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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춘 Dec 01. 2023

#6. 손녀와 할머니는 방역이 안돼.

세상 누가 저렇게 자기 몸 생각 안 하고 다른 이를 걱정하며 안아줄까.



최신유행에 뒤지지 않고 조카가 독감에 걸렸다.


우리 집은 우리 엄마와 이모 두 분이 아이 둘을 돌봐주는 구조다.

지금은 애들이 많이 커서 손 갈 일이 거의 없지만, 두 아이가 일 년 간격으로 태어났을 때 엄마에게 두 아기를 맡길 수 없어 혼자 계시는 이모가 출동한 것이다.


자연스럽게 한 아이씩 담당하게 됐고 엄마는 큰애인 내 아들을, 이모는 작은 애인 동생의 딸을 주로 돌봤다. 태어나면서부터 키우다 보니 감사하게도 서로 애착이 강렬했고, 아이들은 각자의 할머니와 짝이 되어 있다.


특히 애교쟁이 조카는 나긋나긋한 내 이모와 죽이 잘 맞고, 무뚝뚝한 내 아들은 역시 무뚝뚝한 우리 엄마와 궁합이 맞는다.


조카는 당연히 이모할머니인 우리 이모를 친할머니나 외할머니보다 더 가깝게 생각한다.

자식이 없는 이모 젖먹이 때부터 모든 낮시간을 함께했던 이 아이에게 특별한 애틋함 있다.


그 모습이 고맙고 아름답지만 보는 사람을 답답하게 할 때도 많다. 우선, 아이가 남긴 음식을 이모는 늘 먹어버린다. 제발 이제 애들이 컸으니 남긴 음식 먹지 말라고 해도 소용이 없다.

말리는 것도 지쳐서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내 버려두는데 아이에게 감기 기운이 있을 때도 남긴 밥을 먹으니 그게 문제다.


이번엔 다른 것도 아니고 독감이다.

아침밥을 먹을 때 보니 이모도 이번만은 조카가 남긴 음식을 먹지 않는다. 하지만 깨작거리는 아이가 안타까워 옆에 딱 붙어있고, 일부러 격리하려고 넣어놓은 방에 노심초사하며 들락날락하니 혹시라도 이모가 옮을 까봐 걱정이 된다.


"이모, 윤이 옆에 가지 마. 말도 시키지 마. 애들은 금방 나아. 이모랑 엄마가 걸리면 오래가고 큰일 나."

"옆에 안 가아."

"뭘 옆에 안가. 밥 먹을 때도 딱 붙어 있으면서."

"괜찮아. 옛날에 역병이 징그럽게 돌 때도 밥 해주는 사람은 안 걸렸단다."

뜬금없는 소리에 헛웃음이 나서 피식 웃어버리고 출근을 했다.


그러고 보니 이모는 관절염 때문에 면역 억제제까지 먹는데도 감기에 자주 걸리지 않는다. 워낙 면역력이 약한 우리 엄마가 툭하면 감기에 걸려 오래가서 문제인데, 잔병을 여럿 가지고 있는 이모는 감기에만은 강하다. 특별히 감기 바이러스에 강한 체질일 수도 있다. 아니면 이모 말대로 주로 애들 밥을 해주니까 전염이 안되는 걸까?


예전에 사랑하는 사이에는 키스를 해도 감기에 옮지 않는다는 농담이 있었다. 그래서 키스한 후에 감기에 옮으면 그건 사랑하지 않는 거라는 어이없는 말을 믿지도 않으면서 실제로 기분이 상한 연인들도 있었다.

정말 좋은 호르몬 때문에 좋은 기분으로 좋은 사람을 대할 때는 병에 잘 걸리지 않는 걸까.


늘 가족 중 누군가가 아플 때 철저히 분리하려는 나에게 "괜찮아. 왜 중병환자를 만들어."라고 하는 이모때문에 울화통이 터지지만 제일 많이 옮는 건 바로 나다.

어쩌면 괜찮아. 감기 안 걸려.라고 하는 이모의 말과 믿음이 탄탄한 긍정의 면역을 만드는 건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 믿음이 매번 위력을 발휘하지는 못해서 작년에는 코로나에 걸린 조카에게서 가장 먼저 전염이 되어버린 게 이모 이긴 했지만 말이다.


할머니들의 손주 사랑은 가끔 무모해서 젊은이들의 한숨을 부다. 아픈 애 옆에서 괜찮다며 전염될 짓을 하고 있는 노인들을 보면 울그락 불그락 화가 나기도 하지만 세상 누가 저렇게 자기 몸 생각 안 하고 다른 이를 걱정하며 안아줄까. 부모인 나도 옮을까 봐 마스크를 절대 벗지 않는데, 할머니가 되면 나도 그럴까.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오늘 저녁에도 두 할머니들은 싹 다 소독해서 괜찮다며 아이들이 나간 자리에서 달그락달그락 살림을 하고 있다. 애들이 아프다니까 덩달아 머리가 띵한 것 같은 젊은 나는 왠지 이번에도 엄마와 이모가 아이들이 끌고 들어온 독감을 잘 피해 갈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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