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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춘 Nov 29. 2023

#4. 냄새가 돌아왔다!

범사에 감사

"환자분, 냄새 나세요?"

"아니요. 냄새 전혀 안나요! 맛도 못 느껴요!"


코 CT를 찍더니 후각 신경 부분이 염증으로 가득한데 냄새를 맡을 수는 있냐는 의사의 말이 오히려 반가웠다.  그냥 감기 때문에 둔해진 게 아니라 원인이 있긴 있구나. 후각 신경이 돌아오는 약을 준다니 매우 고마웠다.


감기 뒤끝에 냄새를 맡지 못하게 된건 한 열흘쯤 된다. 냄새가 나지 않으면 생활의 즐거움이 매우 많이 줄어든다.


우선 음식맛이 없다. 단맛, 짠맛, 신맛, 매운맛 등 기능적인 맛은 느껴지지만 그 이상은 모른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된장국을 먹는 건지, 소금 탄 물을 먹는 건지 눈감고 먹으면 알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 밥을 먹는 행위가 끼니를 때우는 것 뿐, 아무런 재미가 없는 것이다.


커피와 차는 그 의미를 잃는다.

커피에서 향을 빼면 그저 한약을 들이켜는 것처럼 쓰디쓸 뿐이다. 아무런 즐거움을 주지 않는 쓴 음료를 마시며 카페인 섭취를 할 필요가 없으니 그냥 안 먹고 만다. 뜨거운 차도 맹물과 같아서 마실 필요가 없다.

한우 일 등급을 구워 먹어도 고기 냄새가 나지 않으니 국에 담긴 고기와 다를 바가 없다.


지난 주말에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나왔는데 바로 앞 길에서 아스팔트에 페인트 공사를 하고 있었다. 대규모 공사라 온 거리에 페인트 냄새가 가득 아들은 구역질을 했는데 나는 전혀 느낄 수 없이 평온했다. 악취를 맡지 못하니 그 순간은 좋았지만 결국 위험한 냄새도 감지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작년 코로나를 앓고난 후 몇 주간 냄새를 맡지 못하는 시기를 보냈었다. 후각은 감각 중 가장 홀대했던 신경인데 이것이 삶의 풍요로움에 큰 기여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살았.



어제 아침 밥상에 앉아 밥을 한 숟가락 뜨는데 희미하게 밥 냄새가 느껴졌다. 밥그릇에 코를 들이대니 밥 냄새가 옅게나마 난다. 육개장의 매캐한 고춧가루 향을 느꼈을 때 기쁨의 소리를 질렀다.

이비인후과 약을 며칠간 먹었더니 효과가 있나 보다.


출근해서는 거의 열흘 만에 커피를 마셨다. 아직 백 퍼센트 돌아온 것은 아니지만 커피 향이 약하게 느껴졌다. 이래야 카페인을 마시는 보람이 있는 거지. 핸드크림을 바른 손을 코에 대고 한껏 들이마시니 예의 그 풀냄새가 가슴 가득하다. 행복했다.




오전 내내 커피 한 잔이 즐거웠다가 문득 또 다른 냄새를 맡게 됐다.

일주일 이상 먹은 항생제 냄새가 그제서야 느껴졌다. 어른들이 말하는 마이신 냄새.

왁스 냄새처럼 묘하게 싫지 않은 쌔한 약 냄새.


모처럼 맡게 된 약냄새는 금세 나를 13년 전으로 데리고 갔다.



2010년 여름, 출산했던 병원 복도에서 서성이던 불안감이 그대로 몸을 휘감는다. 하루 사이에 두 차례 수술을 하고, 산모들과 멀리 떨어진 병실에 입원을 했다. 산모 병동이 아니라서 신생아실과도 멀리 있던 병실. 아기를 보려면 엘리베이터로 이동해서 한참을 걸어가야 했다.


중환자실에 있는 동안 초유를 먹이지 못해서 아기가 튼튼하지 못할까 봐 걱정이 됐다. 일반 병실로 이동한 후,드디어 초유가 나왔는데 이걸 바로 물리고 싶었다. 신생아에게 초유 물리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따로 젖을 짜가지고 오라고 했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다. 예정일보다 몇 주 일찍 급히 출산을 한 탓에 새로 사놓은 유축기를 씻지도 못하고 그대로 들고 왔기 때문이다. 신생아실에서는 소독 해 줄 수 없다고 했다. 산모 병동이라면 뭔가가 있었을 텐데 수술환자 병동에서 나의 초유 걱정은 팔자 편한 불평이었다.


발을 동동 구르며 잠 못자는 나를 안타까워하며 초유가 뭐가 중요하냐, 니 회복이 더 중요하다는 남편에게 괜히 신경질을 냈다.

지금 생각하니 참 어리석어서 웃음이 난다. 출산 후 대출혈로 자궁을 절제한 사실을 아기가 백일이 돼서야 알았다. 산모가 충격을 받아 산우 우울증이 심해질 수 있으니 말하지 말라는 의사의 조언이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산모임에도 수술환자 병동에 입원한 거였는데 난 전혀 몰랐다. 그곳에 산모들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걸까.


오밤중에 소독하지 못한 유축기를 들고 병원 복도에 서 있을 때, 그때도 마이신 냄새가 났다. 병원에 있는 내내 목으로 올라오는 마이신 냄새는 역겹지 않았다. 그냥 병원 냄새, 더 이상 염증이 생기지 않고 아기와 함께 잘 퇴원하기 위해서 열심히 몸속으로 넣어줬던 약 냄새.


신기하게도 그 후 가끔 항생제를 먹게 될 때면 꼭 그 똑같은 냄새가 목으로 올라왔다. 몇 년이 지나서도 그 냄새가 나는 날은 여지없이 나는 오밤중 그 복도에 서 있게 된다.


음악은 우리를 그 음악을 듣던 그 시절로 데리고 간다고 한다. 어떤 강렬한 냄새는 음악처럼 그 냄새가 둘러싸고 있던 그 기억으로 데리고 간다. 좋은 기억은 아니지만 나쁜 기억도 아니다. 그 시절이 있어서 오랫동안 아기와 나 자신이 더 소중했다.




나는 기독교 신자는 아니지만 '범사에 감사하라'는 성경구절을 아주 좋아한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이렇게 짧고도 강렬한 삶의 기준이 되는 말이 또 있을까 싶었다.


늘 생각해야 하지만 매일 잊어버린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코로 숨을 쉴 수 없어서 밤에 몇 번이나 깼으면서 이제 숨 쉴만하다고 냄새 못 맡는 것을 불평하고 있으니 말이다.



일상의 소중함.

그때 잘 살아나 아기가 청소년이 된 지금까지 행복하게 함께 지낼 수 있음에 감사하고, 지난주보다 코막힘이 완화되어 입 다물고 타이핑을 할 수 있는 지금에 감사하고, 냄새가 나다가 나지 않다가 해서 조바심이 나지만 곧 또 좋아지리라는 염원을 하며 치료제를 만든 의술에 감사하고. 그렇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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