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 남편의 말을 듣고 마음이 편했다. 요리를 비롯한 살림에 소질이 없는 나로서는 살림꾼 시어머니보다는 요리 못하시는 시어머니가 더 반가웠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고 보니 역시나 어머니는 당신 살림에 흥미가 없으셨고, 나의 살림에도 관여하지 않으셨다. 잔소리도 잘 안 하는 분이시라 살림살이에 대한 스트레스도 주지 않으셨다.
그러나 다 가질 수는 없는가 보다. 적당히 맛이 좀 없는 정도겠지,라고 생각했던 어머니의 음식 솜씨가 나에게 또 다른 고통을 안겨줄 줄은 그땐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그때는 잘 몰랐다.
시아버님은 우리가 결혼하겠다고 인사를 드리고 난 얼마 후, 암 진단을 받으셔서 바로 항암치료를 하셨더랬다. 그리고 첫 항암치료 후에 체력이 버티지 못하셨던 탓인지 '전해질 불균형'이라는 허망한 이유로 세상을 떠나셨다. 나는 아버님 얼굴을 딱 두 번밖에 뵙지 못했다. 첫인상이 좋으셨고,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셨던 아버님과 몇 마디 나누지도 못하고 이별을 해버렸다.
가끔, 장례식장에서 멀리 서있는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치미는 울음을 참던 남편의 얼굴이 생각날 때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다음 해에 우리가 결혼을 했으니, 결혼 직후 어머니는 남편을 잃은 지 일 년이 조금 넘은 시기이신지라 완전히 마음이 회복된 상태는 아니셨다.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어머니댁에 인사를 드리러 갔더니 지방에 사시는 이모님이 와 계셨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우리 부부를 어머니와 이모님, 형님들이 반갑게 맞아 주셨다.
인사를 드리고, 이것저것 잘 차려주신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연세가 조금 있으신 형님들의 반찬은 모두 맛있었다. 그래서 우리 시댁의 음식에 특별한 것이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었다.
그 후에 한 달에 한두 번씩 어머니를 찾아뵈었다. 어머니는 음식 만드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시고, 주로 외식을 하시는 편이라 이 또한 나에게 나쁘지 않았다. 가끔 집에서 밥을 먹을 때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어머니의 음식이 뭔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었다. 하지만 혼자 지내시다 보니 잘 차려 드시지 않아서, 아들 내외가 와도 대충 하시는 거겠지 생각하고 넘어갔던 것 같다.
처음 만난 고구마와 애호박전
어머니의 요리에 뭔가가 있다는 것을 인지한 것은 결혼하고 처음 맞는 명절, 설날 때부터였다.
명절 전날, 전 부칠 재료로 준비하신 것은 고구마와 애호박이었다. 나는 쾌재를 불렀다. 동그랑땡이나 빈대떡에 비하면 이건 식은 죽 먹기가 아닌가. 친정에서도 명절에 전을 많이 부치기 때문에 음식 장만을 많이 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없는 편이었고, 이 정도는 예쁘게 부쳐낼 자신이 있었다.
어머니는 고구마를 썰기 시작하셨다. 근력이 좋으시고 나보다 팔힘이 더 세셔서 무엇을 하시던 속도도 엄청 빠르시다. 제가 썰게요, 라는 하는 말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그런데, 고구마 써는 모습이 어째 좀 이상하다. 자고로 고구마전이란, 일정한 두께로 동글동글 고구마를 썰어 반죽을 묻혀 지져 내는 것 아니던가? 그런데 어머니는 강한 팔 힘으로, 떡국떡과 같은 어슷 썰기로, 취사병을 방불케 하는 굉장한 속도로 고구마를 썰고 계셨다. 모양은 엄청나게 제각각이었다.
전의 모양이야 집집마다 다르니 그런가 보다, 나도 잘 못하니까 어머니 하시는 대로 해야지, 하며 조신하게 바라보던 내가 고개를 갸우뚱하기 시작한 것은 다 썰어놓은 고구마를 들통에 넣고 물을 부으시는 모습을 보았을 때부터였다.
"어... 어머니 왜 고구마를......"
"이래야 빨리 익어야~. 고구마를 어느 세월에 다 익후고 앉었냐!"
어머니는 고구마가 튀김옷을 입고 후라이팬에서 천천히 익어가는 것을 기다릴 의사가 전혀 없으셨다. 들통에 물과 고구마를 넣고 한소끔 끓여서 대충 익고 나면, 건져서 튀김옷을 입혀 빠르게 부쳐내는 것이 어머니의 방식이었다. 이성적으로 볼때 나쁘지 않은 방법일 수 있다. 그러나 어머니의 현란한 칼질로 고구마는 제각각의 두께를 자랑하고 있었으며, 들통 안의 고구마들은 제 모양을 유지하지 못한 채 처참히 부서져갔다. 어머니는 체로 부서진 고구마들을 받쳐서 한 무더기씩 튀김 반죽 속으로 투척하셨다.
"...... 이거 다 부서져서 어떻게 부쳐요?"
"그냥 막 부쳐야~."
뭐 특별한 방법이 있는걸까 싶었는데 역시나 그냥 부치라는 어머니의 호탕한 사투리에 짜증이 스물스물 치밀었다. '미션 임파서블' 수준이었지만 결혼한지 두달도 안된 내 입장에서는 그냥 막 부치는 것 말고는 다른 수가 없었다.
일단 커다란 덩어리들을 부쳐내는 것은 할만했다. 어머니 말씀대로 고구마가 많이 익은 상태라 튀김옷만 익으면 금세 건져낼 수 있었다. 문제는 몇 대접은 되는 부스러기 고구마들이었다.
나는 퍼즐 맞추기를 하기 시작했다. 지옥에서 허우적 대듯이 튀김 반죽 속에 이리저리 박혀있는 고구마 조각들을 숟가락으로 건져내어, 후라이팬에 올리고, 지름 약 5cm의 동그란 모양으로 조립하기 시작했다. 집중력이 필요했다.
하다 보니 이것도 요령이 생겨서 숟가락 두 개를 이용하여 고구마 조각과 조각 사이의 간격을 최소화하며 익혀내는 내공도 갖추게 되었다.
고난이도의 고구마전 다음 순서는 애호박전이었다. 애호박이야 빨리 익을테니 들통에 넣고 찔리도 없고 한결 쉬울 것 같았다. 그러나 내가 고구마전과 사투를 벌이는 동안, 어머니는 또 눈 깜짝할 사이에 애호박을 아무런 규칙성 없이 썰어놓으셨다. 동그랗기는 했으나 굵기가 2mm부터 10mm 까지 제각각이었다. 그리고 말릴 새도 없이 애호박에 아무런 가루도 묻히지 않고 바로 튀김 반죽 속으로 상당량을 투입하셨다.
애호박에 밀가루를 입혀야 반죽과 떨어지지 않고 부쳐질텐데, 밀가루를 묻힐 생각은 아예없으셨던것 같았다. 애호박은 언제 썰었냐는 듯 반죽 속에서 모두 한 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심혈을 기울여 한 점 한 점 부쳤지만, 건져 올리면 바로바로 튀김옷이 애호박을 뱉어냈다.
다 부쳐놓고 나서 다시 입 벌린 튀김옷에 애호박을 집어넣어 고정시키기 시작했다. 최소한 한 개의 튀김옷에 한 점의 애호박이 들어가 있기는 해야 할 것 아닌가.
몇 시간에 걸쳐 전을 부쳤는데 산출물은 누더기가 된 고구마전과 조개처럼 입을 벌린 애호박전들이었다.
뭔지모를 패배감이 들었다.
설날 당일 시누이네 가족들이 모였다.
"야가 요것 부치니라고 죙일 서있었시야~. 직장 댕기니라고 힘든디..."
며느리의 공을 치하하고 싶으셨던 어머니는 가족 모두에게 이 전들을 내가 부쳤다고 자랑하셨다.
그 칭찬은 하나도 반갑지가 않았다.
'어머니이! 이거 어머니가 이렇게 엉망진창으로 하신 거잖아요오. 내가 그런 거 아니잖아요~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