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초에 급체를 한 적이 있었다. 나는 소화가 잘 되는 편이라 잘 체하지 않고 체해도 소화제를 먹으면 금방 낫는데 남편은 꼭 손을 따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손을 따야 검은 피가 나와서 소화가 쑥 된다는 주장이 너무 강렬해서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
남편은 내 엄지손가락에 실을 묶더니 바늘로 엄지손톱 뿌리 부근을 찌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너무 아프다. 우리 집에서는 체해도 손을 따지는 않는 편이라 언젠가 할머니가 한두 번 따주신 적이 있었는데 이렇게 아프지 않았던 것 같았다. 오랜만이라 그런가, 믿어보자 싶었는데 계속 아프기만 하고 피가 안 나왔다. 징그러워서 안 보려고 했는데 따는 꼴을 슬쩍 보아하니 시험지에 채점하는 듯한 손짓으로 바늘로 내 손톱 밑을 뜯어내듯 건들고 있는 것이 아마추어 티가 역력했다.
자꾸 찌르니까 피가 나오긴 하는데 종이에 베인 것처럼 스며 나오기만 했다.
"왜 피가 안 나와? 잘 따는 거 맞아? 많이 해봤어?"
"아니! 처음이야!"
아니, 이게 무슨....
너무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 경력 체크를 하지 않은 내 잘못이었다.
황당하고 아파서 짜증은 나는데 웃기기도 했다
당장 때려치우라고 하고 손가락에 묶은 실을 풀어버리고 정로환 당의정을 먹었다. 실도 제대로 못 묶어서 내가 묶다시피 했는데 왜 처음부터 눈치를 못 챘을까.
"매생이여~. 테레비서 그러드먼, 매생이가 겁나게 좋다고. 테레비서 다 갈쳐줘! 맛봐바."
기름 냄새의 정체는 매생이 전이었다.
그런데 두께가 족히 2cm는 넘어 보였다.
한입 베어 물었는데, 베어 물지 못했다. 매생이가 꽁꽁 엉켜 있는 상태로 기름에 구워졌는지 앞니로 자르기가 힘들었다. 가위로 한입 잘라 입에 넣고 한참을 씹고도 덩어리째 간신히 넘겼다.
그냥 매생이에 부침가루를 풀었는데 안 풀려서 구웠다고 하셨다. 요리과정을 설명하시면서 당신도 조금 웃으신다. 맛을 보셨으니 웃음도 나오시겠지.
언젠가 한 번은 역시 TV에서 도토리 묵이 좋다는 말을 듣고 묵가루를 사서 묵을 쑤어 놓으신 적이 있었다.
"묵이 좋당께 했든디 잘 안됐씨야~. 떠묵어. 호호호."
그것은 묵으로는 보이지 않는 순두부의 모양을 한 갈색 덩어리였다. 그것도 순두부를 끓이다가 숟가락으로 마구 휘저으면 덩어리가 거의 없이 계란국처럼 되는 뭐 그런 모양 말이다.
그냥 TV에서 묵이 좋다고 하면 묵가루 말고 묵을 사셨으면 좋겠다.
보통 요리를 못하는 사람들은 아주 간단한 음식을 해 먹거나,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고 한다거나 하는 방법으로 요리실력을 발전시킨다. 그러나 어머니는 자신에게 요리실력을 발전시킬 기회를 아예 주지 않으신다. 무조건 직진이다.
아마도 이런 성격 덕분에 없는 살림에 집도 사고 4남매를 잘 길러내셨을 테지.
어머니는 젊은 시절 회사 건물이 빽빽한 광화문에서 사무실에 우유배달을 하셨다. 남편이 너 덧살 될 때라고 했으니까 아마도 30대 중반이었을 것이다.
시골에서 농사짓다가 아버님과 맨손으로 올라와 서울에 자리를 잡아야 했으니, 아버님 벌이로 집 사고 애들 공부시키기는 힘이 드셨다고 한다. 돈을 벌어야겠는데, 배움이 깊지 않으신 어머니가 자식 넷을 키우면서 하실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요구르트 배달, 우유배달을 하셨다고 한다. 요구르트를 며칠 배달해 보니 우유를 넣어주면 20원을 더 준다고 해서 바로 옮기셨단다. 그만둘 때 요구르트 배달 사무소 점장이 "이런 싱거운 사람..."이라고 했다는 말을 두고두고 하신다.
큰 건물에 있는 큰 사무실을 뚫어야 한번 돌 때 많은 양을 배달해서 이문을 남길 수 있기 때문에, 큰 건물 관리실에 무작정 들어가서 우유를 넣게 해달라고 부지런히 영업을 하셨다.
한번 마음먹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전진하시는 어머니에게 관리사무소의 푸대접은 문제도 아니었다고는 하지만, 서른 중반의 젊은 여자가 여기저기서 싫은 소리를 들은 것이 잊히지 않으셨을 것이다. 잃어버릴만하면 그때 얘기를 하시는 걸 보면.
우유를 한 개라도 더 돌리고 빨리 집에 가서 아이들을 봐야 한다는 생각에 늘 점심을 굶고 다니셨다고 한다.
한 번은 우유를 배달받는 사무실 직원이 '밥 한번 먹읍시다.'라고 했단다. 사무실에 우유 돌리는 아주머니에게 밥 한번 먹자는 게 노고를 위로하기 위해서였겠는가.
다음날 어머니는 막내아들 손을 잡고 그 사무실에 출동을 하셨다. 어머니를 닮아 자신감 넘치던 꼬맹이 내 남편은 엄마손을 잡고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안녕하세요!" 소리 높여 외쳤다고 한다.
어떻게 뚫은 영업장소인데, 밥 한번 먹자는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해서 손님을 잃을 수 없었던 어머니의 우회적인 거절이었다. "나 자식 있소. 건드리지 마소."
밥도 굶으면서 우유를 배달하고, 악착같이 모아서 집도 사고, 아이들 학교도 보내고, 열심히 사신 어머니는 못 배운 서러움을 잊지 못해서 말년에 검정고시를 보고, 방통대에도 들어가셨다. 체력이 달려서 방통대는 중간에 그만두었지만 공부가 너무 재미있었고, 시험기간에는 공부를 완벽히 끝내고 늘 백점을 맞는 즐거움에 신이 나셨다고 한다.
방통대를 그만두고 나서는 복지관에서 영어며, 일본어, 붓글씨, 기타 등을 배우셨다. 물론 취미 정도에 그치는 수준이었지만 수업을 듣고 숙제를 해내시는 어머니를 볼 때면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어느 날, 횡단보도를 건너려는데 옆에 일본인들이 서있었다. 관광객으로 보이는 일본인들은 자기들끼리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복지관에서 일본어를 배우신 어머니. 말릴 틈도 없이 그들에게 다가가신다. 고개를 살짝 내밀고 웃으시며 말을 건네시는데.
"모시모시?"
나와 남편은 충격과 부끄러움에 어머니로부터 한걸음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알아듣진 못했어도 일본인들과 대화하고 흐뭇하신 어머니.
"나가 일본어 배웠씨야~."
배운건 바로 사용해보고, 뭐든 시도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에 가끔 남편과 반성의 시간을 갖기도 한다.
"저런 정신과 태도로 조금 더 일찍 배우셨다면 외국어 능통하셨겠어. 우리도 언어 공부에 자신감이 필요해."
자신감은 인생을 잘 사는데 매우 중요한 덕목이다. 그러나 결과가 좋지 않으면 한번쯤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다음번에는 더 잘할 수 있도록 반성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특히 요리에서는 아예 안하거나 배워서 발전하거나 둘중에 하나만 하시기를 바란다.
"어머니, 다 잘하실 수는 없죠. 음식 못 만드시고, 청소 잘 안 하시고, 빨래 이상하게 하셔도 지금까지 정성껏 열심히 사셨어요. 훌륭하십니다. 그런데 우리 새로운 음식은 도전하지 말아요. 우리 그냥 김치찌개랑 생선구이 정도만 해 먹어요. TV에서 나온 음식은 사 먹는 걸로 해요.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