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어머니, 로빈슨 크루소도 이거보다 잘하겠어요.

시어머니와 나의 합작품, 소갈비찜

by 춘춘

세상은 변해도 어머니는 직진

어머니가 아버님의 장례 후 가장 먼저 하신 일은 치과치료였다.

돈이 아까워서 한쪽 잇몸이 내려앉았는데도 그냥 참고 사셨던 어머니는 가장 좋은 대학병원에서 잇몸치료를 하기로 하셨다. 견적이 천만원을 웃돌았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그동안 너무 관리하지 않아서 잇몸을 대부분 다시 심어야 하는 대 공사였기 때문이다.

돈도 돈이지만 오랜 기간 걸리는 고생스러운 치료였다.

"치과 날짜 받아노믄 심장 벌렁벌렁해."

잇몸을 다 드러내는 작업이니 오죽 아플까. 그동안 저 잇몸으로 어찌 사셨을까. 돈이 없는 것도 아니면서 왜 저렇게 사셨는지, 예비 시어머니의 답답한 사연에 공연히 짜증이 일었었다.

저 고집에, 쓰러질 지경이 돼야 병원에 가시는 양반이니 자식들이 아무리 가라고 해도 안 가보셨겠지.


그러던 어머니가, 아버님을 갑자기 떠나보내고 나니 세상 뭐 있나 하는 허망함을 느끼셨던 것 같다.

"젤로 좋은 데서 할란다." 하신 것을 보면.


그 시절 우리 엄마들이 다 그랬겠지만 어머니는 한 푼도 허투루 쓰지 않으셨다. 돈이 생기는 즉시 은행에 저금하고 거래는 무조건 현찰을 고수하며 평생을 한결같이 사셨다. 세상이 바뀌어도 어머니의 소비습관은 변하지 않았다.

거액의 병원비를 내야 하는 날도 어머니는 현찰을 들고 가셨다. 신용카드도, 인터넷 거래도 사용하지 않으신다. 은행에서 바로 현찰을 찾아서 병원비를 납입하셨다.

어머니는 무조건 현찰이다.




비싼 치과 진료를 받기는 했지만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고, 어머니의 씀씀이가 헤퍼진 것은 아니었다. 의외로 대범한 면이 있으셔서 당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실 때는 과감하게 주머니를 여시지만, 여전히 돈 쓰는 것에는 신중하셨다. 그런데 한 가지 달라진 점은 있었다.


젊어서 돈 모으느라 못했던, 해보고 싶던 것들을 과감하게 한 번씩 저지른다는 것이었다.

어머니의 첫 번째 일탈은 '모피코트 사기'

"밍크코트 하나 사야제."

결심을 하시고 백화점을 둘러보셨다는 어머니. 매장에 가서 딱 맘에 드는 걸 고르셨는데 4백만원이었단다.

어머니가 생각하신 예산은 2백만원.

"이백만원짜리 돌라고 항께 쩌~ 구석서 이쁘도 안을걸 가꾸와 부러. 고런것은 안사제!"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눈높이를 낮춰서 2백만원짜리를 사실 생각도, 예산을 4백으로 늘리실 생각도 없으셨다. 백화점을 수차례 가서 점원들과 협상을 하셨다.


"아가씨가 사는 것으로 해주소."

직원 할인을 말하는 것이겠지.

내가 그 자리에 함께 있지 않았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그런데 세상은 그렇게도 돌아가는 것인지, 아니면 매장에서 적절한 다른 물건을 보여줬는데 어머니가 그걸 인지하지 못한 것인지, 어쨌든 당신의 눈에 차는 밍크코트를 2백만원대에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었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협상을 잘해서 4백만원 짜리를 2백만원에 줬다고 하는데 그건 아직까지도 믿지는 못하겠다.)

아무튼 원하는 상품을 원하는 가격에 사게 되신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바로 결제를 하셨다. 현찰로.

어머니의 허리에는 '전대'라고 불리는 것이 어울릴만한 주머니가 둘러져 있었다. 힙쌕이나 벨트백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나는 그 주머니를 볼 때마다 '전대'라는 말이 떠올랐다.

밍크코트를 받으신 어머니는 허리에 둘러찬 주머니에서 만원짜리를 2백여장 꺼내어 턱 하니 지불하셨다.

허리춤에서 현찰을 꺼내 점원에게 전달하는 어머니를 상상하니 너무 웃기다는 나에게 남편이 말했다.

"아, 그거 몰라? 나 첫차 살 때, 어머니 현찰 들고가서 차값 내셨어."


벌써 그 밍크코트를 사신 지가 십 년이 다되어 간다. 지금도 애지중지하며 장롱 속에 넣어 놓으시고, 자신감이 필요한 자리에 참석할 때마다 꺼내 입으신다.




그런 우리 어머니가 요리에서 신 문물을 받아들였을 리 만무하다.

어머니 댁에는 미원을 제외한 조미료도, 전자레인지도, 그 어떤 신종 조리용품도 없다.

간장, 기름, 소금, 고추장 등 기본양념들만 있다. 요리 못하는 사람의 필수품인 굴소스나 다양한 조미료 등을 사다 드려도 사용하지 않으신다. 한 번에 많이 넣어서 없애 버리시거나 다시 가져가라고 하신다.

수년간 어머니의 주방을 보면서 이제 내가 어떤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포기했다. 나도 음식을 못해서 거의 사 먹거나 친정에 가서 먹는 주제에 무슨 어머니 주방에 참견을 하겠는가. 고집 피우실 때마다 뭔가를 해보려는 의욕도 상실되어 그냥 어머니 하시는 대로 두고 보다가 맛없는 음식을 먹고 오는 것으로 마음을 먹었다.


이번 설날에 어머니는 무려 '한우갈비'를 사다 놓으셨다.

그나마 명절에는 해물탕과 등심구이만 하셔서, 형님들이 해물탕 양념을 하고 나는 소고기를 구우면 그런대로 맛있는 식사가 차려질 수 있었다.

그런데 가끔 정육점에 좋은 고기가 들어왔다거나 TV에서 몸에 좋다는 음식이 나오면 그걸 시도하시는 통에 사단이 나곤 한다.

몇 년 전 명절에도 갈비를 한 들통 사놓으셨더랬다. 그때는 다행히 내가 전날 갈비를 발견해서 양념에 재워 놓을 수 있었다. 저녁에 슈퍼에 가서 갈비양념을 사고, 인터넷 보고 이것저것 넣어 먹을만한 갈비찜을 했었다. 사실 당시에도 갈비찜을 처음 해보는지라 저녁 내내 이게 음식이 될까 엄청 고민했는데 시판 양념을 넣으니 그런대로 맛이 나긴 했었다.


그런데 이번엔 소갈비를 설날 아침에 딱, 개봉하신 것이다.

예의 그 이상한 차례음식을 준비하는 중이었고, 아침밥 먹을 시간이 임박한 상황에서 핏물도 안 뺀 소갈비가 싱크대에서 펼쳐지는 것을 보고 있자니 한숨이 나왔다.

더구나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형님이 우리와 겹치지 않고 설 다음날 온다고 하셨다. 형님의 힘을 빌릴 기회가 없었다.


고기를 씻지도 않고 냄비에 넣으시는 어머니를 말리지 않았다. 슬프게도 선홍색의 한우갈비는 더없이 품질이 좋고 맛있어 보였다.

어머니는 갈비가 들어간 냄비에 간장과 기름을 넣으셨다. 대충 버무리고 바로 가스레인지로 이동.

그래도 마늘이라도 좀 넣어볼까 라는 생각을 할 정도의 의지는 남아있던 나는 터덜터덜 냉장고로 가서 마늘 다진걸 몇 숟가락 가져다가 넣어보았다.

갈비 양념을 사다 넣자고 말할 기운도 없었다.

될 대로 되라지.


"어머니, 이거 탈 거 같아요."

물기가 하나도 없이 고기에 간장, 기름만 넣은 냄비에서 당연히 고기가 타겠지. 양념도 없는데 물만 넣는다고 되는 건가, 간장을 같이 더 넣으면 될까,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처음에 후다닥 나가서 갈비양념이라도 사다 넣을걸.

후회가 밀려왔다.


"타면 안 되제. 물 넣어라."

"금방 쫄아드는데요? 많이 넣어야 될 거 같은데..."

"물 많으면 맛없시야~. 물 느 가믄서 불 때라."

울화가 치밀었다. 대체 제대로 하지도 못할 갈비를 왜 사셔 가지고...

내맘대로 물을 잔뜩 넣었다가 망치면 그것도 곤란할것 같아서 어머니 말씀대로 물을 조금씩 넣었다.

쫄아들면 물을 넣고 다시 넣는 것을 반복하다 보니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었다.

무인도에서 사냥을 해서 갈비찜을 하라고 하면 이렇게 하지 않을까. 로빈슨 크루소도 이것보다는 갖춰놓고 음식을 할 것 같았다.

어차피 맛있게 될 것도 아니고 저 허옇게 익어가는 고기들이 갈비찜이 될 리가 없다는 허망한 생각에 주인의식을 잃었다. 너무 하기 싫어서 잠깐 방에 들어가 멍하니 앉아 있었다.


"워메, 탔시야~."

몇 분 지나지 않았는데 그새 탔나 보다.

"보고 있으랑께 안봤시야?"

내 탓 됐다. 억울하다.

"됐시야, 익었시야."

갈비찜은 삼층이었다. 일층은 까만색, 이층은 지글거리는 갈비찜스러운 갈색, 맨 위 삼층은 간신히 붉은기가 가신 회색.

젓가락으로 찔러보더니 핏물 안 나오고 다 익었다며 안 탄 것만 골라서 아들과 손자 먹이고 탄 건 형님네 오면 주겠다고 하셨다. 내 엄마 아닌 게 다행이다 싶었다.


근데 형님한테 이 꼴로 갈비찜 한걸 보여주라고?

형님 입장에서는 내가 얼마나 한심스러울까, 자기 엄마야 원래 잘 못하신다지만 올케가 시집온 지 십 년이 넘었는데 명절 때마다 개선된 게 하나도 없으니 속이 터지지 않겠는가?

어쩌겠는가, 요리에 소질도 없지만 어머니와 싱크대 앞에 딱 서는 순간 무기력이 몰려오는 것을. 이제는 욕을 좀 먹든말든 포기하고 엉망진창 요리를 같이 완성하는 것이 패턴이 되었다.


어찌됐던 갈비찜을 해결은 해야 하니, 맨 위의 덜 익은 몇 점을 꺼내서 따로 담아 두었다. 이건 아직 무르지도 않았으니 형님이 오셔서 어떻게 살리겠지.

바닥에 까맣게 탄 부분 바로 위까지 그런대로 갈색을 띠는 부분만 골라내서 우리가 먹을 접시에 담았다. 그나마 탄 부분들을 가위로 도려내니 몇 점 되지도 않았다.

차례를 다 지내고 (올해는 차례 지낼 때 절을 하면 음식을 먹고 체한다는 어머님의 요상한 말씀에 따라 절도 하지 않았다.) 아침을 먹었다. 차례상에는 올리지 않은 갈비찜(?)을 내놓았다.


"오, 이거 맛있다."

당황스러운 건 그게 맛있다는 것이다. 품질 좋은 한우 갈비에 간장, 기름, 마늘을 버무려 넣고 바닥을 한바탕 태우면 바로 그 위층은 고소한 갈비 구이가 된다는 기이한 사실. 탄 냄새가 은은하게 섞여 고기는 마치 캠핑장에서 숯불에 구운듯한 불맛까지 느껴졌다.

맛있게 먹는 남편과 아들을 보니 그나마 맛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보다는 짜증이 났다.

차라리 맛이 무지하게 없어서 어머니가 원망이라도 들었으면 하는 심통섞인 오묘한 심정이었다.


아무튼 재료가 좋고 간만 들어가면 음식이 된다. 요리의 새로운 세계다. 역시 요리는 과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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