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어머니? 그건 미신도 뭣도 아니잖아요?(1)

나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

by 춘춘

마음 편한대로 믿는것이 정신건강에 좋기는 하지.

우리 어머니를 소개하라고 한다면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 중 하나가 '미신'이다.

어머니 세대의 많은 분들이 미신을 사실과 같이 믿을 테고, 나도 몇 가지는 무시하기 꺼림직 해서 늘 염두에 두는 것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우리 어머니가 믿고 있는 미신이란 것은 통상적인 것들을 포함하여 듣도 보도 못한 것들은 물론 어머니 당신이 믿고 싶으신 대로 지어내신 것 까지 다양한 카테고리를 이루고 있어, 듣다 보면 머리가 어질 하게 만드는 심란스러운 것들이 부지기수이다.


젊은 시절 알뜰살뜰 모으신 돈으로 조금은 배짱 있는 투자도 하신 덕에 어머니는 노후에 세를 놓아 생활비로 쓸만한 아파트를 한채 가지고 계시다. 말년에는 월세만이 노후자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셔서 세가 잘 나갈만한 곳에 일찌감치 집을 사셨고, 당시에는 그다지 비싸지 않았던 그 집은 세월이 흐르면서 값이 올라 지금 어머니의 자존심 한 자락을 단단히 받쳐주고 있다.


결혼하고 몇 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아파트 세입자가 바뀌는 사이 청소도 할 겸 집을 한번 둘러보자고 하셔서 아기를 데리고 남편과 함께 아파트에서 어머니를 만났다. 남편이 청소하는 사이에 어머니가 새로운 세입자와 관련된 서류처리를 할 게 있어서 부동산에 다녀오신다길래 산책 삼아 따라 나섰다.

부동산 근처에 도착하자 어머니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시고


"너는 여기 있어야~. 나 혼자 금방 갔다 오면 됭께."

"네~"


어차피 할 일 없이 들어가 앉아있기도 어색했는데 마침 잘됐다 싶었다. 청소하면서 먹을 음료수와 간식거리를 좀 사고 벤치에 앉아 기다리자니 어머니가 나오셨다.


"다 하셨어요?"

"잉, 뭐 쪼까 확인한다고 해서 다 해부렀어."

"네... 그런데,건 뭐예요?"


어머니 손에는 단어 하나가 적혀있는 꼬깃한 메모지 한 장이 들려있었다.


"친..테? 이게 뭐예요?"

"세 들어 올 사람 이름이여. 태국사람이라느먼."

"아, 외국인이에요?"

"잉, 뭐 쪼까 볼라고."

"......뭘요?"

"세든 사람이 나허고 맞능가 봐야제. 뭐 보는 사람한테 가서 봐야제."

"...... 점 보신다고요?!"


항상 어머니 댁 근처에 사시는 '뭐 보는 사람'에게 가서 주변의 대소사를 물어보시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세입자와 궁합까지 보시는 줄은 몰랐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궁합을 보려면 최소한 생년월일 정도는 알아야 하는 게 아닐까? 덜렁 저 이름 두자, 그것도 확실한 이름인지도 모를 '친 테'라는 두 글자만 들고 가서 보여주면 점보는 사람이 신뢰성 있는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는 것인지 궁금증이 일기도 했다.


"어머니, 그때 그 세입자랑 궁합 보신 거 뭐래요? 좋대요?"

다음번에 어머니를 만나러 가서 결과가 어찌 나왔는지 물어보기까지 했었다.

"괜찮다느먼."


무심하게 말씀하시는 어머니의 반응이 더 웃겨서 실례가 될 만큼 크게 오래 웃었던 기억이 난다.




셈이 빠르신 어머니는 아마 화투도 잘 치셨을 것이다. 어쩌다 한 번씩 무료하면 아들과 고스톱을 치는데 나도 한판 껴 봤지만 어머니의 상황 판단과 경우의 수에 대한 계산은 젊은이들 저리 가라 할 만큼 빠르고 게임 방식도 도전적이셨다.

가끔 말씀해 주시는 젊은 시절 에피소드 중 아들에게는 잘 말씀하지 않으면서 나한테 조용히 털어놓으신 얘기가 있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동네에서 화투판이 벌어지곤 했는데 그곳에 몇 번 가서 화투를 치고 돈도 많이 따오셨다는 어머니의 비밀 도박 이야기였다.


"나가 첨엔 땄는디, 갈 때마다 잃는 거야~. 그래서 절에 가서 시님한테 물어봤어. 어째 자꾸 잃어요. 그랬더니 시님이 갈챠 주드먼. 다리를 그쪽으로 뻗어야 써. 그래야 이겨 묵어. 어쩐지 그 여자가 자~꾸 내쪽으로 다리를 뻗드먼. 담에 가서 나가 그쪽으로 다리를 뻗었더니 잘되드먼."

"그래서 돈 많이 버셨어요?"

"나가 따긴 혔제. 근디 저녁에 울 아덜 밥 차려 줘야되는디, 그 여자들이 밤에도 하는 거야. 못쓰것드먼. 그래서 안가부렀어."


그걸 스님에게 물어본 어머님이나, 컨설팅해준 스님이나 웃기긴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혼자 짐작했다. 동네 아주머니들은 심심풀이로, 용돈벌이로 쳤을지 모르지만 우리 어머니는 자산을 늘리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고 비장한 마음가짐으로 참여하셨을 것이 분명하다고. 그러니 스님에게 비법까지 전수받으러 가셨지.




음식과 건강만은 과학적으로 생각하면 안될까요?

어머니의 요상한 믿음과 논리는 한번 어머니를 뵐 때면 한 개씩은 건져올 만큼 무궁무진하다. 어떤 것은 복창이 터질 만큼 답답하기도 하고 어떤 것은 요절 복통할 만큼 기발하고 웃기기도 하다.

음식이나 건강에 있어서도 이상 야릇한 믿음들이 요소요소에 진을 치고 있는데 도저히 타협이 안 되는 것들이 바로 근거 없는 민간요법들이다.


무엇이든 양약보다는 음식으로 고쳐야 한다는 믿음이 강해서 언듯보면 대단한 철학인것 같지만 대부분 근거없거나 위험하기까지 한 것들이다. 예를 들면, 설사가 나면 약을 먹지 말고 냉동시켜놓은 홍시감을 먹어서 설사를 막아야 한다거나, 가려운 습진부위를 드라이기로 계속 지져서 균을 죽여야 한다거나 하는 것들이다.


한 번은 명절에 가족들이 모였는데 고등학생인 조카가 배탈이 나서 아무것도 못 먹었더랬다.

당시 조카는 설사가 심해서 약을 먹고 있었고, 병원에서 며칠간 물과 죽 말고는 아무것도 먹지 말라는 처방을 받고 온 터였다.


명절에 아무것도 못 먹고 있는 손자가 안쓰러운 어머니는 그나마 부드러운 음식이라고 생각하셨는지 요플레를 가지고 오셨다.


"요것이라도 묵어.잉?"

"안돼요. 할머니~ 유제품 먹지 말랬어요."

"고로고 안묵어서 어찌냐~."

"안돼요~ 또 설사해요."

실랑이 끝에 죽어도 안먹겠다며 방에서 나가버리는 조카의 뒷모습을 따라 어머니의 안쓰러움 가득한 절규가 이어졌다.

"묵으믄서 싸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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