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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춘 Dec 04. 2023

#9. 지금쯤 엄마를 원망하고 있겠지?

어린 시절에는 엄마가 원망스러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겨울에 마당에 나가서 놀고 싶었다. 겨울에 치마를 입고 싶었다. 베란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놀이터에는 몇몇 아이들이 보였다. 거기 나가서 신나게 그네도 타고 놀고 싶은데 감기 걸린다고 못 나가게 하는 엄마가 악당처럼 미웠다.


그런가 하면 엄마는 여름에 머리를 절대로 못 게 했다. 양쪽 앞 머리만 우아하게 살짝 묶고 아랫 머리는 내려뜨리고 싶은데 꼭 모두 꽁꽁 싸매 정수리까지 올려 묶어서, 눈이 바짝 치켜 올라간 것처럼 만들었다. 덥고 땀 난다는 이유다.


치켜 올라간 눈이 싫어서 양쪽 관자놀이 머리를 조금씩 빼 버리면 엄마는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쥐어박으며 다시 묶어줬다.


지금 생각해 보니 좀 심한 엄마다. 애가 눈 찢어져 보이는  싫어하면 살짝 잡아서 머리카락 힘만 좀 빼주면 될 것을.

하긴, 왜 그러는지 이유를 물어본 적도 없으니 그것까지 헤아릴 의도가 80년대의 엄마에게는 0.001%도 없었을 것이다.


요즘 내 아들을 돌봐주면서, 할머니로서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는 엄마를 보고 있자면 헛웃음이 나온다. 저렇게 자비롭고 이해심이 많은 사람이고? 나한테는 왜 그랬대.



그때는 내가 원하는 그 크고 불가능한 꿈들, 여름에 머리를 풀고, 겨울에 치마를 입고 밖에 나가서 노는 그 행위를 못하게 하는 엄마가 절대로 내 마음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내가 이렇게 원한다는 것을 알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면서 '그래, 네가 그렇게도 하고 싶던 것들이구나. 엄마가 몰랐다. 여름에 머리를 풀어주마. 겨울이지만 나가서 놀고 오너라, 치마 입고.' 그럴 줄 알았다.


그래서 가끔 김 서린 창문에 내 마음을 적어봤지만 엄마는 그런 걸 읽는 사람이 아니다.


너무 터무니없그런 한심한 생각들을 할 때가 열 살 남짓 이었으니, 지금 중학생인 나의 아들은 그때의 나보다는 훨씬 성숙할 것이다.

하지만 그도 그 나름대로의 이유로 자주 내가 원망스러울 것이다.




아마도 오늘이 그런 날이 아닐까.

아들은 지난주 독감에 걸려 주말을 집에서 보내고 오늘 학교에 갔다. 침부터 머리가 아프다는 둥, 학교에 가서 설사를 할까 봐 못 가겠다는 둥 결석을 해야 하는 이유를 계속 제했다.

하지만 이제 학교에 가도 된다는 의사 선생님 소견서도 있고, 열도 나지 않아 학교는 꼭 가야 한다고 말해 주었다.


다분히 뺀질거리는 성향이 있는 나의 아들은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결석을 하고 싶어 한다. 올해 두 번이나 약간의 감기로 학교에 가지 않았는데 이제는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서 오늘은 봐주지 않았다.


체념하고 교복을 입 늘어진 어깨의 처량함이란. 마치 불합리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신데렐라처럼 억울함이 잔뜩 얹어져 있다.


자신의 건강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엄마가, 아프다는 나를 왜 이렇게 모질게 대하는 건지, 엄마가 변한 거라고 생각하나보다.

아침에는 그 뒤통수에 울화가 치밀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웃기고 귀엽다.


이제는 그 얘기를 해줘야겠다.

슬슬 버텨야 할 일들이 늘어가는 나이라고 말이다. 많이 아프면 물론 쉬어야겠지만 조금 힘든 것들을 견딜 줄 아는 법을 익혀야 다고.


아들을 설득할 때 자주 하는 비유가 있다.

키가 크고 뼈가 튼튼하게 하기 위해 부모는 자식에게 고기와 채소 같은 좋은 음식을 먹인다. 물론 자식은 햄버거와 초콜릿을 좋아하고, 그것들을 먹을 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짓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표정만을 보기 위해 자식에서 햄버거만 먹이는 것은 제대로 된 부모가 아니다. 싫다고 해도 좋은 음식을 먹여야 할 의무가 있다.


싫지만 꼭 해야 하는 일들도 마찬가지다. 학교에 가는 일, 기본적인 공부를 하는 일, 심부름과 집안일, 가기 싫은 가족 행사와 인사치레 등. 이런 것들이 정신을 키우는, 싫어도 먹어야 하 채소, 잡곡과 같은 거라고 말이다.


자식이 부모 마음을 다 알기는 어렵다. 부모라고 다 옳은 것도 아니고 죽을때까지 그 마음은 모르고 떠날 수도 있다. 그래도 굳이 내가 왜 너를 힘들게 하는지, 어떤 가치 때문인지는 말해주고 싶다.

어떤 경우에는 부모의 욕심으로 자식에게 하지 않아도 될 것들이 강요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유를 말해줘야 반박하는 생각도 들을수 있다.


엄마가 틀렸다면 엄마를 논리로 이겨먹는 아들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논리가 타당하다면 나도 고집부리지 않고 정당하게 인정하는 부모가 되기를 바란다.


오늘은 살면서 버텨야 할 일들은 자주 생기고, 그걸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도 부모가 해야 할 일라고 말해봐야지.

오늘 힘들지만 종례까지 다 마치고 돌아오면 칭찬도 많이 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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