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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춘 Nov 30. 2023

#5. 어릴 때 듣고 콕 박힌 어른의 말

하찮은 말들이 누군가에게는 삶의 크고 작은 지침이 된다.

"엄마, 이거 먹으면 안 되는 거 아니야? 고단백질 이래."

아들이 내민 건 요플레 프로틴.

"그게 어때서? 좋은 건데?"

"엄마가 단백질 파우더 안 좋다고 했잖아. 그래서 친구가 초코맛 단백질 한 모금 먹어보랬는데 안 먹었어. 먹고 싶었는데 참았어."

"엄마가 언제 안 좋다고 했어?"

"그때, 형아가 단백질 파우더 먹어서 입원했다고 했잖아."


아, 그걸 언제 또 들었대?

한참 전에 조카가 갑자기 간 수치가 올라가 병원에 입원을 한 적이 있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근육을 키우기 위해 단백질 파우더를 많이 먹은 것이 원인 중 하나일 수도 있다는 얘기를 어른들끼리 하는 걸 들었다. 다른 조카도 통풍에 걸렸는데 그 또한 단백질 파우더를 먹지 말아야 한다는 말도 들었나 보다.


"그건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 거야. 요플레 가끔 먹는 건 괜찮고, 단백질 파우더 한 모금 먹어보는 건 괜찮아. 너무 많이 오래 먹으면 좋지 않은 거야."

"아, 그런 거야? 그럼 초코맛 먹어볼걸."


내 얘기를 기억하고 있는 것이 기특하기도 했고, 저런 걱정하는 성향이 날 닮은 것 같아서 안타깝기도 했다.

아, 저런 거 오래 기억하는 인생 피곤한데. 어쩔 수 없지 뭐, 이런 엄마를 둔 네 팔자지.


그러고 보면 어릴 때 들은 이야기들 중에는 아주 잠깐 듣고 지나갔어도 이유 없이 오래 기억되는 것들이 있다. 어떤 말들은 일생에 걸쳐 연상을 반복하며 평생 잊히지 않기도 한다.






중학교 때 물상 선생님은 아주 시크한 여자분이었다. 아마도 삼십 대 중반쯤 되는 나이였을 것이다. 늘 완벽하게 화장한 얼굴이었고, 시니컬한 말들을 재밌게 하는 사람이었다.


눈이 많이 오던 어느 날, 멋들어진 무스탕을 입 물상 선생님이 팔짱을 낀 채 몸서리를 치며 교실에 들어오시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유, 이렇게 추운데 니들은 점심시간에 그 얇은 교복을 입고 눈 위에 드러눕드라. 러브스토리 찍고 있드라. 난 눈송이 한 개가 목에 닿는 것도 싫던데. 젊어서 좋겠다."


눈이 쌓이면 점심시간에 여기저기 눈밭에서 구르고 장난치는 애들이 많아서 특별해 보이지도 않았는데, 저 타박하듯 농담하는 선생님 말투에 정말 부러움이 묻어있는 듯하여 그 말이 영 잊히지 않았다.


어른이 된 후 눈이 오면 가끔 물상선생님이 생각났다. 눈 위에 누울 용기는 없지만 차가운 눈송이를 만져보고 싶어서 장갑을 벗고 손가락으로 눈송이에 손을 댈 때면 물상선생님 목소리가 들린다. '러브스토리 찍고 있드라... 젊어서 좋겠다.'

지금나보다 열 살은 어렸을 물상 선생님은 내 머릿속에서는 언제나 어른이다.



한편 중 3 때 가정 선생님과도 특별한 기억이 있다. 가정 시간이어서 그랬는지 빨래와 살림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었다. 그중 자신의 스타킹 빠는 방식에 대해 수다 떨 듯 들려주었던 이야기는  십여 년 후 나의 빨래 인생에 큰 지침이 되었다.


"스타킹 빠는 게 제일 귀찮아. 세탁기 돌리니도 어렵고 널기도 귀찮고. 나는 스승의 날 같은 때 스타킹 선물을 많이 받아서 스타킹이 많거든. 래서 구멍 난 스타킹 한 개를 벽에다 걸어놔. 그리고 신고 난 스타킹을 그 걸어놓은 스타킹 안에 계속 집어넣는 거야. 그게 많이 모여서 스타킹 주머니가 두툼해지면 주이를 묶어가지고 세탁기에 넣어버려. 그럼 세탁 끝나고 고대로 주머니를 들어서 빨래집게에 집어서 말려. 그럼 한 개씩 널고 갤 필요도 없다. 다 마르고 나면 그 주머니에서 싹 꺼내서 또 신으면 돼."


나는 그 아이디어가 너무 참신해서 나중에 어른이 되어 스타킹을 많이 사게 되면 저 방법을 꼭 이용하리라고 결심했었다.


그리고 그 결심을 결혼하고 나서 실천했다. 지금도 우리 집 옷방에는 한쪽 옷걸이에 느슨한 판타롱 스타킹 한쪽이 입을 벌린 채 집게에 걸려있다. 산타클로스를 기다리는 양말처럼. 신고 난 스타킹을 바로 빨지 않고 그 스타킹 주머니에 넣어버린다. 주머니가 반쯤 차면 입구를  꼭 묵어서 세탁기에 넣고 돌린다. 어차피 스타킹을 스타킹 안에 넣어서 돌리니까 물도 비누도 잘 빠진다.


나의 이 방법을 우리 엄마와 이모는 질색을 한다.

"아니, 그게 제대로 빨리냐? 안에 먼지도 안 털어지고, 비눗기도  빠지겄다!"

아무리 잔소리를 들어도 나는 이 방법은 늘 고수한다. 가정 선생님이니 알려주신 전문가의 방법이다. 좀 덜 빨리면 어떤가. 이렇게 편한데.


이 가정선생님이 꽂아주신 지침은 스타킹 빠는 법뿐이 아니었다.  당시 워킹맘이었던 선생님은 새벽에 일찍 일어나 혼자서 공부하는 것이 취미라고 했다. 아주 일찍 잠자리에 들어 새벽 3시면 이불을 박차고 일어난다는 것이다. 가족들이 깨기 전에 커피를 한잔 마시며 공부하는 그 시간이 너무 행복하다고, 정말 행복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 말을 들었던 그때 나도 혼자서 공부하는 시간을 바로 가졌더라면 내 인생이 좀 더 업그레이드되었겠지만 그럴 생각이 없었던 나는 그때도, 엄마가 되면 저렇게 해야겠다는 엉뚱한 다짐을 했었다.


그 후 엄마가 되어 시간이 없어지자 나는 정말로 새벽시간을 종종 이용하게 되었다. 어쩌면 그럴 결심을 했던 건, 그때, 열여섯에 들었던 삼십 대 가정선생님의 새벽이야기가 씨앗이 되었던 건지도 모른다.






어릴 적 기억은 아늑해서 좋은 기분을 불러들이지만 모든 기억이 그런 것은 아니다. 어떤 선생님은 내가 모르는 나의 단점을 큰 소리로 말해서 잊지 못할 작은 트라우마를 주기도 했다.


국민학교 6학년 담임은 연세가 지긋한 여자분이었는데 편애가 심했다. 

선생님이 좋아하던 지윤이가 리코더로 할아버지의 시계를 불렀을 때 '지윤이는 어쩜 그렇게 어려운걸 잘 부니, 못하는 게 없니'하며 머리를 안아주었다. 그리고 다음번에 리코더 자유연주곡발표에서 공부 못하는 희서가 할아버지의 시계를 불다가 망쳤을 때 머리를 툭 치며 "니가 할아버지의 시계를 불어? 학교종이나 제대로 불어라."라고 말했다. 그날 무표정하게 자리로 돌아가서 희서의 표정을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그분은 내게도 그랬었다. 발표할 때 떨려서 안경을 자주 만지던 내게 "넌 뭐 그렇게 산만하고 정신이 없냐, 정신없어서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라며 볼펜으로 내 안경을 툭툭 두드렸다. 심한 욕을 먹은 것도 아닌데 그 장면은 늘 치욕스러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부모님의 지나가는 말들도 알게 모르게 생활의 지침이 된다. 내가 듣지 못할 줄 알고 동네 아줌마들한테 "큰딸이라 그런가 믿음직해." 하던 엄마의 말이 평생 듬직한 딸을 추구하고자 했던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그러가하면 어렸을 땐 허구한 날 엄마한테 혼이 나서 혼나는 게 익숙했으면서도 가끔 엄마가 머리를 쿡 쥐어박으며 무시하듯 했던 말들은 굴욕적인 느낌을 동반해서 오래 잊히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아들에게 굴욕스러울 표현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이런 기억들을 남겨주고 싶지 않아서일 것이다.





이제는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웬만해서는 생각이 바뀌지 않는 딱딱한 나이가 되었다. 남의 말이 말랑하게 쏙 박히는 건 어릴 때, 신입 때, 뭔가를 새로 배울 때가 아닐까 싶다.

그러니 오히려 내 말들이 누군가에게 의도치 않게 영향을 주고 있을지도 모르는 때가 된 것이다. 후배와 아들에게 좋은 지침이 될 것까지는 욕심내지 못해도 내 말이 나쁜 기억으로 박히지는 않아야 할 텐데 말이다. 


단백질 가루가 좋지 않다는 지나가는 말을 철석같이 들어주는 걱정 많은  아이에게 나의 하찮은 말들이 혹시 콕 박히더라도 좋은 연상의 재료가 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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