주머니에 손을 넣고 절대로 꺼내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내 순서가 돌아왔다.

젊디 젊은 의사 선생님이 아주 친절하시다.

젓가락같이 생긴 내시경으로 코 안을 들여다보는데 최첨단 시설을 갖춘, 새로 지은 병원이라 그런지 모니터가 양 방향으로 세 개나 있다.

42인치는 족히 넘어 뵈는 커다란 모니터 두 대가 각각 다른 방향으로 내 콧속을 확대해서 보여주는데 그리 유쾌한 장면은 아니다. 더구나 콧 속은 한대 얻어터진 것처럼 시뻘겋다. 신기한 건 내시경이 들어갈 자리도 빼곡할 만큼 양쪽 살이 부어서 거의 닿을 듯하다. 저러니 공기가 안 통했나 보다. 젓가락같은 내시경이 목을 뚫고 나오는건 아닐까 의심될 만큼 깊이 찔러보고나서 의사선생님이 진단을 내렸다.


"아유, 감기가 나은 후에 후유증으로 축농증이 생기는 경우가 있는데 환자분이 그 경우시네요. 목도 아직 부어 계시고, 여러모로 많이 불편하셨겠는데요."

"네에~~ 잠을 거의 못 잤어요."

친절한 의사 선생님 말씀에 감동이라도 한 것처럼 주책맞게 맞장구를 크게도 쳤다.


"항생제 일주일 드시고, 약 더 드셔야 돼요. 다음 주에 나오셔서 효과가 없으면 사진도 찍어보고 약 바꿔야 하니까 꼭 오세요."


왜 축농증 생각을 못했나 모르겠다. 아들이 비염 때문에 숨을 잘 못 쉬면 축농증이 될까 봐 바로 병원에 데리고 가면서 내 코에는 무심했다.


이틀 내내 잠을 못 잤는데 진작 가볼걸 그랬다고 궁시렁 대다보니 오늘 간 것이 행운이었다. 어제 갔더라면 내과가 문을 닫지 않았을 것이고 그곳에서는 젓가락 같은 내시경도 없었으니 선생님이 항생제를 지어주긴 하셨더라도 축농증이 진행된 것을 몰랐을 수도 있겠다.

사람 마음이 간사해서 똑같은 항생제를 먹으면서도 너 축농증이야 라는 말을 듣고 먹으면 잘 안 나아도 그런가 보다 하는데 그냥 감기약을 다시 지어주면 반짝 효과가 없을 때 끊임없이 의심하고 불안해한다.


축농증이라는 말을 들었으니 집에 와서 그에 걸맞는 코 세정도 했다. 어제도 코가 막혔고, 그제도 막혔으니까 그때부터 진작 했더라면 좀 덜 답답했을 텐데 그것 또한 어리석다.

항생제를 두 번 먹고 나니 아직 불편하기는 해도 코로 숨은 쉬어진다. 뜨거운 국물을 먹으면서 삼키는 순간과 코로 숨을 들이쉬어야 하는 순간이 딱 겹쳐질 때 갑자기 숨이 막혀서 기침을 해 대는 일도 없다.


코로 숨 쉬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오늘이여.

생각해 보면 감사할 일이 천지인데 매 순간 모르고 넘어간다. 오늘은 내과 문을 닫아주신 원장님에게 감사를.


*** 지난주 목요일의 일기, 오늘 일요일에는 항생제를 며칠 먹고 조금 더 편안하게 숨 쉬며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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