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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춘 Jan 12. 2024

#28. 사춘기 아들이 인간 대 인간으로 미울 때

사춘기 관찰일지

"엄마, 파베 초콜릿 사줘. 단거 땡겨"

아들의 요구사항이 거창하기도 하다.


"비싸!"

"그렇게 비싸? 그래도 사줘~.  어렸을 때는 그런 단거 입천장에 붙으면 막 찐득거려서 싫었는데 그때 안 먹은 게 너무  후회돼."

별게 다 후회되네.


"야, 그때가 좋았다. 니가 그거 싫어해서 나 혼자  먹을 수 있었지."

"아... 치사해. 사줘. 그럼 그거 말고 파베 초콜릿이랑 비슷한 거 동그란 거 있잖아, 그거라도 사줘. 쿠팡으로 시켜줘."


"만삼천육백오십 원. 비싸네."

"ABC초콜릿도 사줘. 할머니네서 먹게. 밤에 간식으로 먹게 크래미도 좀 사줘"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귀여워 보이던 토실한 볼이 밉살스럽다.


아니, 염치가 좀 있어야지, 본인은 뭘 좀 하라고 하면 입이 댓발 나오면서, 뭘 그렇게 먹고 싶은 건 끝도 없이 주문하는지.


아무리 어려도 너무 이기적인 것 아닌가? 인간대 인간으로 화가 난다. 종일 열 시간 넘게 핸드폰만 보고 내가 읽으라는 책은 두쪽도 안 읽은 주제 이다.




아! 그래, 그래서 그랬구나!


어릴 때 나는 먹는 걸 그다지 좋아하는 아이는 아니었다. 엄마가 는 음식을 해줄 때는 즐거워했지만, 뭘 사달라고 조르 않는 편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뭘 잘못했는지 엄마가 혼을 내면서  

"할 일은 안 하고 먹을것만 눈이 벌게지지."라는 말을 했다.


그 말이 어찌나 치욕스럽고 억울했는지 단 한 번이었는데도 잊을 수가 없다.


그 말을 던지면서 화장실 들어가던 엄마의 모습과 눅든 채로 식탁에 앉아 엄마의 뒤통수를 노려보던 내 모습이 드라마 장면처럼 또렷하게 기억난다.


그때 나는 내가 언제 먹을 것에 눈이 벌갰는지 아무리 짚어봐도  수 없었고, 동시에 지금 이 상황에서 먹는 얘기가 왜 나오는 건지 엄마 말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생각다.


그러고 보니 거다.

공부도 안 하고 집안일도 안 하고 게으르기만 한 딸이 뭘 맛있게 먹있는 게 꼴 보기 싫었던 게 아닐까?


자식 입에 음식 들어가는 게 자기 뱃속에 들어가는 것보다 배부른 것이 부모 마음이라지만, 그게 뭐 항상 그럴 수만은 없.

배고픈 자식에게 음식을 줄 수 없을 때 괴로운 부모 마음과는 조금 다른 개념이다.


아무리 자식이라고 해도 저 하고 싶은 것만 쏙쏙 빼먹는 모습이 미운 건 인지상정인가 보다.



이제 와서 엄마의 그 말을 떠올리니 웃음이 난다.

내가 엄청나게 미운 싫은 짓을 해 놓고 뭔가를 맛있게 먹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암, 그건 꼴 보기 싫지. 싫고말고.

다행히 나는 엄마처럼 본심을 드러내지 않고 속으로만 꼴보기 싫다고 생각했다.


 또 에 붙어서 머리를 내 어깨에 비벼대며 애교 떠는 아들을 보니 마음이 스르르 녹아버린다.


파베 초콜릿에 게맛살, 에이비씨 초콜릿까지 장바구니에 넣고 결제를 했다.

이렇게 불공평한 관계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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