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에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완주했지만, 남편과 함께 보고 싶어서 최근 다시 보기를 하고 있다.
오늘은 10화, 도재학 선생이 관장을 거부하는 환자를 살리는 장면을 보았다.
관장을 하지 않으면 심장마비가 올 수 있는 긴급한 상황인데도 거부하는 환자에게 무릎을 꿇고 빌어서 환자를 살린 도재학 선생이 결국 환자로부터 딸기를 선물 받는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감격에 겨워 딸기 상자를 어루만지던 도재학 선생, 상자 안쪽에 종이가 들어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 순간 남편이 말했다.
"뭐야? 돈이야?"
다시 봐도 눈물이 나올랑 말랑 하는 감동적인 장면에 내 눈물을 쏙 증발시킨 말라비틀어진 멘트였다.
아, 어머니가 생각났다.
꽤 오래전 일이다.
건강검진 결과 시어머니의 눈이 많이 좋지 않으셔서 종합병원에서 안과 진료를 받으셨다.
진단 결과 망막의 두께가 두껍고 백내장도 조금 있으셔서 수술이 필요했다. 무엇이든 당신의 판단이 최고라고 생각하시는 어머니는 가장 늙은 의사가 가장 좋은 의사라는 기묘한 원칙에 따라 현존하는 가장 좋은 의사라고 생각하시는 은퇴 직전의 선생님을 찾아가서 수술을 받기로 했다.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가는 날은 내가 시간이 돼서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갔었다.
어머니가 선택하신 선생님은 정말 연세가 지긋하고 친절하게 증상과 수술에 대한 설명을 해 주는 분이었다. 노인들이 많이 하는 수술이고 크게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증세가 크게 호전되지는 않을 수도 있다고 설명하셨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조금 걱정이 되었다. 혹시 수술 결과 드라마틱하게 좋아지지 않을 수 있다는 말에 어머니가 수술을 하지 않겠다고 버티시거나 의사에게 따지시는 것이 아닐까 불안했다.
사실, 건강검진 이후 수술할 병원을 선택하는 과정에서도 수술을 하신 댔다, 안 하신 댔다 여러 차례 마음이 흔들리셔서 꽤 골치가 아팠었다.
의사를 잘 믿지 못하시고, 남의 말도 잘 안 들으시기 때문에 순순히 자식들 말대로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으실 양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진료를 받으면서 의사의 말을 열심히 들으신 어머니는
"예~예, 잘해 주시겄지요~." 라며 착한 아이처럼 고개를 크게 주억거리기까지 하시는 게 아닌가.
아직 수술을 한 것도 아닌데 감사하다고도 연신 말씀하셨다.
의사를 만나보니 믿음이 가신 건가?
환자가 의사를 믿으면 약 봉다리만 다려먹어도 낫는다는데 믿음이 간다면 어쨌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설명을 다 듣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서는 찰나, 갑자기 어머니는 빛과 같은 속도로 들고 있던 가방에 손을 넣어 무엇인가를 한 줌 꺼내셨다. 그래고 재빨리 주먹에 쥔 그 무엇을 의사 선생님의 가운 주머니에 넣어 주었다. 어정쩡하게 일어서던 나도, 앉아있던 의사도, 옆에 서있던 간호사도 모두 순간 동작을 멈추었다.
의사 선생님 주머니에 들어간 그것은 돈 봉투였다.
의사에게 뇌물을 투척하신 것이다. 수술 잘해달라는 뜻으로.
어머니를 제외한 그 방의 모든 인원은 당황했고, 놀란 선생님도 '어어어...' 하다가 재빨리 봉투를 꺼내어 다시 어머니 가방에 넣으셨다.
나는, 그 실랑이의 과정을 끝까지 보지 않고 바로 돌아서서 나와버렸다. 너무 부끄러워서 도저히 서있을 수가 없었다.
칠순 노인네의 전광석화 같은 행동에 당황하는 의료진의 모습이라니.
민망해서 화도 나는데 웃음도 터질 것 같았다.
"어머니, 돈 주셨어요?"
"전혀~ 안 받아야~."
진료실 문이 열려있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또 한 번 우리 엄마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오만 고민을 했어도 일단 상황이 전개되면 최상의 결과를 얻기 위해 옆도 뒤도 안 돌아보고 질주하는 어머니는 어디에 내놓아도 살아남으실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에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헐레벌떡 그 얘기를 했다. 너무 재밌어서 빨리 얘기해 주고 싶었다. 돈봉투가 오가던 장면과 의사 선생님의 황당한 표정이 생각할수록 웃겼다.
"어쩌면 니가 같이 있어서 안 받았을지도 몰라."
"에~이, 설마! 때가 어느 땐데~."
"어머니 보통 웃돈 주셔. 부동산에도 주고, 치과 가실 때도 주셨어."
"헉, 진짜? 그런 게 통하긴 통하나 보네."
얼마 후 어머니의 수술은 잘 끝났고, 다행히 경과도 좋아서 시력도 많이 좋아지셨다. 안경을 안 써도 전보다 훨씬 잘 보이신다며 크게 신나 하셨다.
"엄마, 이제 안 보인다고 설거지 대충 하는 거 안 통해요."
자식들은 시력도 기분도 좋아지신 어머니를 보며 흐뭇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이 놀라운 사실을 말해주었다.
"여보야, 그거 알아? 어머니 결국 돈 주셨대."
"어? 언제?"
"수술 전에 한번 더 가셨을 때 주셨더니 받더래. 내가 물어봤더니 그러시던데. 진짜 너 있어서 안 받은 건지도 몰라."
"와~ 말도 안 돼. 그냥 여보가 물어보니까 민망해서 주셨다고 하신 거 아냐?"
"글쎄... 그런가."
아직도 진실은 모르겠다. 어머니가 괜히 둘러대신 것인지, 그때는 김영란 법이 생기기 전이어서 정말 그런 게 통한 것인지 확실치는 않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역시 난 하수가 아닌가.
어머니와 여행은 이걸로 그만
몇 년 전 형님이 지인에게서 호텔 숙박권을 선물로 받아 가족 모두 호텔에서 하루 자고 오는 짧은 여행을 가게 되었다. 조금 오래된 호텔인데 예전에는 레지던스로 사용하던 곳이라서 아파트 형태이지만 지금은 취사가 불가능한 곳이라고 했다. 가까운 곳이니까 금요일 저녁에 가서 피자나 시켜 먹고 오자는 것이 형님의 계획이었다.
퇴근 후 가벼운 마음으로 호텔 로비에 도착, 마침 가족들이 로비에서 체크인 중이었다.
로비에 비치되어있는 소파에 앉아 계시는 어머니께 인사를 하러 다가가는 순간, 나를 흠칫 놀라 걸음을 멈추었다.
어머니 옆에 분홍색 보자기로 귀하게 싸여 다소곳이 놓여있는 것은 전기압력밥솥.
그것도 쿠첸 10인용 빨간색 압력밥솥.
10미터 전방에서 봐도, 아무리 보자기에 싸여 있어도 밥솥임을 알게 하는 실루엣과 금테 둘러진 붉은 시그니쳐 색깔.
형님이 체크인을 하시는 동안 나는 조마조마했다.
호텔 사람들이 와서 '밥솥은 반입이 안됩니다.'라고 할 때 내가 그 옆에 없기를 바랐다. 아니, 사실은 호텔 직원들이 밥솥을 가지고 들어가지 못하게 해서 크게 실랑이가 벌어져 어머니가 망신당하기를 바라는 심술궂은 마음이 없었다고는 못하겠다.
(속삭이며) "어머니, 밥솥 왜 가져오셨어요?"
"밥 묵어야제~ 호호호."
부아가 치밀었다.
"엄마가 죽어도 저걸 가져오셔야 한다는 거야. 그래서 내 차에 실어왔어~. 못살아~."
웃으며 말씀하시는 형님이 안쓰럽기도 하고, 그걸 왜 못 말리셨는지 원망스럽기도 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호텔 직원들은 별말 없이 우리를 들여보내 주었고, 우리는 호텔방에서 어머니가 싸오신 쌀로 밥을 지어, 김치와 김과 함께 먹었다.
정말이다. 온 식구가 호텔에 다 모여서 그냥 김치와 밥과 김을 먹었다.
이게 뭔 짓인가 싶었다.
사위들도 있는데, 요리왕도 아니시면서, 아무 요리도 안 하실 꺼면서, 시켜먹는 게 아까워서 밥솥을 싸오신 어머니에게, 왠지 모를 분노가 일었지만, 그 저돌성에 항복의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 맛있네요."
어차피 하룻밤인데 효도하는 셈 치는 건지 가족 모두 어이없는 상황을 그런대로 즐기며 저녁을 그럭저럭 즐겁게 먹었다.
나는 맛있다는 말은 차마 안 나와서 최선을 다해 얼굴에 미소를 띄웠다.
당당함과 창피함 사이
내가 좋아하는 남편의 모습 중 하나는 당당함이다.
같은 회사에 동기로 들어간 남편은 신입 사원 교육에서, 강사가 한번 시범을 보인 미션을 해볼 사람 있냐는 말에 가장 먼저 손들고 나가서 시도해 본 사람이었다. 정말 흥미로워서 한번 해보고 싶어 하는 사람의 표정이었다. 결국 제대로 완수도 못했는데 부끄러움이나 후회가 전혀 없이 웃으며 들어오는 걸 보면서 '저 인간 참 특이한데 괜찮네'라고 생각했었다.
눈치껏 발 빠르게 행동하긴 하지만 비굴해 보이지는 않는 남편이 좋았는데 어떤 면에서는 그것이 어머니를 닮은 모습이기도 한가 보다.
하고 싶은 건 하고, 일단 벌인 일은 빨리 해결하고,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 돌진하는 것은 참 좋은데, 남편이 나이 들어서 나를 부끄럽게 하는 일은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어머니를 볼때마다 들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