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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춘 Dec 06. 2023

#11. 되게 젊은 45살

가능성의 이야기

내가 네 나이면 뭐든 하겠다.라는 어르신들의 말씀이 속 모르는 답답한 소리가 아니라, 아직 내 손에 들려있는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기운이 난다.





아버님 제사에 시누이 세분이 모였다.

식사를 하며 큰 형님이 동생들 나이를 물어보셨다.

"둘째가 여섯이지? 셋째가 셋?" 모두 쉰이 넘으셨고, 큰 형님은 환갑을 바라보신다.

"올케는 몇 살이지?"

"저는 마흔다섯이요."

내게 질문했던 셋째 형님 눈이 동그래졌다.

"와, 되게 젊다."


결혼할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그렇게 됐니? 라든가, 벌써 네 나이가 마흔이 훌쩍 넘었냐? 라든가. 그런 반응을 기대했는데 예상밖의 상쾌한 말씀에 웃음이 터졌다.


"하하, 여기 있으니까 그렇게 되네요. 저 회사에서 세 번째로 나이 많은 여직원이거든요."

"그래서 그래. 난 복지관에서 어르신들이랑 있으니까 늘 젊다고 생각해."

복지관에서 어르신들 상대로 강의를 하시는 둘째 형님은 언제나 일터에서 가장 어린 사람이다. 그래서 자신이 나이 들었다는 생각을 자주 하지 않는다고 한다.


삶의 대부분의 시간에서 거칠 것이 없는 편인 우리 시어머니는 당신도 칠십 대 중반을 넘어섰으면서 복지관 할머니들이 나이 들어서 자신의 탁구 실력을 따라오지 못한다고 큰소리를 치신다.




나이는 상대적이다. 그 기준은 주변 사람들이기도 하지만 자기 마음이기도 하다.

언제부터인가 내가 부쩍 나이 들었다는 생각을 하며 살고 있다. 은퇴 준비를 해야 할 것 같고, 몸도 마음도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아무래도 40대 중반이면 노후를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해서일까. 회사에서도 진취적인 생각보다는 안위와 정리를 준비하곤 한다. 특히나 몸이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하면서 조금 무리하면 건강이 확 나빠지지는 않을까 걱정도 많았다.


느긋하게 앉아서 건강 걱정을 하고 있으면 여기저기 아픈 곳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리고 조금 더 아파지고 걱정은 새로운 걱정을 부른다. 그러면 안 아프던 곳도 슬슬 아파온다.

정기적인 검사를 하고, 불편한 곳이 생길 때 의사와 상담을 하면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실천이 어렵다. 사람은 매 순간 늙고 있고 그 시간을 사는 것뿐인데 흐르는 시간 중간에 몸을 멈춰놓고 늙어감을 감지하는 어리석은 짓들을 자주 한다.



언젠가 동네 빌라 단지에 화재가 발생한 적이 있었다. 규모가 꽤 큰 오래된 단지인데 내 친구 민이와 정이의 부모님이 그곳에 살고 계셨다. 맨 앞동 2층 베란다에서 불이 났고, 다행히 빨리 꺼져서 인명피해는 없었다. 베란다로 연기가 타고 올라가 윗집이 좀 그을린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 그을린 피해를 당한 윗집이 내 친구 중 한 명인 정이의 엄마가 살고 계시는 집이었다.


우리 동네는 오래된 작은 동네라 소문이 금방 돈다. 지금은 타지로 흩어져 살고 있는 친구들이 단톡방에서 자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민이가 정이에게 엄마 안부를 물었다.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너네 엄마네 밑에 집에서 불났대. 엄마 괜찮으셔?"

"어, 괜찮아. 엄마는 집에 없었대. 나중에 알았대."

"다행이네. 거기 할머니 할아버지 둘이 사는 덴데, 그 사람들도 집에 없었나 봐."

"우리 엄마 말로는 젊은 사람들 사는 집이라던데?"


나중에 알고 보니 불이 난 집의 주인은 60대 후반정도 되는 나이의 부부가 살고 있는 집이었다. 민이에게 그분들은 할머니 할아버지였고, 80대인 정이 엄마에게 그분들은 젊은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젊다 늙다는 기준은 자신이 생각하는 그 나이의 자기 자신인지도 모른다. 내 나이가 쉰이 넘으면 마흔이었던 시절이 창창하게 젊은 때였고, 거동하기 힘든 어르신들에게는 두 발로 잘 걸을 수 있는 칠십 대가 젊음이다.


내가 네 나이면 뭐든 하겠다.라는 어르신들의 말씀이 속 모르는 답답한 소리가 아니라, 아직 내 손에 들려있는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기운이 난다.


마흔다섯의 올케에게 '정말 젊다'라고 말하는 형님도, 아이들 다 키워놓고 이제 컴퓨터로 타자 연습을 시작하신다고 한다. 운동에 올인할 것이고, 과외 선생님으로 살기 위해 시간당 2만 원짜리 과외 수업 준비를 하루종일 열심히 하신단다.

어떤 나이 든 도전할 수 있고 그것이 상대적이든 절대적이든 자신을 젊다고 여기는 건 자신의 선택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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