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가 셋 있어요."
나는 홀어머니에 누나가 셋인 귀남이에게 시집을 갔다.
'누나 셋'이라는 상황에 대해 결혼 전에 조금 긴장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결혼하고 보니 '시누이 셋'이라는 단어의 압박감만큼 누나들의 존재가 부담스럽지 않았다. 다행히 형님들은 개인주의적인 성격이 강했다. 오히려 시시콜콜 다 참견을 해줘야 직성이 풀리는 집에서 자란 내 입장에서 볼 때 "이 집안은 좀 심하게 가족 간에 거리가 있구만. 왜 이렇게 안 모여?"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적당히 거리를 두고 챙겨주는 시누이들은 나와 어머니와의 관계에도 도움이 되었다.
이런 형님들의 존재가 특히 위안이 되는 날이 있다.
바로 명절날이다.
다양하고 새로운 퓨전 추석 음식들
첫 설날을 혼란 속에서 보내고, 어느덧 추석이 돌아왔다.
스멀스멀 명절 스트레스가 생기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명절 스트레스가 아니라 '어머니와 명절 음식 함께하기 스트레스'라고 하는것이 적절하겠다.
어머니는 추석이니 송편을 빚자고 하셨다. 보통 사다 드시는데 한번 만들어 보자신다. 그냥 사다 드시지 뭘또 며느리 들어왔다고 만드시나 싶기는 했지만 그래도 송편은 괜찮다.
내입으로 굳이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나는 송편을 무척 예쁘게 빚는 편이다. 송편 예쁘게 빚으면 예쁜애기 낳는다는 근거 없는 말이 어이없으면서도 가끔 미래의 미남 미녀 자식을 확보한 듯 우쭐하기도 했었다.
평소에 음식은 잘 못하지만 이번에 송편 빚는 솜씨는 한번 보여줄 참이었다. 어머니는 송편 속을 넣을 깨와 설탕, 쌀가루를 준비하셨다. 익반죽도 잘됐고, 속도 적절하고, 송편은 반죽만 잘되면 망할 일이 없으니 예쁘게 만들기만 하면 된다.
"이삐게도 맹그네~."
역시, 어머니에게 칭찬도 들었고, 남편도 내 송편에 감탄했다. 칭찬에 신바람이 나서 더욱 심혈을 기울여 모양을 잡았다. 반달모양의 배가 통통한 하얀 송편이 조로록 늘어서 찜통으로 들어가길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다행히 떡을 좋아하셔서 떡 찌는 것은 무리가 없었다.
"불 꺼라잉~."
떡이 다 쪄졌다. 불을 끄고, 뚜껑을 열어보았다.
그런데, 뭔가가 잘못됐다.
송편은 온데간데 없고 납작한 개떡들이 솥단지 속에 나란히 들어있었다.
"어머니, 송편이 왜 이래요? 왜 이렇게 퍼졌어요?...... 어머니 이거 찹쌀이에요?!"
"찹쌀 넣었씨야~. 찹쌀로 해야 맛나제!"
실수가 아니었다. 멥쌀 송편은 딱딱해서 맛이 없다며 어머니는 송편을 100% 찹쌀로 만드신다고 했다.
송편에 찹쌀을 약간 넣으면 떡이 터지지 않는다는 생활 상식을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송편을 순전히 찹쌀로만 만들면 어떻게 되는지는 몰랐었다.
이번에 알았다. 만두만 해진다.
갸름한 반달 모양도, 통통하게 눌러놓은 송편 귀도 다 사라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깨 넣고 대충 누르기만 해도 똑같은 모양이 나왔을 것이다. 괜히 공들였다.
뭐...... 맛은 있었다.
다음 순서는 전 부치기였다.
어머니의 고구마전은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내가 고구마를 썰었다. 설날 어머니 방식을 파악했으므로 들통 단계에서 깨지지 않도록 최대한 도톰하게 썰어 부서지지 않은 채로 부칠 수 있었다.
이번에는 애호박 대신 고추부침을 하신단다.
"울 아들이 요것을 좋아해야~."
이쯤 되면 전을 많이 부쳐서 허리가 아프다거나 하는 것들은 문제로 인식되지 않는다. 그냥 이번에는 음식다운 음식이 나올 것인가에만 주목하게 된다.
동그랑땡 재료를 고추 속에 눌러 넣는 거겠지? 고추에 넣으면 괜찮겠네.
나는 어머니의 지시에 따라 고추 배를 가르고 씨를 빼고 있었다. 어머니는 이번에도 힘찬 칼질로 고기를 다지셨다.
"어머니~ 다진 고기를 사시죠. 힘드시게...... 어? 어머니 그거 무슨 고기예요?"
"나 국 안 낄이 먹어야~. 요것 쪼까 넣을라고."
"국거리로요? 질겨서 어떻게 먹어요?"
아, 이건 또 예상 못했다. 선물세트로 들어온 국거리를 쓸데가 없다고 고추속에 넣으신다고 한다.
이젠 슬슬 울화가 치밀었다.
이럴 때 내가 동그랑땡을 능숙하게 만들 수 있으면 좀 좋을까. 이 요리판을 리드하고 싶었지만 능력 부족이었다. 하긴 내가 잘 한들 내 말을 들어주실 것 같지도 않았다. 뭐좀 생각해서 해볼라 치면 벌써 뭔가를 저지르고 계신다. 단지 내가 아는 것은 동그랑땡은 다진 돼지고기를 넣는다는 것뿐이었다. 혹시 소고기를 넣는 집도 있겠지만, 그런 집도 질긴 국거리를 대충 다져 넣지는 않을 것 같았다.
고추 부침을 채울 속의 재료는 고기와 파, 계란 세 가지였다. 그냥 국거리 고기를 계란에 버무려 고추 속에 쑤셔 넣고 후라이팬에 지진 것이다.
이것들을 열심히 부쳐서 무엇을 하나 싶었다.
그런데 다 부치고 나서 먹어 보니 먹을 만은 했다. 참 신기하게도 간은 잘 맞추신다.
음식이라는 것이 어떤 틀을 벗어나도 간만 맞으면 먹을만하다는 것이 놀라웠다. 원효대사 해골물만큼이나 큰 깨달음을 얻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맛은 없었다.
놀랍게도 남편은 잘 먹었다. 효심인것인지 어머니 음식에 익숙한 것인지 분명치 않았지만 누군가는 먹으니 다행이다 싶었다.
놀라움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얼린 등심에 아무 양념도 하지 않고 바로 굽다가 거의 다 구워질 때 갑자기 꼬챙이를 꺼내서 구운 고기를 꿰기 시작하셨다.
그것은 '산적'이라고 했다.
"울 친정이 종갓집이라서 만날천날 제사를 지내고만 앉았어. 그때 나가 본 것이 있어서 요런 것을 안다!"
차라리 그때 아예 안 보셨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외에도 어머니의 지시에 따라 다양한 '퓨전 명절 음식'을 만들었다. 보고 있으면 이것이 무엇을 만들려는 것인지는 알겠는데 그 음식은 아니었다. 다하고 나니 헛웃음이 나왔다.
형님들의 도착으로 마무리되는 어머니 음식 퍼레이드
추석 당일 아침에는 차례를 지낸다.
물론 차례도 어머니 생각대로 듣도 보도 못한 절차로 치뤄졌다.
그렇지만 차례는 정말 집안마다 다르다고 하니 이건 이집안 방식이겠지.
조금 웃긴 해괴한 차례를 마치고, 아침상을 치우고 나니 점심에 시누이들 가족과 먹을 해물탕 거리를 꺼내셨다. 노량진에 새벽같이 가서 힘겹게 사 오신 해산물들이라 물이 너무 좋았다. 이 해산물들이 어머니의 음식 솜씨 아래 무참히 사그라 들것을 생각하니 조바심이 났다. 저 꽃게와 전복의 맛을 좋은 상태로 음미하고 싶었다. 차라리 그냥 찌면 좋겠는데 어머니는 이것저것 양념을 꺼내신다. 해물탕에 청국장을 넣겠다고 하셨다. 해물 청국장을 본적은 있지만 이런 방식은 아닐 것 같았다.
'나는 해물탕 못 끓이는데... 빨리 형님들 오셔야 되는데......'
"딩동"
드디어 형님들이 도착하셨다. 다행히 해물탕이 시작되기 전이었다.
나의 구세주, 우리 시누이들...
어머니 음식의 늪으로부터의 구원자들....
형님들이 능숙한 솜씨로 해물탕을 끓이시는 것을 도우며 내 마음에도 평화가 찾아왔다.
앞으로도 이 번뇌 가득한 음식들을 매년 할 생각을 하니 속이 갑갑하면서도, 내가 배워서 주도적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왜일까?
참, 시댁이란 이성적인 계산이 딱 떨어지지 않는 묘한 장소이다.
첫 명절에는 아침을 먹고 형님들이 도착하기 전에 나도 친정에 가지 못하는 것이 매우 억울하고 서러웠다. 다른 날 잘 모이지 않는 집이다 보니 명절에라도 얼굴을 보자는 암묵적인 약속인것 같았다. 몇해가 지나고 그 부분은 그렇게 하기로 체념하고 나니까, 형님들이 와서 정상적인 밥상을 같이 차리는데에서 묘한 위안을 얻게되었다. 인간은 역시 적응의 동물인가 보다. 전시 상황에는 평소에 당연시 하던 것들의 개념이 바뀌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닐까 생각했다.
어머니의 기상천외 음식 만들기는 십 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 나의 음식 솜씨도 늘지 않았고, 어머니의 고집도 줄어들지 않아 우리는 명절마다 이상한 요리 만들기를 계속하고 있다. 신개념 소갈비를 맛본 바로 이번 설날 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