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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춘 Dec 05. 2023

#10. 작고 작은 기분 좋은 순간들

0.1초의 기분 좋음은 내가 원해야 느낄 수 있다.

어제 점심에 병원 다녀오는 길에 아트박스에 들러 스탬프 패드를 샀다. 아니, 사실은 스탬프 패드를 사려고 아트박스를 찾았다.

다이어리를 구입하고 스탬프를 받았는데, 집에 패드가 없어서 인주로 사용하고 있었다. 검은색 잉크를 찍고 싶었다.

아주 저렴한 가격에 아트박스 로고가 찍힌 아이들용 스탬프 패드였다.


아침에 책상에 앉아 플래너를 정리하려고 가방을 열다가 패드를 샀다는 사실을 떠올랐다. 가슴이 두근 뛰었다. '아, 나 이거 샀지. 아침에 찍어봐야지.'


뚜껑에 찍힌 하얀 아트박스 오리 두 마리가 귀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미안하게도 가리고 싶었다.

나의 예쁘고 쓸데없는 잡동사니가 가득 들어있는 서랍 안에서 스티커를 꺼냈다. 뚜껑에 적당히 맞춰 붙였더니 오리 두 마리가 싹 가려진다. 다시 한번 기분이 살랑 좋았다.




하루 중 기분 좋은 순간을 얼마나 느끼며 살까.

절대적으로 기분 좋은 일이 생길 확률은 너무 적다. 일상이 반복될수록, 생활이 바쁠수록 기분 좋음에 무뎌진다.


작고 작지만 기분 좋은 순간들은 느끼려고 마음먹으면 그게 또 한도 끝도 없다.


내 아들은 아침에 엄마가 좀 더 자,라고 말하는 걸 너무 좋아한다.

누군들 그렇지 않겠는가. 무거운 눈꺼풀을 올렸는데 십분 더 자도 되는 상황, 누군가가 가슴케의 이불을 꼭 눌러주면서 '조금 더 자도 돼'라고 말해주는 순간. 아들이 그 순간을 너무 좋아해서 가끔 그렇게 해준다.


얼마 전에는 혼자서 일어나라고 알람 시계를 사줬다. 아직까지 혼자 시계를 끄고 일어나지는 못하지만 연습 중이다. 금요일 저녁 알람 시계를 6시 30분에 맞추겠다고 했다.

"왜? 학교 가는 날도 7시에 맞추면서 왜 6시 반에 맞춰?"

"누르고 더 자려고"

배시시 웃으면서 하는 말이 어이가 없어서 한참 웃었다. 삐비비비 울리는 시계를 누르고 다시 따듯한 이불로 폭 들어가는 순간이 너무 좋아서 필요한 시간보다 일찍 알람을 맞춘단다. 그러니까 다시 자는 게 하고 싶어서 일찍 일어나려는 행위. 그것도 그 아이의 아침 루틴 중 하나로 인정해 줘야 할까.

그렇게 해서 주말 아침 가장 먼저 기분 좋은 순간을 느낀다면 그것도 좋다.


아침에 생각차를 탈 때 기분이 좋다. 가족들이 자고 있을 때 책상에 앉아 플래너를 펼치는 순간이 기분 좋다. 택배가 집 앞에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았을 때도 좋다. 립밤을 열심히 발라 줘서 다음 날 아침 각질이 하나도 일어나지 않은 입술은 어제 나의 부지런함이 주는 기분 좋은 느낌이다. 플래너에 적어놓은 오늘 할 일에 하나씩 체크를 할 때, 그 옆에 조그만 스티커를 붙일 때 두근 하는 0.1초의 기분 좋음은 내가 원해야 느낄 수 있다.


어차피 흘러가는 하루, 나 혼자 아는 기분 좋은 찰나에 잠깐씩 정차하면 기분좋은 하루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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